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내 모든 걸 담보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2008-05-06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이명세 감독이 조정자로 참석한 <실록연합적군> 시네토크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받은 충격은 너무나 크다. 흥분된 상태라 말을 정리하기 힘들지만, 이제까지 본 영화 중 가장 무서운 작품이란 생각과 청춘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내 머릿속에서 교차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어떠한 자아비판이 될 지 무척 궁금하다.” 영화 <실록연합적군>의 상영 후, 후끈 달아오른 극장의 열기를 이어간 사람은 이명세 감독이었다. 일본 운동권 학생들의 자아비판과 집단적 광기에 대한 두려움과 놀람의 감정을 고백한 그는 “질문이 많으실 테니 ‘시네토크’는 관객 여러분의 몫으로 돌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이 감독은 시의적절한 질문으로 와카마쓰 고지 감독과 함께 하는 ‘시네토크’의 훌륭한 조정자 역할을 해냈다. 관객들은 세 시간이 넘는 상영에 지치지 않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다음은 지난 5월4일 저녁을 뜨겁게 달군 <실록연합적군>과 미처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들의 기록이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담보로 넣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말을 꺼내는 고지 감독의 얼굴은 확고했다. “이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죽어서라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작비를 지원받는 일본문화청에 계획을 얘기한 지 “2초 만에” 거절당한 고지 감독은 “나고야에서 경영하는 작은 영화관, 신주쿠에 있는 3층짜리 집”을 모두 담보로 넣어 지금은 가진 게 없다. 영화의 중요한 배경인 아사마 산장조차 그의 별장이며, 촬영을 위해 모두 부숴야 했다는 대목에서는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실록연합적군>에 대한 그의 애착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좀더 용기를 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민주화를 이끈 세력은 젊은 사람들이 아니었나. 요즘 젊은 세대는 박력이 없어서 영화 속의 젊은이들이 멋져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시에 그는 학생운동에 대한 인상적인 충고를 던졌다. “절대 집단을 만들지 말라. 집단이 생기면 권력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권력자가 생기면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국가 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혁마루파와 중핵파란 두 집단이 서로간의 분쟁으로 100명도 넘게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일흔 두 살 노인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니 내 말을 들어달라.” 이웃나라에서 온 작은 노인의 충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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