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너에게 닿기를, <청설> 노윤서
2024-10-22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여름의 세상은 동생인 가을(김민주)로 가득하다. 청각장애를 지닌 수영선수인 가을을 응원하며 그가 국가대표로 선발돼 올림픽에 출전할 날만을 염원하고 있다. 가을이가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돕는 시간 외에는 수어를 배우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 여름의 일상에 용준(홍경)이 등장한다. 용준은 여름을 좋아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표하며 접근하고, 그런 용준으로 인해 여름의 세상은 차츰 넓어진다. 여름을 연기한 노윤서는 2022년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데뷔한 뒤 영화 <20세기 소녀>, 드라마 <일타 스캔들>,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등에 출연하며 주목받았다. 지난해에는 <일타 스캔들>의 해이 역으로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매 작품 연기한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켜온 그는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여름이의 내면의 갈등까지 헤아리며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해냈다. 신인의 것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단단한 연기를 보여주는 노윤서의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계속 궁금해진다.

-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청설>을 선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기뻤다. 관객들과 직접 대면해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떨렸다. 큰 스크린으로 <청설>을 보니 긴장이 됐다. 집중해서 열심히 보기는 했는데 객관적으로 감상하기가 어렵더라. 돌이켜보면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을 즐겼던 것 같진 않다. (웃음) 그럼에도 사운드와 음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화관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즉각 확인하면서 관람할 수 있어 행복했다. <청설>은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필모그래피에 남길 수 있어서 뜻깊다.

- <청설>을 반드시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만영화를 좋아해서 많이 봐왔는데 그럼에도 <청설>은 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청설> 원작을 봤는데 진정성 있는 인물들의 서사가 크게 와닿았다. 원작만큼이나 우리 영화의 대본도 좋았다. 들여다보면 캐릭터 한명 한명 너무 착한 사람들이다. 악인도 없고 갈등도 없이 인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보여주면서도 청량함을 잃지 않는다. 특히 이런 청춘 로맨스물을 그동안 계속 해오고 싶었고 그 점이 크게 작용했다. 매력적인 요소가 많아서 주저 없이 작품을 택했다.

- 여름이는 자기 삶의 모든 초점을 가을이에게 맞춰 살고 있다. 그런 여름이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했나.

작품에서 묘사된 것 외의 여름이의 삶의 모습을 생각해봤다. 영화에서 가을이가 청각장애를 가진 수영선수라고 차별받았던 것처럼, 여름이가 가을이와 함께 겪어온 무수한 차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건들을 거쳐 가을이에게 온전히 몰두하는 여름이가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 한다. 하지만 악의 없는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때론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 않나. 여름이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가을이를 대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 그런 여름이의 복잡한 심정에 집중하려고 했다. 여름이의 깨달음이 갖는 의미를 크게 받아들였다.

- 용준이는 여름이에게 첫눈에 반해 직진하지만 용준이에 대한 여름이의 마음의 속도는 훨씬 느리다.

여름이는 현실에 치여 연애에 별 욕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용준이가 솔직하게 진심을 다해 다가오지 않나. 서로 바쁜 와중에도 “30분만 가다려”라면서 찾아와 여름이에게 도시락을 안긴다. 어떻게든 작은 기회라도 만들어 친해지려는 진심어린 행동들, 무엇보다 가을이에게 잘해주는 모습이 여름이로 하여금 계속 용준이를 돌아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름이가 용준이를 밀어낸 건 여력이 없기 때문도 있지만 한편으론 용준이가 자신 때문에 힘들까봐 걱정돼서이기도 하다. 그런 여름이의 내면의 갈등에 집중했다.

- 여름과 가을이는 용준이와 간 클럽에서 소리를 몸으로 감각해보는 경험을 한다. 세 사람이 스피커에 손을 가져가 댈 때 소리 없이 스피커의 진동만으로 연출돼 관객으로서도 인상 깊었던 신이다.

의미 있는 장면이라 좋긴 했지만 배우들끼리는 서로 낯간지러워하면서 찍었다. (웃음) 길거리에서 촬영하다 갑자기 클럽에 가니까 ‘우리 지금 바이브가 굉장히 달라졌다’라고 서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무척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여름이와 가을이도 클럽이란 공간을 가본 적이 없을 것 아닌가. 사람이 많고, 어둡고,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위험하니까. 그래도 용준이 덕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장면이다.

- 용준, 가을이와 계속해서 수화로 대화한다.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기 위해 시간이 꽤 필요했겠다.

처음에는 수화 배우는 게 걱정이었는데 하다 보니 또 되더라.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연습하려고 노력했다. 수어로 대화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찾아보면서 일상에서 수화로 대화할 때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표정은 어떻게 쓰는지를 유심히 봤다.

- ‘사랑을 시작하는 데에 장애가 장벽이 되는가’에 관한 답이 여름과 용준의 관계를 통해 영화에 드러난다. 이와 관련해 <청설>을 찍고 난 후 생각이 변화한 지점이 있나.

<청설> 원작에 ‘사랑은 번역이 필요하지 않다.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처럼 반드시 말이 아니더라도 눈짓, 행동 하나, 무언가를 챙겨주는 손길 하나로 사랑은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니다.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청설>을 찍고 나서 변화한 지점이 있다면 이러한 나의 생각이 더 강화됐다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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