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뉴진스, 과거를 바라보는 캠코더
2024-06-14
글 : 이우빈

시간관이란 말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모두가 알 법한 예시를 들면 단번에 받아들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걸 그룹 뉴진스는 과거지향적이다. 뉴진스의 멤버들이 90년대의 어느 시간을 헤매는 시간 여행자라거나 하는 세계관이 있진 않다. 그럼에도 <Ditto>에 이어 최근 까지 뉴진스엔 시기 미상의 아련한 과거 혹은 90년대의 청춘, 뉴트로, Y2K 같은 수사가 함께했다. 저화질의 캠코더 영상에서 교복을 입고 춤추던 <Ditto> 뮤직비디오 속 소녀들의 모습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했겠으나 뉴진스의 전략은 더 전방위적이고 섬세하다. 80~90년대 유행한 음악 장르의 소스를 기반으로 곡을 만든다거나, 단독으로 출시한 소통 애플리케이션 ‘포닝’에 피처폰 이미지를 활용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도 더 감각적인 톱니바퀴들이 뉴진스의 시간관을 만든다.

뮤직비디오의 도입부, 플레이어에 비디오테이프가 하나둘 꽂히고 나면 뉴진스 멤버들은 카메라를 들고 서로의 얼굴을 찍으며 장난치고 있다. <Ditto> 때부터 뉴진스풍의 로 파이 감성을 대표하고 있는 캠코더의 매체성이 두드러지는 순간 눈에 띄는 것은 화면에 드러난 카메라의 인터페이스다. 쉬이 지나칠 순 있겠으나 인터페이스의 오른쪽 위엔 4K, 8K라는 고화질 포맷이 나타나 있고 왼쪽 위엔 2024년이란 시각이 명확히 제시돼 있다. SD 화질이나 1997년이 아니다. 이는 의 세계가 20세기의 과거가 아닌 21세기의 사반세기에 다다른 현재에 있다는 의미다. 이후 뮤직비디오가 진행되며 윈도 초기의 컴퓨터 인터페이스나 로 파이의 스탠더드 화면비, 저화질 영상이 재생된다 해도 이것들은 현재에서 그린 과거의 모습일 뿐 진짜 과거가 아니다.

과거와 과거지향적 세계는 전혀 다르다. 전자를 표현하려면 세계관이 필요하고 후자를 표현하려면 시간관이 필요하다. 뉴진스의 목표는 지난 역사를 치밀하게 재현한 뒤 그룹의 세계관을 단단하게 직조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현재의 렌즈를 통해 과거라는 시간을 이용하고, 과거의 뉘앙스에 담긴 아련함이나 순수함 따위의 직관적인 감성을 추출하는 일이 진정한 목적이다. <Ditto>의 뮤직비디오를 두고 실제 한국의 90년대 학교와 너무 달라서 이질감이 든다는 평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한국의 90년대 학교를 보고 싶다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보면 된다. 뉴진스가 뉴트로 컨셉을 표출하는 듯하면서 가장 트렌디한 걸 그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던 이유는 과거지향적 태도와 현재성의 오묘한 혼합 덕택이다. 세계관과 시간관 사이의 사소한 뉘앙스 차이가 뉴진스만의 고유함을 형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