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동석] 난 음지, 양지 안 가리던 잡초였다
2008-05-21
글 : 이영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스크린과 안방극장의 떠오르는 감초, <비스티 보이즈> <강적들>의 마동석

마동석, 이 배우 요즘 상종가인 줄 금세 알겠다.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원하는 답변을 척척 내놓는 걸 보면 최근에 인터뷰를 많이 가졌다는 증거다. 하긴 <히트>에서의 미키성식, <비스티 보이즈>에서의 스패너 사장, <강적들>에서의 우직한 경호실장까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출연한 영화, 드라마에서 배우로서의 존재 표식을 확실히 했으니 언론의 관심이 과한 건 아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력이 조금 더 생겼으면 좋겠고”, “한컷이라도 내가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고”라는 욕심을 넘어 “두편의 영화 아이템 기획을 진행 중이고”, “할리우드영화에서 갱 맛 나는 영어를 내뱉는 역할도 맡고 싶다”는 포부까지 내비치는 마동석.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탄탄한 근육 안 배우로서의 속살을 맘껏 보여줄 때가 언제쯤 될지 더 궁금해졌다.

-<강적들>에선 경상도 사투리다. <히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였는데.
=좀더 시골스러운 오리지널 사투리는 배우기가 쉽다. 그런데 다들 7, 8년쯤 서울물 먹은 사투리를 원한다. 평소에는 표준어 비슷하게 쓰다가 화나면 사투리가 튕겨나오는 식 말이다. 시작할 때는 원어민 발음 녹음해서 듣고 들어갔는데 이제는 대본이 그날 나오니까 억양만 조금 섞는 수준이다. 많이 부족하다.

-사투리 녹음은 누가 해주나.
=<강적들>은 <히트>에 함께 출연했던 김정태가 해준다. 부산 토박이다. 일반 분들에게 대본 드리고 읽어달라고 하면 그 맛대로 못 읽으신다. 배우들에게 부탁하는 게 효과적이다. <히트> 때는 실제 전라도에서 건달 생활하는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사투리 좀 배우자고 했더니, 첫마디가 “아따 형님 저는 서울서 살아서 저녀 사투리를 안 쓰는데 말입니다”라고 하더라. (웃음) 그렇게만 해주면 된다고 했지.

-<히트>는 배우 마동석을 대중에게 알린 계기다. 오디션에 응한 건가.
=아니. 술자리에서 그냥. 김정태가 오라고 해서 갔는데 유철용 감독님이 계셨다. 형사드라마 한다는 것도 몰랐다. 갔더니 “앉아라” “예!” “마셔라” “예!” “넌 내 동생이다” “예? 예!” “사석에서는 감독님이라고 하지 말고 형이라고 그래” “예? 예!”. 뭐 이런 식이었다. 술만 마시다가 가실 때 뭐 하나 준비하는데 같이 하자고만 하셨다. 그런 자리 경험이 많다. 이거 하자, 저거 하자고 하지만 말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유 감독님이랑 헤어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연락이 없어서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잘 계시죠? 저도 잘 있어요.’ 답이 없더라. 그렇구나 싶었는데 두달 정도 지나서 대본 다 나왔다고 부르셨다. 남 형사라고 있는데 너랑 잘 맞는다고.

-‘형사24시’ 뭐 이런 유의 프로그램들을 보면 외양은 정말 우악스러운데 사실 숙맥인 형사들이 꼭 한명씩 있다. 시청자가 남 형사를 좋아했던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남 형사도 돌격머리에 미키마우스 옷을 입고 다니잖나.
=미키마우스 옷은 재밌으라고 입은 게 아니다. 광역수사대에서 일하는 친구를 남 형사 모델로 삼았는데, 험악한 사람들이 골프웨어를 입어도 귀여운 만화그림 박힌 걸 고른다고 하더라.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했는데 그게 만화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게 이슈가 돼서 ‘미키성식’이라는 이름도 붙은 거고.

-<히트> 때에 비하면 많이 몸이 줄었다. 얼굴도 핼쑥하고.
=미국에서 운동할 때는 113kg이었으니까 지금까지 30kg 정도 뺐다. <비스티 보이즈> 때문에 13kg쯤 뺐고. 그래도 첫 촬영하고 나서 윤종빈 감독이 왜 이렇게 등판이 넓냐고 한숨을 쉬더라. 원신 원컷이 많은데 내 등이 다른 인물들을 가린다고. 그렇다고 더 뺄 수도 없었다. (하)정우가 키가 좀 크고 골격이 있는 편이잖나. 정우에게 위압감을 줘야 하는 인물이니 너무 빼면 또 안 되고. 사실 운동하면서 좀 예쁘게 몸을 빼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살은 빼고 배는 좀 나오게 해달라”고 해서 그냥 술과 피곤 다이어트로 갔다.

-<비스티 보이즈>의 창우도 참고할 만한 모델이 있었나.
=관련 인물들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런 거 되게 좋아한다. <천군> 때도 귀순한 분 만나서 두달 쫓아다녔고, <강적들>도 청와대 경호실장님 만나서 캐물었고. <비스티 보이즈>는 실제 호스트바 선수들이 출연했는데, 그 친구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사장 같은 애들이 하나씩 있느냐, 옷은 양복 입고 다니느냐 뭐 이렇게. 몇 가지 조언을 들었는데 다들 한마디씩 덧붙이더라. “형이랑 되게 비슷해요.” (웃음)

-창우는 등장해서 재현(하정우)을 위협한다. 손에 들려 있는 무기만 다를 뿐이다. 장면별로 감정을 어떻게 다르게 배분했나.
=그전에 뺀질거리는 재현을 여러 차례 어르기도 했을 텐데, 영화 속 창우는 그 뒤부터다. 그렇게 돈을 달라고 했는데도 안 주니까 꼭지가 도는 거지. 그러면서도 친구니까 겁을 주려고 하기도 하고, 돈을 받아내기 위한 연극을 같이 꾸미기도 하고. 도저히 안 되니까 끝장을 보려고 하고. 감정 변화가 어렵진 않았다. 다만 처음에는 실실 쪼개면서 애드리브도 쳐볼까 했는데 윤종빈 감독이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원했다. 심플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는 인물, 전형성을 그대로 전달해주자고 하더라.

-가족들은 <비스티 보이즈>를 봤나.
=엄마가 그러셨다. 너 그렇게 욕 잘하는 줄 몰랐다고. 다른 감독님들은 ‘나는 돈 빌린 거 없지?’ 그러셨고. (웃음)

-뭉툭하고 거칠어 보이는 외모 덕을 본 셈이다.
=<비스티 보이즈> 행사 때도 많이 봤다. 배우들 가드하면서 ‘거기 사진 찍지 마세요’, 뭐 이런 식으로 매니저 노릇하고. (웃음) 공유, 조인성 이런 친구들하고 친하다고 하면 잘 안 믿는다. 오달수 형이랑 친하다고 하면 믿으려나. 오디션 보러 다닐때는 더했다. 한국 와서 책 좀 보자 싶었는데 무엇부터 집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사무실에 있는 시나리오부터 훑었다. 그때는 정식 계약을 한 건 아니고 싸이더스HQ 김상영 이사가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라서 들락거린 거다. 오디션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책 보다가 뭐가 들어간다 싶으면 먼저 연락하는 식이었다. 전화 해서 오디션 좀 봅시다 하니까 저쪽에서는 놀라지. 막상 만나면 시커먼 놈이 돈 받으러 온 줄 알고 또 놀라고.

-배우 한다고 했을 때 김상영 이사가 말리진 않던가.
=그러게. (웃음) 내가 뭐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그걸 알아서 내버려뒀나 보다. 사실 김 이사랑 지금은 뮤지컬 음악감독하는 심상학이라는 친구랑 셋이서 초등학생 때부터 이민가기 전까지 뭉쳐다녔다. 삼총사였지. 중학생 때는 만화가가 되자고 셋이서 합숙하며 그림 그렸고, 고등학생 때는 밴드 결성해서 둘은 기타치고 난 드럼치고. 정말 짧은 상식과 어휘력 때문에. 음. 처음에는 ‘록 쇼크’(Rock Shock)라고 충격을 줘보자 뭐 이런 이름을 지었고. 문법에 맞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에는 즉흥연주라는 뜻의 ‘잼’이었고, 그 다음은 ‘괘’. 줏대가 없어서 밴드 이름을 자주 바꿨다. 당시에 선배 중에 ‘피뢰침’이라고 트래시 메탈 그룹이 있었는데, 정말 우리에겐 전설 같은 존재였다. 한번 뵙고 싶은데.

-몸을 만든 건 언제부터였나. 본격적으로 운동을 한 건.
=미국 가서부터다. 고등학생 때 이민을 갔는데, 그때 몸무게가 60kg 정도였다. 경쟁심이라는 게 무섭다. 조금씩 근육 나온다고 좋아하다가도 헬스장에 가면 더 좋은 사람이 항상 있는 거다. 게다가 동양인으로 져서는 안 된다 뭐 이런 것도 있고. 그러다 시합도 나가게 되고, 트레이너 자격증도 따게 된 것이고. 운동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한번 가보자 싶어서 체육학을 뒤늦게 전공했고.

-대학 진학을 곧바로 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꼭 굳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 부모님은 시애틀에 사시는데, 난 계속 돌아다녔다. 텍사스, 뉴욕, LA, 오하이오 등등. 일본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중국 식당에서 남은 밥 치우는 버스보이 하고. 옷 도소매도 하고, 바텐더 자격증 따서 한국 식당에서 일하기도 하고. 불법이지만 다단계 분유 판매도 하고.

-애들 먹는 분유?
=이쪽 주에서 분유를 사서 다른 주에 파는 식이었다. 한통 가격이 대개 800원에서 1천원이라고 하면 당시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는 1500원에 팔았다. 반값만 받아도 엄청 남는 거다. 근데 이게 쉽지가 않다. CCTV가 작동하니까 매번 사람 바꾸고 변장해서 분유를 사들여야 했다. 근데 나중에 보스가 혼자 돈 벌어서 도망가는 바람에 우리만 낙동강 오리알이 돼버렸다. 그 뒤에 낚싯바늘 공장에서 일도 했는데 좀 기다려달라고 해서 두달 일하고 나서 밀린 주급 받으러 갔더니 회사가 없어지질 않나. 뭐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 한 일이 없다. 그나마 나이트클럽 기도 일을 좀 오래 했다. 친구가 클럽을 운영했는데 사고가 워낙 많이 나서 도와준 적 있고. 스트립댄서들 보디가드 겸 운전해주는 아르바이트도 잠깐 했고. 용돈 벌겠다고 클럽에 나가 팔씨름도 했고. 1등도 몇번 했는데, 덩치가 심하게 크고 손이 부채만한 애들이 나타나면 그날은 그냥 술만 마시고 오고. 음지, 양지 안 가리던 잡초였지, 뭐.

-이종격투기 트레이너로도 활동했다고 들었다.
=가장 오래 한 일이다. 10여년 했다. 마크 콜맨이라고 UFC 두번 우승하고 프라이드 초대 챔피언인데 당시에 무적이었다. 그 친구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웨이트를 도와주면서 나중에는 개인 트레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체격이 너무 크니까 다리 한손으로 잡고 30분 스트레칭 하고 나면 정말 기력이 다 빠진다.

-오랫동안 운동을 했으니 다른 또래 배우들보다 체력이 좋겠다. 밤샘 촬영에도 끄떡없고.
=아니. 오버해서 운동하는 바람에 후유증이 남아 있다. 시합 나가기 전에 미국 애들이 나한테 같은 돈 받고 가짜 약을 팔았는데, 먹고 다음날 일어났더니 손가락이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전신마비가 오더라. 덩치는 산만한 애가 911 앰뷸런스에 실려가는데. (웃음) 숨 넘어가기 직전에 살아났다. 나중에 그놈 잡으려고 다녔는데 벌써 감옥에 가 있더라. 실수로 부실한 난간과 벽 사이에 어깨가 낀 상태에서 몸이 떨어진 적도 있다. 그때 내 차가 스틱이었는데, 한손으로 기어 잡으랴 운전대 잡으랴. 겨우 유명한 병원에 가서 두번 대수술을 받았다. 그때 전신마취를 몇번 해서 기억력이 별로 안 좋다. <천군>쪽에서 연락을 받았던 것도 그 무렵이다. 어릴 때부터 복싱, 유도, 레슬링으로 단련한 북한군 특수부대 캐릭터였는데 연락이 들어왔다. 근데 수술 뒤에 몸무게가 쭉 빠진 거다. 6개월 재활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엔 영화가 3년 뒤로 밀렸더라.

-그래서 배우들 트레이너 일을 한 건가.
=생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잖나. 그래서 개인 운동을 좀 도와준 건데. 한 기사에서 운동하던 애가 아르바이트로 영화에 출연했다는 식으로 썼더라. 굉장히 속상했다. 운동이 아니라 영화하겠다고 다 접고 한국 온 거였는데. 돌아보면 어려서 무대 공연을 많이 한 게 자극원이 됐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형들 소개로 작은 연극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꿈을 키우기도 했고. LA에 머물면서도 오디션도 적잖이 봤고.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을 때 도움을 준 배우들이 많았을 것 같다.
=김수로, 황정민, 박중훈 형님. 임형준 같은 친구들도 많이 도와줬고. 최근에는 아무래도 김정태, 하정우 이 친구들 덕을 봤고. 그리고 송강호 선배님. 사실 미국에서 비디오로 <조용한 가족>을 보고 한국에 저런 배우가 있나 싶었다. 호흡이나 대사 치는 게 완전히 달랐으니까. 진지한 캐릭터인데 보는 사람을 웃게 만들잖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때 옆에서 리딩하는 거 보고 완전 뒤집어졌다.

-가족들은 어떤가. 배우로서 얼굴이 좀 알려져서 좋아할 것 같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미국 가라고 하셨다. 50만원 받고 고생하는 거 못 보시겠다면서. <천군> 때는 육체적 고통 때문에 여러 번 후회했다. 12월 마지막 주에 여름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나만 웃통 벗은 채 도끼 들고 20명과 싸워야 하니. 찬물에 오래 있으니 대장은 꼬여오고, 설사는 나는데 나름 방한이라고 랩으로 바지를 감쌌으니 화장실 가기도 쉽지 않지. (웃음) 사흘째 촬영날 다크서클이 목까지 내려오더라. <히트>의 유철용 감독님 호가 철야다. 철야 유철용. 3일밤 새고도 거목처럼 앉아계신다. 그 앞에서 100미터 달리기 다섯 시간 하고 사무실 부수고. 몸이 지치니까 감정에 집중을 할 수도 없고. 그런데 그 고생들이 마약 같다. 다시 못할 것 같다고, 안 하겠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니 몸이 근질거리더라.

-지금까지 출연작들은 대개 조폭 아니면 경찰이다.
=이수연 감독의 단편 <래빗>에선 펀드매니저이고, 개봉이 미뤄졌지만 <인류멸망보고서>에서는 류승범과 같이 고등학생으로 나온다. 좀비지만. <바람난 가족>에서 김병춘 형이 의사로 나왔는데 굉장히 좋게 봤다. 사실 일반적인 캐스팅이라면 건들거리는 깡패에 더 어울리지 않나. 직업이 캐릭터까지 결정하는 건 아니니까. 내 외모가 장애는 아니다. 물론 거식증에 걸린 사람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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