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그라비아 모델에서 연기파 배우로
2008-05-0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개막작 <입맞춤>의 에이코 케이코

그래 실수했다. 인정한다. “한국에도 당신 팬이 꽤 있다”고 너스레를 떨고 “와… 정말 그런가. 고맙다. 역시 오길 잘한 것 같다”고 답을 들을 때까지는 민망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인터뷰 도중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한 질문에 ‘그녀’와 통역이 웃고 난리가 났다. 2003년 ‘골든 애로우상 화제상’이라는 걸 수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남자친구와 같이 있던 사진이 신문에 나서 화제가 된 것을 두고 준” 요상한(?) 상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러면서 이어 하는 말. “하지만 뭐 괜찮다. 그 때 남자친구가 지금 남편이 됐으니까.” 에이코 케이코는 쾌활하다. 개막작인 <입맞춤>에서 사형수에게 교감을 느껴 옥중결혼까지 하는 그 무표정의 여자가 아니다. “보통 여배우라면 이런 역할은 안할 거라고 다들 말렸다. 하지만 난 했다. 실은 이 작품 바로 전에도 다들 말린 시대극에 출연했다. 눈썹 없는 옛날 여인 말이다(웃음).” 에이코 케이코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여주인공 쿄코가 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거절했지만, 점차 귀여운 구석이 있는 캐릭터라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나의 그라비아 모델(수영복등의 차림으로 잡지 화보를 장식하는 모델) 출신 경력을 상쇄해주는 구석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좋다”는 것이다. 진지한 배우로 지향을 바꾼 뒤에도 여전히 쏟아지던 끈적한 눈초리들에 대해 에이코 코이케는 일침을 놓은 셈이다. “나는 그라비아 모델이라는 일을 통해 먼 길을 돌아 배우가 됐을 뿐이다. 처음부터 꿈은 진지한 배우였다”며 <개와 고양이> <연애사진> <불량공주 모모코> <2LDK>등에서 “그동안 주로 양념 같은 역할로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내면을 많이 보여주는 차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감독 만다 쿠니토시가 에이코 코이케의 그라비아 모델 경력을 까맣게 모른 채, 우연히 연극무대에 출연한 그녀를 보고 직감적으로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하니 확실히 <입맞춤>은 그녀의 배우로서의 내면이 처음으로 기회를 얻은 소중한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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