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 잠수함은 부력을 조절하기 위한 돌이나 모래를 싣는다. 그게 바로 발라스트다. 이를 제목으로 빌어온 랜스 해머 감독은 설명한다. “인생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에 대한 은유”라고. <발라스트>는 한 사내의 자살로 쌍둥이 형과 아버지와 전남편을 잃은 세 사람이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리라는 예감을 가지기까지를 다룬다. 자연광과 핸드헬드로, 흑인 빈민이 전체 주민의 90%에 달하는 미시시피 지역을 감싼 강렬한 슬픔을 포착한 이 영화는, ‘LA에서 태어난 백인 감독이 만든 선댄스 영화’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고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해머 감독의 취향은 명백히 유럽이나 아시아 영화 쪽이다. “10년전 미시시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비통함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결과, 그곳에 거주하는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하여, 세달간 리허설을 진행하고, 배우들의 언어로 대사를 구성한 뒤, 영화 순서대로 촬영을 진행한 제작 방식도 그렇다. 그 결과 선댄스영화제는 엄격한 이방인의 시선을 견지한 사뭇 차가운 이 영화에 감독상과 촬영상을 안겨줬고, 베를린영화제는 신인 감독의 첫장편을 경쟁부문으로 불러들였다. 엄격한 작가적 태도를 견지한 이 남자가 할리우드 영화의 시각효과 파트에서 7년 동안 일했다는 과거도 놀랍다.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안정된 미래를 위해 건축을 공부했다. 그러나 비겁한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영화 쪽에 발을 들인게 CG 분야였다. 즐겁게 일했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역시 나를 위한 길은 아니었다.” 그는 현재 “41살의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남자”라며 웃는다. 물론 후회는 없다. 자신만의 영화적 화법과 확신이라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든든한 발라스트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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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스트>의 랜스 해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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