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영화가 그리스 비극과 만난다면 어떤 모습을 할 수 있을까? 폭력이 찬양되는 액션물에 부모를 죽인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오레스테스나 오이디푸스를 섞을 수 있을까? 너무나 먼 것 같은 두 공간, 곧 신세계의 서부와 고대의 그리스를 연결하는 대담한 계획을 실천에 옮긴 감독이 바로 앤서니 만(1906~67)이다. 이른바 ‘심리 웨스턴’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배우가 수익분담금을 요구하는 계약 퍼뜨려
뺏고 싸우고 죽이고 하는 활극(Horse Opera)이 그나마 픽션의 얼개를 갖추는 데는 존 포드의 <역마차>(1939)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웨스턴도 격식을 갖춘 영화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존 웨인의 시대가 열렸다. 물러설 줄 모르는 강인한 남자 존 웨인이 웨스턴의 표상으로 각인돼 있을 때, 로맨틱코미디의 순진한 청년 제임스 스튜어트가 ‘뜻밖에도’ 웨스턴에 등장했다. 감독도 웨스턴과는 인연이 멀고, 주로 누아르 필름을 찍던 앤서니 만이다. 뭘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의혹의 눈길을 불식시키고 상업적 흥행은 물론이고 비평적 찬사까지 받은 작품이 바로 심리 웨스턴의 고전 <윈체스터 ’73>(1950)이다.
제임스 스튜어트(1908~97)는 당시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 <멋진 인생>(1946) 등으로 이미 스타였지만, 자신의 연약하고 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때 만난 프로젝트가 <윈체스터 ’73>이다. 유니버설은 스타급 개런티에 해당하는 20만달러를 약속했다. 그런데 스튜어트는 개런티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수익분담금, 일부 캐스팅 지명권, 그리고 감독 지명에 대한 동의권을 요구했다. 영화사의 원래 계획에는 프리츠 랑이 감독으로 유력했는데, 스튜어트가 캐스팅되면서 감독이 바뀌었다. 영화는 예상을 깨고 ‘대박’을 터뜨렸고, 스튜어트는 60만달러를 벌었다. 이 일을 계기로 스타들의 수익분담금을 요구하는 계약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스튜디오의 전속시스템은 물론이고, 일부는 스튜디오 자체의 붕괴까지 몰고 왔다.
스튜어트와 만은 모두 여덟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이중 다섯편이 웨스턴이다. <윈체스터 ’73>이 첫 작품이고, <분노의 강>(Bend of the River, 1952), <운명의 박차>(The Naked Spur 1953), <머나먼 땅>(The Far Country, 1954),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Laramie, 1955)가 연이어 발표됐다. 모두 웨스턴의 고전으로 상찬받는 걸작들이다.
밤의 웨스턴
웨스턴의 내용은 보통 문명과 야만, 정원과 황야, 법치와 불법 등의 대결로 압축된다. 이런 대결이 주인공과 무법자 사이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앤서니 만은 이를 그리스 비극처럼 가족 내부로 옮겨왔다. <윈체스터 ’73>이 그 시발점이다. 린(제임스 스튜어트)은 아버지를 죽인 남자를 잡아 복수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 무법자는 비겁하게도 아버지를 등 뒤에서 쏘고 도망갔던 것이다. 우연히 명품 장총인 윈체스터 ’73이 상품으로 걸린 사격대회에 나갔다가 바로 그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번에도 등 뒤에서 린을 폭행하고 총마저 훔쳐 달아난다. 린의 길고 긴 추적이 시작된다.
이런 이야기만 들으면 다른 웨스턴과의 차이점을 별로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직접 화면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윈체스터 ’73>은 ‘밤의 웨스턴’이다. 주요 장면이 주로 밤에 찍혔다. 인디언과의 긴장된 만남도, 무법자들과의 결투도 어두운 밤에 진행된다. 특히 린과 그를 돕는 친구, 이 두 남자가 쓸쓸한 달빛을 배경으로 어두운 황야를 터벅터벅 말 타고 가는 장면은 이 영화가 웨스턴인지 누아르인지 착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무법자를 쫓는 주인공은 존 웨인처럼 당당하지 못하고 왠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긴장된 눈빛, 불안한 태도 등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움직이는 시간대는 주로 밤이다. 밝은 낮에는 뭔가를 들켜버릴 것처럼 비밀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 결투장면에서 이들의 숨겨진 과거가 모두 드러난다. 알고 보니 무법자는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간 린의 형제였다. 그래서 린은 복수의 대상, 곧 그 무법자를 죽인다는 생각을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숨겼다. 어떻게 형제를 죽인다는 말을 남에게 할 수 있겠는가. 웨스턴에 부친살해와 형제살해의 죄의식이 불쑥 들어와 있는 것이다. 아마 스튜어트가 아니라면 이런 심리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이트적 갈등을 연기하는 심리의 캐릭터가 웨스턴의 중심에 서는 작품이 나온 것이다. 만이 연출한 밤의 풍경이 스튜어트의 존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물론이다. 바로 이 연기로 그는 히치콕과도 협업하며 <이창>(1954), <현기증>(1958) 등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이후 심리적 캐릭터는 웨스턴에 폭넓게 수용됐다. 존 포드의 걸작 <수색자>(1957)에도 <윈체스터 ’73>의 흔적이 강하게 묻어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장 마리아 볼론테는 심리적 캐릭터를 더욱 과장하여 노이로제 환자 같은 악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다음번에는 오토 프레민저가 감독한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Arm, 1955)를 통해 심리 연기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