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가장 저조한 박스오피스 기록을 내던 봄철 중국 극장가의 양상이 올해는 조금 달라졌다. 올해부터 노동절 연휴가 3일로 축소되면서 5월 초 ‘황금개봉기’에 대한 매력이 준데다 올림픽 때문에 개봉시기를 앞당긴 대작영화들이 한가한 봄철 극장가를 후끈 달궈놓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3월 극장가를 강타했다면 4월은 <삼국지: 용의 부활> <황시의 아이들>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같은 합작영화들이 한달 총 박스오피스 수치를 2.5억위안까지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때아닌 봄철 대작 행렬들 틈에서 초라한 성적이긴 해도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 있다. 바로 구창웨이의 <입춘>이다.
전편 <공작>에 이어 또다시 작은 도시, 작은 인물, 그리고 그들의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지점에 세밀하게 카메라를 들이댄 <입춘>은 <공작>과 자매편이라고 할 만큼 닮아 있으면서도 조금 더 나아간 작품이다. 파리 오페라극장에 서는 것이 꿈인 주인공 왕차이링은 라디오 방송에 나올 만큼 실력있는 성악가지만 못생긴 얼굴에 재력도 없어 작은 도시를 벗어나 베이징으로 갈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베이징의 예술학교 시험에서 네번이나 낙방한 같은 동네의 무명화가와 동성애자라고 손가락질받는 발레리노 역시 그녀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한 것은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감싸줄 것 같은 이들이 상대가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에 절묘하게 배반한다는 것이다.
구창웨이 감독의 부인이자 중국의 국민여배우라 할 만한 장원리가 분장을 통해 철저한 못난이 성악가로 분해 화제가 된 이 영화는,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드림’을 꿈꾸는 수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욕망과 무기력함을 솔직하게 반영하면서 잔잔한 동감과 화제를 끌어내고 있다. 첫 작품 <공작>의 결론에서 출발했다는 <입춘>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애매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같은 주제로 삼부작을 계획하고 있는 감독의 세 번째 작품 <무릉도원>은 어쩌면 그 꿈에서 시작될 것이다. 소도시의 평범한 인물들이 꿈꾸는 이상과 예술, 새로운 인생에 대한 욕망이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희망을 품게 될까. <무릉도원>은 일찌감치 탕웨이가 주인공으로 거론되었으나 <색, 계> 로 인한 징계조치 이후 재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