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동지들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2008-05-04
글 : 오정연
사진 : 오계옥
<실록 연합적군>의 와카마쓰 고지 감독

와카마쓰 고지 감독의 인터뷰에는 정체불명의 젊은 남자가 함께 했다. “어제 인터뷰에서 기자가 질문을 잘못하는 바람에 불같이 화를 냈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록 연합적군>은 1972년 10일 동안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인 연합적군의 ‘아사마 산장 사건’의 마지막을 다룬다. 더욱 충격적인 건 산 속에서 이뤄진 동계 훈련 도중 이들이 서로를 숙청한 과정.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료를 살해한 이들의 우두머리와 이를 묵인했던 순진한 학생들에 대한 냉정한 시선이 더해져,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60년대 저예산 로망 포르노의 거장이자 같은 시기 학생운동의 열기를 함께하며 뜨거운 정치영화를 만들었던 투사 와카마쓰 고지는 1936년생. 깐깐한 거장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애초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무시무시한 인간의 본성을 들춰낸 그의 마음은 그 모든 시행착오를 함께 했던 동지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함을 알게됐기 때문이다.

-아사마 산장 사건을 지금 이 시기에 다룬 이유가 무엇인가.
=이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는 몇편 있었지만 모두 흥미 위주였다. 혁명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된 배경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80% 정도까지는 모두 실제 문헌자료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사실이고, 그렇게도 메꿔지지 않는 빈틈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아사마 산장 내부의 구조, 거기서 벌어졌던 상황 등이 그것이다. 자료조사에 6개월 정도 걸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 소개 자막은 모두 실명이고, 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온갖 사소한 계기들도 모두 증언에서 비롯됐다. 물론 35년도 더 전의 일이기 때문에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과 세계의 역사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의 중심사건도 이해할 수 없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어났던 배경을 보여주어야 했다.

-모델이 된 실제인물의 항의는 없었나.
=그런건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그중 몇몇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영화는 현재 일본에서 상영중이다. 도쿄 신주쿠의 한 극장에서 시작해서 전국의 작은 예술영화 극장을 돌고 있다. 개봉 당시에는 그 사건을 기억하는 60대가 관객의 80%였는데, 현재는 대부분 젊은 관객들이다.

-1971년 아사마 사건 당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어땠나.
=문화·지성계 젊은이들은 최초에는 혁명의 성과라며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밝혀지자, 손바닥 뒤집듯이 연합적군 모두를 싸잡아 비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그래도 믿었던 사람이었다. 인질극이 TV에서 중계될 당시 시청률이 엄청났는데, 모르긴 몰라도 일반인들은 그저 재미로 보지 않았을까. 사실 숙청이며 이지메는 일본 사회 안에서 예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이다. 어떤 조직이든 권력자가 있고,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숙청을 단행한다. 스스로의 용기가 부족해서 동지를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는 조직원의 입장을 옹호하고 싶었다. 어떤 조직이든 지도자가 나쁘면 그 조직원 모두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집단을 만들거나 속하지 않고 홀로 작업을 해나가는 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투쟁이다. 영화 속 토야마는 그 사건 이전에 나와 함께 다큐를 찍고 상영운동을 했던 친구였다. 어느날 모습이 안보이더니, 동계훈련에 들어갔다는 거다. 이후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말에 너무 화가 났다. 처음에는 러닝타임이 다섯 시간도 넘었는데, 지금의 세시간 분량은 동계훈련 과정에서 벌어진 각종 숙청 장면을 3분의 1로 줄였다. 더 잔혹한 상황도 있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내내 피를 흘리거나 하는 선정적인 표현을 삼가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에서 잔혹함이 느껴진다면, 영화를 만든 나의 시각 때문에 아니라 이 사건 자체가 잔혹하기 때문이다.

-현재 어떤 영화를 준비 중인가.
=나이가 드니까 체력이 딸려서 고민스럽긴 하지만 꼭 하나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 1960년 사회당 당수를 죽이고 자살한 17세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그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닌,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배경을 그려보고 싶다. 아, 그리고 일본에 밀입국하여 바를 운영하던 한국 여자가 야쿠자들 간에 싸움을 유발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배우와 꼭 일하고 싶은데, 노출이 많이 필요하다보니 실행되기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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