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요절복통 유쾌한, 우린 액션배우다
2008-05-06
글 : 오정연
사진 : 오계옥
<우린 액션배우다>에 출연한 액션배우 5인과 감독을 만나다

반칙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흥미진진한 감독의 주변 인물들은 다큐멘터리의 재료로서 이미 더이상 훌륭할 수가 없는 존재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게임이다. 올해 전주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우린 액션배우다>는 서울액션스쿨 8기를 수료한 정병길 감독이 동기생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결과물이다. 골때리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뼈있는 농담을 버무린 <락큰롤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를 만든 정병길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는 전작과 많은 지점을 공유했다. 어디까지 믿어야하나 싶은 요절복통 인터뷰에, 시도때도 없이 개입하는 내레이션, 산만한 구성 등이 그것이다. 지난 5월3일과 5일에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는 영화 속 액션배우 5인이 감독과 함께 했다. 엄청난 열광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축제를 즐기는 그들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뒤풀이에 끼어들었다. 인정한다. 취재는 뒷전이고, 이 유쾌한 친구들을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위노나 라이더가 좋아서 미용사가 됐다는 곽진석, 도망가는 새엄마를 붙잡고 던진 말이 “엄마 100원만”이었던 권귀덕, 호랑이를 업으면 팔자 편다는 점쟁이의 말에 시작한 문신을 등을 덮는 450만원짜리 용으로 마무리한 전세진…. 이런 인간들이 실제 존재한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전세진씨는 한술 더 뜬다. “더 망가진 것도 있는데 편집에서 잘렸다. 보험 해약한 지 이틀만에 사고나서 보상 못 받고, 좌판에서 팔려고 샀던 34만원어치 팽이를 하나도 못 판 이야기 등등.” 그러나 영화 속 인터뷰 도중 벌어진 권귀덕씨의 급작스런 교통사고 장면은 누가봐도 픽션이다. “프롤로그 부분에 넣으려다가 여건상 포기한 대규모 스턴트 장면”을 대신하는 쇼인 셈인데, 알면서도 속는 거짓말처럼 놀랍다. 사실 이 장면은 4대의 카메라로 촬영하여 긴박하게 편집될 계획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있었던 감독이 카메라를 꺼버릴 줄이야. “일반적으로 그런 장면에서 자동차는 시속 30에서 35km 정도로 달리는데 그때는 더 리얼하게 가야한다는 생각에 시속 40km로 찍었다. 근데 병길이는 내가 진짜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랐던 거다. 멋진 그림을 못 잡아서 아쉽긴 하지만, 병길이가 날 생각해줬다는 게 기쁘기도 했다.” 권귀덕씨의 수줍은 대답은 감독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카메라와 대상이 맺고 있는 끈끈한 관계. 이는 액션 상대역으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게 일이고 맞아도 아픈 내색을 할 수 없는 스턴트맨이며 무술감독을 소재로, 자조와 동정으로 흐를 수 있었던 영화의 분위기를 긍정과 응원으로 이끈 원동력이기도 하다. 물론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정확하게 아귀가 맞는 우연의 힘도 컸다. “길이나 제대로 찾을까”라는 우려를 뒤로하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무술팀에 합류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난 신성일씨가 그날로 국제미아가 됐음을 알려온 것이 그런 순간들.

1년6개월에 걸쳐, 술 마실 때마다 카메라를 두대 이상 뻗쳐놓고 찍어낸 화면이 90분짜리 테잎 300개. 그날의 촬영에 대한 편집 아이디어를 메모해놓긴 했다지만, “벌여놓은 건 너무 많고, 정답은 없었다.” 일단 여기까지, 라는 심정으로 편집에 돌입한 뒤에는 <놈놈놈>의 무술감독이자 액션스쿨 선배인 지중현 무술감독이 사고로 숨졌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무술감독의 죽음을 기록한 유일한 영상이 담기기까지, 지금이야 “나라도 더 찍었어야 했는데 뭘 망설였는지” 후회가 된다지만 당시의 참담함은 영화를 본 모두가 공감할 만하다. 그야말로 동고동락. 그 모든 시시껄렁한 농담과 말못할 슬픔과 진지한 열정을 공유한 이들 ‘액션배우’의 현재가 궁금했다. 여전히 제주도의 유원지에서 일하는 전세진씨는 요즘 스포츠토토에 빠져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홍대 근처 술집의 장사가 그저 그렇다는 신성일씨는 배우 준비와 함께 “하와이 불법 체류도 준비 중”이다. 조카들 자랑에 여념이 없는 곽진석씨는 형과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영화와는 너무 다른 외모로 나타난 권문철씨는 가수 준비를 그만두고 연기자 수업 중이다. 무대에서 시선처리에 곤란함을 느껴 선글라스를 착용하여 특유의 “깊은 눈”을 감춘 권귀덕씨는 액션스쿨 8기 중 유일하게 스턴트일을 계속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웬만해선 다치지 않는 특기’를 공유한 탓에 언제 만나도 유쾌한 이들은 올해 하반기 일반 극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모두에게 소개하고 싶어 벌써부터 입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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