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와 <실비아의 도시에서>의 스페인 감독 호세 루이스 게린은 지금 세계 영화제 순례중이다. 베니스에서 시작하여, 토론토, 벤쿠버, 뉴욕, 부에노스 아이레스, 리스본, 홍콩, 그리고 전주까지. 하나씩 적어가며 알려주던 그는 “너무 힘든 여행이었다”며 웃는다. 그 긴 영화제 순례의 동기가 된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실비아라는 옛 여인의 허상을 좇아 도시를 돌아다니는 한 남자에 관한 영화이자, 그를 둘러싼 이 도시의 시선과 소리에 관한 영화다. 당신이 전주 어느 노천 까페에 1시간만 앉아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에 관해 상념에 젖어 본다면 호세 루이스 게린이 표현하고 싶었던 바를 이해하게 되리라.
-두 편의 영화를 보고나니 당신이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영화들이 궁금해졌다. =위대한 영화감독들이 있었다. 브레송, 채플린, 오즈, 존 포드, 드레이어 등등. 이런 감독들의 영화를 좋아한다. 60년대 이후부터 그런 거장들의 분위기가 서서히 끝나버린 것 같다는 말들도 있고 영화의 죽음을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가 죽었는지 아닌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건 사실이다. 뭔가 확연히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상업적인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 혹은 시장의 영화와 페스티벌의 영화.
-그중 당신은 아마도 후자일 텐데 어떤 경로로 제작비를 모으나.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은 전적으로 나 혼자만의 개인작업이므로 돈이 많이 들지 않았다. 페스티벌이나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기에 적합한 영화다. 하지만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일부분 상업적인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고 실비아 역을 맡은 여배우도 스페인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스페인 국영방송과 스페인 정부, 알자스주 등에서 제작비를 지원 받았다.
-선호하는 연출 방식은 어떤 것인가? =뭔가 완전히 짜여 있는 시나리오를 선호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란 내게 있어 첫 번째 작업에 해당할 뿐이며 항상 촬영을 하면서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된다. 언제나 내가 첫 번째 관객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든다. 말하자면 전차를 타고 목적지에 가는 사람이 우연히 여러 풍경과 상태에 처할 수 있는 것에 비유해볼 수 있다. 정해진 것들만 있으면 흥미가 없지 않겠나. 그래서 대사도 현장에서 촬영과정 중에 만들어가는 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현장에서는 정말 많이 벌어진다. <실비아의 도시에서>도 그런 식으로 완성된 장면들이 많이 있다. 많은 대사들, 여배우의 얼굴에 빛이 들고나는 것 등 무언가 갑자기 일어난 우연들에 많이 기댔다. 나에게 영화라는 작업은 짜여진 것과 우연적인 것들의 변증법이다.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세심한 응시와 소리의 채집이라고 부를 만하다. =어떤 장면의 경우는 소리가 배우의 시점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있다. 테라스에서 바이올린 켜는 사람을 볼 때가 그렇다. 그런 경우는 배우의 시점에 소리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남자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따라갈 때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시선과 소리가 대치된다고 볼 수 있다. 거리에서 대화하는 사람들, 가게에서 들고 나는 사람들의 소리가 그가 그녀를 생각하는 것에 개입한다. 한편으로 그런 건 소리로서 도시를 묘사하는 방법이며 그때는 거의 다큐멘터리적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에서 시선과 소리는 서로가 별개의 것이되 공존한다. 그게 도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은 다른 영화다. 그건 모든 걸 1인칭의 시점으로 보는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에도 신경을 많이 쓰겠다. =배우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도록 분위기만 조성해준다. 나는 그때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인상적인 무엇들이 그 자리에서 나오기를 기다린다.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심정이랄까. 강요해서는 나올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