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포기하지 않는 마음, <청설> 김민주
2024-10-22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자신의 꿈에 열정이 있고 목표가 분명한 친구. 언니 앞에서는 여려지기도 하지만 솔직하고 직설적인 사람.” 배우 김민주가 분석한 <청설>의 서가을은 곧은 직선 같다. 걸 그룹 아이즈원의 주축 멤버로서 근면 성실하게 활동했던 시간들은 배우 김민주에게도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아이돌 활동은 김민주가 가을로 거듭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 짧은 시간 안에 안무를 완벽히 익혀야 했던 과정은 수어를 몸으로 빠르게 체득하게 했고, 초 단위로 임팩트를 남기는 무대 위의 시간은 눈에 띄는 표정 변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배우 김민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수어를 배우는 과정을 “청각장애인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몸으로 조형하는 언어의 바다로 빠져들기 위해 그는 먼저 이들의 문화 속에 젖어들었다.

-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관객을 만났다. 관객과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나.

관객들의 반응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새로웠다. 우리가 열성을 다해 재미있게 찍은 신에 진짜 웃음이 터져나오고,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장면에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열기가 느껴졌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반응이 나오는 게 신기하고 행복했다.

- 가을이 역할을 맡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오디션을 본 뒤에 조선호 감독님과 미팅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크게 강조했던 것은 내 나이대의 친구들이 할 수 있는 고민과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만의 가을이를 만들라고 하시더라.

- 그래서 자신만의 가을이는 어떻게 완성했나.

가을이는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확신이 강한 친구다. 목표를 설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와 싱크로율이 90% 정도 되는 것 같다. 성격이 비슷하기도 하고 꿈을 생각하는 마음도 비슷하다. 다만 10%의 간극은 좀 많이 솔직한 거? (웃음) 가을이가 직설적이다. 전사와 히스토리도 상상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양수리에 부모님 별장이 있으니까 그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에 수어교육원과 청각장애인 커뮤니티가 있는지 알아봤다. 가을이 일상에 새겨진 이동 거리들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 가을이의 성격을 보여주듯 표정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짧은 의성어도 중간중간 사용한다.

실제 수어교육원에 가서 청각장애인 선생님들께 수업을 받았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영상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했다. 선생님들과 직접 교류하며 언어를 배우니 더더욱 대충하고 싶지 않았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배우는 것과 같다. 부담감과 책임감을 갖고 디테일하게 수어를 연구하려 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에 나오는 모든 대사를 수어로 소화하는 게 멀게만 느껴졌는데 일상의 말들을 전부 수어로 바꾸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청각장애인들은 각자의 수어 스타일이 다 다르다고 하더라. 그래서 더더욱 가을이의 성격에 집중했다. 수어가 가을이를 나타낼 수 있도록.

- 어떤 장면에 그런 의도가 담겨 있을까.

언니 여름(노윤서)과 말하는 장면 대부분이 그렇다. 가을이는 언니와 대화할 때 하고 싶은 말이 확실하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손동작을 크게 했다. 또 언니랑 있으면 편하니까 부드럽게 이어가기도 했다. 가을이가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손동작에 감정이 들어가도록 힘을 주는 강도, 세기 등을 다르게 했다. 3개월가량 연습했고 일주일에 나흘이나 닷새가량 교육원과 수영장을 오갔다.

- 자매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을 돌이켜보자. K자매라면 공감할 포인트가 무척 많았는데.

내가 첫째다. K장녀로서 사실 여름이의 입장이 많이 이해가 됐다. (웃음) 그렇지만 가을이에게 더 몰입하려 했다. 사실 자매들은 싸웠다가도 맛있는 거 먹으면 금세 풀린다. 그게 무척 자연스럽다. 정말 사소한 이유로 울었다가 화냈다가 싸웠다가 한다. 변함없는 건 이 모든 것들이 서로에 대한 애정이라는 거다. 그 애정이 있기 때문에 자매들은 함께 지낸다. 가을이와 여름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니인 여름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느끼는 부담감과 미안함. 가을이는 어느 지점에서 그것을 버틸 힘이 없어져버린 거다. 이제는 둘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됐다고 생각했다. 사실 여름이는 마음이 무척 복잡했을 것이다. 자신 때문에 삶의 방식까지 바뀌어 버린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을 것이다.

- <청설>을 가득 채우는 건 세 배우의 저력만큼이나 아름다운 여름 풍경이다.

와! 정말 더웠다. (웃음) 지난여름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첫 촬영을 했다. 바뀐 수영장으로 찾아갔다가 “시설이 정말 별로다~” 하는 그 장면. 한 걸음 뗄 때마다 땀이 주르륵 쏟아졌다. 근데 또 수영장은 엄청 춥더라. 냉동과 해동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그래도 스크린으로 봤을 땐 정말 반짝이더라. 하늘도 푸르고 여름의 초록도 느껴지고. 정말 다행이었다.

- 가을이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건 수어뿐만이 아니라 수영도 익혀야 했는데.

수영은 오직 가을이만을 위해 배웠다. 워낙 물과 안 친해서 무서웠다. 어떻게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밤낮으로 수영장을 찾았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동안 내 삶에 없던 것들을 접했다. 청각장애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수영을 배운 뒤에는 여행지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제 내 세상은 더욱 넓어졌다. <청설>이 내게 선물해준 것들이다.

- 이번 작품을 거치면서 스스로 발견한 배우로서의 장점은 무엇인가.

너무 부끄러운데…. (웃음) 끈기. 수영을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가을이에게 배운 게 있다. 좋아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 나도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무서운 수영을 거뜬히 통과해왔다. 한계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을 아주 칭찬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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