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가장 자연스럽다”
2008-05-08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사진 : 조석환
<트릭스>의 안제이 자키모프스키 감독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운명을 믿는 것은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폴란드 감독 안제이 자키모프스키의 <트릭스>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로 인생에 더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 소년의 이야기다. 운명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동화책에 나올 법한 이야기로 풀어낸 감독은 그의 유년기를 재료로 삼았다. 100%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트릭스>는 나의 누이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그의 말처럼 영화 속에서 스테펙과 누나 엘카의 관계는 어린 시절 그를 보살핀 13살 터울의 누나와 감독의 관계를 그대로 반영했다. 누나의 데이트에 따라가려는 장면도 개인적인 경험에서 불러온 에피소드.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이 자신의 과거를 영화의 소재로 삼은 자키모프스키의 변이지만, 영화에 진정성을 불어넣기 위해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창조적이다.

<트릭스>에서 스테펙과 엘카를 연기한 두 배우가 이전까지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인 점은 감독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을 위한 한가지 방법. “나는 신인배우를 선호한다. 연기를 오래한 배우의 몸에 배는 꾸미는 듯한 태도가 없기 때문이다.” 폴란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연기상, 관객상까지 모두 휩쓴 전작 <Squint Your Eyes>에서도 10살 소녀가 주인공이었는데 그 역시 연기가 처음이었다.

테이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끔은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연기하지 않는” 배우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도 그의 영화가 생명력을 갖는 비밀이다. “어떤 것들은 절대로 재생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숨어서 관찰하거나 훔칠 수밖에 없다.” IMDb(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가 일러주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단편 하나, 장편 둘. 카메라를 잡은 지 20년이 가까워오는데도 조촐한 필모그래피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영화의 연출, 각본, 제작을 겸했고, 늘 같은 촬영감독, 음악감독, 프로덕션디자이너와 일해왔다.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던 1991년부터 계속 함께한 사람들로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 할뿐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가족”이라고 소개한다. 그중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에바 자키모프스키는 그의 아내로 올해 전주를 함께 방문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제작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진정한 과작 감독이 준비하는 차기작은 2편이다. 한편은 젊은 커플이 나오는 이야긴데 <트릭스>처럼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고, 다른 한편은 시대물로 19세기 외과의가 주인공이다. 조금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자 웃으며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안된단다. 영화에서 스테펙이 행운을 빌 때마다 엄지를 쥔 주먹을 꼭 쥐었던 것처럼 그렇게 주먹을 쥐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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