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이하 <포비든 킹덤>)에서 저에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마이클 안가라노의 가슴에 난 거무스름한 털이었습니다. 뭐야, 왜 저런 게 쟤 가슴에 난 거지? 하지만 검색해보니 얘도 벌써 스물을 넘겼어요. 어른이에요. 하긴 얼굴을 보니 <스카이 하이> 때보다 나이 들어 보이기도 하더군요. 제가 방심한 동안 세월이 또 그렇게 지난 겁니다. 마이클 안가라노의 커리어를 주목하기엔 할 일이 너무 많기는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이 이 친구에서 특별히 아쉬운 것도 아니겠죠. 아역배우 출신이지만 처음부터 어린아이다운 미모를 뽐내는 타입은 아니니까. 다 자란 지금도 대단한 미모나 카리스마의 소유자는 아니지만요.
마이클 안가라노에겐 잘하는 역할이 하나 있죠. 별것 아닌 남자애 역요. 그 별것 아닌 남자애가 특별한 상황에 걸려 넘어지면 이 친구의 고정된 이미지가 완성됩니다. 이런 이미지를 저에게 박아놓은 작품은 셋이죠. 우선 <윌 & 그레이스>. 여기서 안가라노는 어쩌다가 정자기증이 잘못되어 실수로 태어난 (동성애자 캐릭터) 잭의 아들 역으로 나왔죠. 그 다음은 <스카이 하이>. 여기서 안가라노는 스판덱스 유니폼을 입은 슈퍼 영웅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평범한 남자아이였어요. 마지막이 <포비든 킹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제가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외에도 자잘한 역들이 있어요. <올모스트 훼이모스>에서 그는 주인공 윌리엄의 아역으로 나왔는데, 그 역시 넓게 보면 여기에 포함되지요.
‘별것 아닌 남자애.’ 참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리죠? 하지만 이건 의외로 실속있고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비중도 큽니다. 이 동네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별것 아닌 남자애’로 출발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늘 자기 자신을 대입할 만한 평범한 외모의 남자배우들을 찾게 마련인데, 마이클 안가라노는 그런 역의 전문가입니다.
증명해볼까요? <포비든 킹덤>이 바로 좋은 예죠.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마이클 안가라노 짱이야! 라고 외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포비든 킹덤>에서 그가 연기한 제이슨은 누가 어떻게 연기해도 구박받을 역이에요. 그는 성룡과 이연결이 최초로 만나는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색목인 소년입니다. 시작부터 방해꾼이에요. 하는 짓도 그냥 그렇고. 특히 영화 막판엔 도대체 뭐하는 짓이랍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다보면 이 친구는 주변의 중국 배우들과 썩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동양인’처럼 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의 카리스마나 미모를 방해하지 않고 적당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그 기능성이 상당히 좋단 말이죠. 이건 할리우드 배우에게 좋은 칭찬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영화 중반 이후 마이클 안가라노의 존재를 무시하고 편하게 영화를 봤다면 그건 다 이 친구가 자기 역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기했다는 뜻입니다. 한번 제이슨 역에서 안가라노의 얼굴을 지우고 다른 배우를 넣어보시죠. 예상외로 어울리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건 <스카이 하이>나 <윌 & 그레이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괴상하거나 낯설거나 이국적으로 보일 만한 대상에 쉽게 마음을 열고 융화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빛나는 역할은 아니지만 중요한 역할이죠. 이런 캐릭터들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기 때문에 관객과 시청자는 고정관념을 풀고 좀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친구가 자신의 이런 이미지와 역할에 만족하고 있기는 할까요? 모를 일입니다. 사실 관심도 없고요. 그 기능성을 아무리 칭찬하고 싶어도 배우 자신에게 관심이 덜 가는 건 저도 어쩔 수 없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