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로메적인’ 것으로 만들어 냄 <로맨스>
2008-05-0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The Romance of Astrea and Celadon/2007/에릭 로메/109분/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오후 5시/CGV 5
1995년에 타계한 프랑스의 영화감독 피에르 주카(에릭 로메가 “포스트 누벨바그 세대 중 장 외스타슈와 함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감독)가 수년 전 로메의 로장주 영화사를 찾아와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던 것이 실은 17세기 프랑스의 유명 목가 소설 <아스뜨레>였다. 이 영화 <로맨스>의 원작이다. 주카의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에 소재를 찾던 로메는 평소 자신과 문학적 취향이 유사하던 주카의 미완성 프로젝트를 생각해냈고 마침내 <로맨스>(원제는 <아스트레와 셀라동의 사랑>)에 착수했다. 이렇게 하여 주카에게 이 작품을 헌사하고는 있으나, 로메는 당연하게도 초점을 옮기고 형식을 바꿔 ‘로메적인’ 것으로 만들어냈다. 미남 목동 셀라동은 착한 시골 처녀 아스뜨레와 연인사이다. 그런데 어느 날 셀라동이 다른 여인과 있는 장면을 본 아스뜨레는 그가 변심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는다. 자기의 진심을 몰라주는 아스뜨레에게 셀라동은 강가에 투신하여 결백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그가 강물에 뛰어들고 아스뜨레는 셀라동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슬퍼한다. 하지만 요정들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 셀라동. 그는 요정들에게도 인기를 얻게 되지만 오로지 아스뜨레 생각뿐이다. 셀라동은 여장을 하고 아스뜨레를 찾아가기로 한다. <로맨스>는 간결하기 그지없다. 17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대의 의상을 입은 인물들이 최소한의 소도구와 배경만 있는 프레임 안에서 때때로 발생하는 우연들을 인정하며 단지 서성거린다.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영화 같다. <로맨스>는 그러나 영화가 어떤 물질이 되고, 그 물질 중에서도 무색무취의 공기가 되는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거대한 기하학적 형상, 우연의 결정적인 간섭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로메는 전하고 있는데, 그건 이 영화의 폭넓은 경이로움에 대한 힌트 중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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