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비권력형 섹스 스캔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말라>
2008-05-05
글 : 안현진 (LA 통신원)

Sex is No Laughing Matter│2007│이구치 나미│137분│일본│오후 8시│전북대
연상녀와 연하남의 연애담, 혹은 여교수와 제자의 비권력형 섹스 스캔들. 미술학교에 다니는 19살 미루메는 캠퍼스 벤치에서 담배 불을 나눈 여교수 유리가 얼마 전 기차를 놓쳤다며 차를 얻어 탄 사람이라는 걸 알아본다. 석판화 수업을 맡은 유리와 몇 번 더 마주친 미루메는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 모델을 선다. 호감은 섹스로 이어지고 미루메는 육체관계를 감정과 동일시하며 유리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스무 살 연하의 남자에게서 바라는 것이 분명한 여자에 비해, 솜털이 보송한 소년은 관계의 한계를 알기에 맹목적이다. 무작정 찾아간 유리의 집에서 남편의 존재를 알게 된 미루메는 실망한 뒤 멀어지려고 하지만 갈증만 더하고, 여기에 미루메를 바라만 보는 ‘톰보이’ 엔짱의 이야기가 서브플롯으로 더해진다.

<개와 고양이>를 만든 이구치 나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말라>는 2008년 1월 일본에서 개봉해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얻은 영화다. 독립영화가 상업적으로도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츠야마 겐이치와 아오이 유라는 청춘스타의 이름값에 있겠지만, 감독은 그들의 매력을 확대하기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다. 클로즈업이 극도로 자제된 장면들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얼굴이 아닌 몸의 실루엣과 움직임이다. 숨소리가 들릴 만큼 음악이 드문 것도 특징. 여성 감독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인상적이다. 유리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원하는 것을 말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여자로, 엔짱은 사랑을 위해 유리와 대면하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남성 캐릭터의 치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홍상수 영화에 대한 일본식 해답이라는 평도 있지만, 돌아설 때를 아는 엔짱과 선 긋기가 분명한 유리에게서 <봄날은 간다>의 은수를 떠올리는 관객도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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