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슬퍼서 더욱 아름다웠던 사랑
2008-05-05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조석환
<약속>의 촬영지, 전동성당에 가다

아름다움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전동성당의 내부에 들어섰을 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빛바랜 적회색 벽돌, 천장에서 밑으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아치의 곡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애처로웠다. 로마네스크 양식 특유의 섬세함 때문일 것이다. 순간 한 여인이 생각났다. 10여년 전, 이곳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했던 연인과 영원히 이별했기 때문이다.

영화 <약속>에서 조직폭력배 상두(박신양)의 자수 계획을 알게 된 희주(전도연)가 그의 손을 잡고 뛰어들어간 곳이 바로 전동성당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눈물의 결혼식을 올리고, 사랑하는데도 헤어져야 하는 절절한 아픔을 신에게 토로했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다짐해야 할 공간이 이별의 슬픔을 달래는 장소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별의 공간으로 전동성당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순교지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유교식 제사를 거부한 천주교 신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지금의 전동성당터에서 참수형을 당했고, 풍남문에 9일동안 그들의 잘린 목이 걸렸다고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성당 공사에 착수한 프랑스의 보두네 신부는 순교자들을 기리자는 뜻에서 처형지였던 풍남문의 성벽을 전동성당의 주춧돌로 삼았다. 신을 배반하면 살고, 믿으면 목숨을 잃었던 시절, 이곳은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경계였다.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상두의 모습은 순교자의 모습과 묘하게 중첩되는 면이 있다. "죄가 많으면 은혜도 깊다고 하더라." 그가 희주에게 위로하듯 건네던 성경 구절이 그렇듯 말이다.

상두와 희주가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성전을 뒤로 하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돌아가는 길,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비탄의 성모상, '피에타'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드레스에 하얀 구두를 신고, 연인이 떠나간 후 제단 앞에 쓰러져 울던 희주의 얼굴과 성모 마리아가 닮았다고 생각한 건 우연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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