꼭 모든 인터뷰나 토크쇼가 진지한 주제를 다뤄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허심탄회한 웃음이 높아질수록 숨겨온 속마음을 더 쉽게 고백할 수 있고 그로부터 완화된 분위기가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를 편안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피식대학에서 제작하는 <피식쇼>는 지나치게 메시지 중심적이던 과거 토크쇼로부터 차별점을 갖는다. 방탄소년단 RM에게 “메신저로 친구 생일 선물을 보낼 때 얼마짜리를 보내”냐는 질문이나 손흥민에게 “(별명이 ‘소농민’이라는 점에 착안해) 농부가 된다면 어떤 작물을 키우고 싶냐”는 질문은 예상치 못한 공략으로 허허실실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권위나 위계와는 거리가 먼 분위기. <피식쇼>는 그것을 지향한다. 한국어와 영어를 뒤섞어 진행하는 독특한 방식도 많은 구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You know, I have 가오”(알잖아, 나도 가오 있는 거), “What time was 가장 늦게 일어난 시간”(가장 늦게 일어난 때가 언제야?) 등 다소 엉터리지만 자신감 있게 말하는 모습은 영어에 주눅들어 있던 2030 시청자의 외국어 학습 열의를 북돋는, 프로그램이 애초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인 결과도 낳았다. <피식쇼>의 진행 방식과 구성, 프로그램 톤 앤드 매너는 전반적으로 선호받았다.
하지만 가벼운 토크쇼가 좋다는 말이 ‘알맹이가 없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엄연히 다른 맥락이다. <피식쇼>는 글로벌 토크쇼를 목표로 삼는 만큼 주로 유명 게스트가 출연한다. 게스트 의존도가 높은 토크쇼 포맷에 이러한 섭외력은 무척 중요한 무기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미션으로 작용한다. 유명인사의 방대한 이야기를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모두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수다. 지난 5월5일 공개된 ‘장원영 편’에서는 두 번째 미니앨범 《IVE SWITCH》로 컴백한 장원영을 만났다. 여느 날처럼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맥락 없는 공허한 이야기만 빙글빙글 돌 뿐이다. 실제 키가 얼마인지, MBTI가 무엇인지,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자신의 결점이 무엇인지 등 방향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총 40분 분량 중 직업인으로서 장원영의 전문성에 대해 들을 수 있던 건 반 이상이 훌쩍 지난 23분부터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무대에서 예쁘게 인사하는 포인트를 묻거나 팬들에게 매직 사인을 해준 일화를 이야기하는 데 그쳤다.
데뷔와 함께 4세대 아이돌 아이콘으로 부상한 장원영은 팬들의 제한 없는 사랑만큼 이유 없는 비난과 힐난에 쉽게 노출됐다. 악플, 루머, 언어 폭력, 조언을 가장한 악질적인 조롱과 인신공격까지. 대중의 제물이 됐던 여성 아이돌의 역사를 잇듯 이번엔 장원영이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 세계적으로 확장된 장원영의 활동 범위나 발전한 업력은 보편적인 아이돌의 성공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인 편견이나 맹목적인 미움에 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화면에 등장하는 어린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눈총에도 불구하고 이루고 싶은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는 것. 그는 언제나 성취와 결과, 행동과 실천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물이었다. 콘텐츠로서 장원영이 지닌 사회적 맥락을 읽는 것은 단독 토크쇼라는 귀한 자리에서 더더욱 필요한 감각이었다. 대중은 장원영의 이야기를 더 경청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나 공기중으로 흩어진 가벼운 질문 속에 기회를 잃고 만다. 심지어 “좋은데이~”라는 사투리를 유도하며 좋아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은 그저 예쁘고 어린 여성을 귀여워만 하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장면에 불과하다. 어느 누구도 직업인으로서 장원영의 가치를 이해한 사람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피식쇼>의 이러한 게으른 태도가 혹시 콘텐츠적 컨셉인 건 아닐까. ‘장원영 편’ 다음으로 5월12일에 공개한 수학강사 ‘현우진 편’에서는 이전과 사뭇 다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웃음을 자아내는 실없는 질문을 이어가지만 일타강사로서 재력을 조명하거나 그가 학생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마음 쓰는지, 강사로서 어떤 자질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는지 등 직업인으로서 전문성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심지어 세무조사라는 항간의 이슈가 되었던 이야기를 당사자가 직접 소명할 기회를 주면서 누군가 갖고 있었을 오해의 씨앗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왔다. 이외에도 같은 시즌에 등장한 던밀스도 밥샙도 박준형도 모두 자신의 업무에 관련한 가치관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이 과정에 욕설을 쓴 것도 하나의 웃음 포인트로 연출되었다.) 결과적으로 <피식쇼> 시즌5 중 장원영은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자신의 내면을 가장 덜 이야기한 사람이 되었다. 외모 칭찬과 애교 청탁, 알맹이 없는 허술한 질문 사이에서 장원영은 또다시 일말의 변화 없이 기존 방식 그대로 소비되고 만 것이다. 정재형의 유튜브 토크쇼 출연 이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던 고현정의 말을 돌이켜보면 토크쇼가 콘텐츠로서 무엇을 책임지고 짊어져야 했는지 그 범위가 더욱 선명해진다.
check point
장원영을 잠재적 연애 상대로 상상하며 상황극을 이끌어내는 막바지는 끝내 큰 웃음을 주지 못한다. 다만 이러한 시도를 분명하게 끊어내는 장원영의 도발적인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푸후~” 하고 웃어 보이는 장면엔 이유 모를 희열이 느껴질 정도. 앞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런 제스처를 시도해봐도 좋겠다. (고개는 절레절레, 손은 앞으로 살짝 밀어내며) 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