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terday Girl/1966/알렉산더 클루게/88분/독일/오후 8시/메가박스 9
“우리가 어제와 이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변한 위치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화면을 채우는, 명쾌한 잠언과 같은 자막이다. 하지만 뒤를 잇는 주인공 아니타(감독의 여동생 알렉산드라 클루게가 연기했다)의 행로는, 좀처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법정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판사로 보이는 남자와 그녀가 주고받는 대화로 미루어, 그녀가 동독의 라이프치히 출신 유대인으로 서독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원하고 있다는 점 등이 정보로 주어지긴 한다. 을씨년스러운 베를린 시내에서 화려한 숍을 드나들고, 급작스레 경찰에게 쫓기고,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호화로운 호텔 메이드로 일하다가 절도 혐의로 쫓겨나고, 서독 문화부의 고위 관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아니타의 행동들 모두는 그녀의 ‘만만찮은 서독 혹은 자본주의 적응기’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배반하는 소제목과 중간자막, 인물의 심리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정체불명의 내레이션(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녹음했다), 비엔나 왈츠며 탱고, 크리스마스 캐럴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을 사용하는 익숙치 않은 타이밍, 환상인지 실제인지를 구분할 수 없고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 화면 등은 전통적인 영화 언어를 끊임없이 거부한한다. 그도 그럴수밖에. <어제와의 이별>은 파스빈더와 슐뢴도르프와 헤어초크를 이끌고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는 뉴저먼시네마의 당찬 선언을 이끌어낸 주인공의 데뷔작이다. 감독이기 이전에 아도르노와 교우하는 문화 비평가이자 소설가였던 알렉산더 클루게가 자신의 초기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결과물이기도 하다. 올해 전주에서 볼 수 있는 클루게의 장·단편 15편 중 대표작이자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화법을 견지한 영화다. 영화로서 정치·사회적으로 급진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의 부산물을 21세기에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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