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모든 역사는 풍경에 어떤 방식으로든 쓰여 있다”
2008-05-05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사진 : 조석환
미국실험영화의 거장 제임스 베닝-유운성 프로그래머-민환기 중앙대학교 교수 대담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서던 5월4일 오후 프레스 센터 1층 게스트라운지. 미국실험영화의 숨은 거장 제임스 베닝과 대화하기 위해 두 사람이 동석했다. 그를 이 자리에 초청한 유운성 프로그래머 그리고 5일 제임스 베닝의 영화 <시선을 던지다>의 시네토크 모더레이터를 맡은 민환기 중앙대학교 교수. 제임스 베닝 영화의 전도자를 자처하는 두 사람이 그와 그의 영화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는 제임스 베닝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가 될 것이다.

민환기│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왔는지 말해줄 수 있나.
제임스 베닝│단편을 몇편 만들었고, 장편은 20편 정도 만들었다. 독학으로 시작했다. 전통적인 내러티브 영화가 아닌 카메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궁금했다. 서서히 카메라 사용법을 알게 되면서 이런 저런 걸 시도하기 시작했다.

민환기│대학에서는 수학을 배운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제임스 베닝│내가 카메라를 처음 접했을 때 학생은 아니었다. 20세에 대학교를 중퇴한 나는 미주리의 지방 조직에서 일했다. 카메라를 산 것은 그때였는데, 내가 거기서 본 가난한 삶에 대해서 무언가 발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 뒤였다. 하지만 카메라를 꼭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만은 아니었고, 가벼운 소품들도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수록 점점 정치적인 내용을 담게 됐고, 피하고 싶었지만 나는 정치적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의 초기 영화의 전략은 서사를 뒤로 미루고 형식을 내용에 앞서게 하는 것이었다. <원 웨이 부기우기>(1977)가 바로 이 당시 만든 영화다.

민환기│그 영화에는 당신의 어떤 개인적인 경험이 엿보인다.
제임스 베닝│노동계급과 함께 하던 시절이었고 영화의 관객들도 역시 노동계급이었기 때문에 그 영화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중 내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구조주의 감독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 역시 내 영화가 구조주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역사적이고 개인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확인하게 됐다.

민환기│구조주의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과 당신 영화의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나?
제임스 베닝│내 영화는 픽션 또는 논픽션을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영화 속의 정보들은 구조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구조주의 영화 모델과는 차이가 있다.

민환기│당신 영화에서 하지만 풍경은 대상이고, 그게 개인적인 무엇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제임스 베닝│내가 왜 풍경을 지속적으로 비추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지만, 오늘 문득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 무리에 혼자 있느니 아무 것도 없는 데 홀로 있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이게 대답이 되지는 않을까.

민환기│나는 객관적인 대상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정서를 버리지 않는 당신 영화를 좋아한다.
제임스 베닝│어쩌면 모순인데, 그런 모순이야말로 내가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인 것 같다. 나는 자전적 요소들과 역사적인 요소들을 풍경 위에 얹는 방법을 고민했었고, 모든 역사가 풍경에 어떤 방식으로든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그 영역에서 결코 떠날 수 없게 됐다.

민환기│최근 당신 영화에는 스타일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제임스 베닝│1990년대 만든 텍스트-이미지 영화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연구하는 영화 4편을 만든 뒤에는 흥미가 떨어졌다. 다시 돌아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10년 정도 같은 주제를 탐구하고 났더니 지금은 말 그대로 거기서 잠시 떠나있고 싶어진 것이다.

민환기│당신 영화의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제임스 베닝│나는 언제나 관객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란다. 할리우드 영화의 자극적인 영상은 깊은 의미나 분석 없이 관객을 2시간 반 정도 즐겁게 해주지만, 분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나 자신을 할리우드 영화의 대항 모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세상의 문제들에 주의를 환기하고 배려하는 새로운 영화적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할 수는 있겠다.

민환기│당신 영화의 영향 받은 젊은 감독의 영화들을 본 적이 있는가?
제임스 베닝│때때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관심 있는 것은 관객의 시선에 영향을 주는 작품들이다. 3~4년 전에, <캘리포니아 트릴로지>를 3번 상영하는데 9번 모두 찾아온 관객이 있었다. 그는 상영이 끝날 때마다 나를 찾아와 공손하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영화를 본 경험으로 나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는데 그건 정말 내게 의미있는 일이었다.

유운성│이번 영화제에서도 상영되는 영화 <RR>과 <시선을 던지다>에 대해 질문해보자. 이 두편은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제임스 베닝│동시에 만들어졌다. <시선을 던지다>는 1년9개월 동안 16번 이상 촬영을 나갔는데, 촬영과 촬영 사이에 기다리게 되는 시간이 많아서 다른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타에 자주 갔는데 유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로 기차를 찍었다. 그게 <RR>이다.

유운성│<RR>은 영화 전체가 동시녹음이라고 들었다.
제임스 베닝│<시선을 던지다>는 그러지 못했지만 <RR>은 동시녹음을 했다.

유운성│당신은 <RR>을 풍경영화가 아니라 기차영화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가 있나.
제임스 베닝│사실, 난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RR>은 기차가 풍경을 지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만들었다. 기차의 오고감이나 커브를 그리는 움직임이 뭔가 주변의 풍경을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장면을 장악하는 배우가 있는 것처럼 기차가 그 장면을 장악할 때가 있긴 하지만, 놀랍게도 그 뒤에 풍경이 다시 반격하는 것을 확인했다.

유운성│ 차기작은 디지털영화라고 들었다. 결국 <RR>이 당신의 마지막 필름영화인 셈인데.
제임스 베닝│사실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35mm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또 작업 과정이 점점 열악해지는 16mm를 계속 고수할 수도 없다. 내가 활용해온 영화 작업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 슬프지만 새로운 기계로 전혀 다른 이미지를 생산할 것을 생각하면 행복하기도 하다.

민환기│전주영화제 ‘디지털 3인3색’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겠다.(그러자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웃음)
제임스 베닝│2007년 ‘디지털 3인3색’을 봤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내일은 올해 ‘디지털 3인3색’을 보러갈 거다. 굉장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민환기│각각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제임스 베닝│<RR> 2000달러. <시선을 던지다> 2500달러. 나의 노동력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은 거다. 기름값, 장비값, 그리고 샌드위치 사먹는 데 든 돈이다.

유운성│소로우의 <월든>을 참조해서 오두막을 지었다고 들었다.
제임스 베닝│소로우의 철학이나 자족적인 삶이 맘에 들었다. 8년 전 내가 교수로 있는 칼아츠에서 <보기와 듣기>(‘Looking & Listening’)라는 수업을 위해 강의계획안을 썼었다. 이번 여름 <월든>에 나오는 오두막을 지으려고 책을 다시 읽었는데 ‘소리들’ 챕터의 첫 두 문단과 강의계획안이 거의 일치해서 아주 놀랐다. 나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더 놀라운 건 나머지 부분이 기찻길의 소음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거다!

민환기│당신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어 할 것 같다.
제임스 베닝│<원웨이 부기우기>도 역시 장난스러운 영화이면서 동시에 진지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영화를 다시 만든 것도 유머가 어떻게 예술에 적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서다.(주: 제임스 베닝은 <원웨이 부기우기>를 27년 후에 같은 장소, 같은 연기자들을 데리고 재연했고 이 영화의 제목이 <원 웨이 부기우기/27년후>다.)

민환기│영화 말고 흥미 있는 것이 있나?
제임스 베닝│영화와 흥미를 분리하기는 어렵지. 사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영화를 이용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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