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가 배우로도 성공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엘비스가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대부분이 그의 팬들을 위한 수준 낮은 ‘전략 상품들’(exploitation film)이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프랭크 시내트라(1915~98)도 배우 이전에 유명 가수였다. 그의 나이 30대인 1940년대에 그는 그야말로 스타였다. 영화에도 자주 출연했는데 아쉽게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드물다. 무엇보다 가수로서의 바쁜 일정 때문이었다. 나이도 들고, 가수의 생명에 위기가 왔을 때 시내트라는 배우로 거듭난다. 그 첫 신호탄이 조연으로 나온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이고, 주연으로 출연한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1955)로 그는 드디어 자신의 명성에 걸맞은 배우가 된다.
오토 프레밍거, 검열제도 헤이스 코드 폐지 이끌어
오토 프레밍거는 ‘검열의 역사’를 말할 때 제일 먼저 거론되는 감독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조건에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는 법률가다. 비엔나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부친처럼 검사나 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나치의 등장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버렸다. 그는 영화를 마치 검사처럼 만든다. 사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수사’ 형식이 그의 영화의 특징이다. 누아르영화들이 대체로 그렇다. 프리츠 랑, 빌리 와일더 등 독일,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들처럼 그도 표현주의영화의 영향을 받아 처음엔 필름누아르를 주로 만들었다. <로라>(1944)는 그의 첫 출세작이자 누아르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의 경력에 전환점을 맞이하는 게 폭스사와의 계약을 끝내고 독립적으로 제작회사를 운영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프레밍거는 본격적으로 검열에 맞서 싸운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도 검열문제로 자주 분쟁을 일으켰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돼 폭스와 헤어졌는데, 프레밍거는 나오자마자 검열제도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첫 독립제작물인 <달은 푸르다>(The Moon Is Blue, 1953)를 만들며 ‘당돌하게도’ 검열도장을 받지 않고 영화를 배급했다. 코미디물인 이 영화는 내용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배급 관습을 무시한 게 문제였다. 그런데 소송 끝에 예상과 달리 프레밍거가 승리했다. 이 일을 계기로 할리우드의 오래된 자체검열제도인 ‘헤이스 코드’(Hays Code)가 드디어 없어졌다.
그는 점점 내용에서도 ‘위반’을 일삼는다.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가 기폭제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는 처음으로 마약중독자를 다룰 뿐만 아니라 마약을 투약하는 장면까지 생생하게 재현한다. 프랭키(프랭크 시내트라)는 약물중독으로 형을 마치고 막 나왔다. 감옥에서 배운 드럼 연주로 밴드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는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불법 카지노판의 딜러였다. 도박판의 그들이 프랭키를 가만두지 않는다. 돈은 없고, 밴드 멤버 되기는 요원하고, 그는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달고 다시 도박판에 선다. 그 다음은 뻔하다. 다시 헤로인에 손대고, 돈도 벌지 못하고, 일상은 점점 검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문제는 이런 뻔한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이다.
약물중독자 습성 학습한 뒤 펼친 시내트라의 연기
프랭키가 약물 딜러의 방에 정신없이 뛰어들어, 숨을 몰아쉬고, 고무줄로 팔뚝을 칭칭 감은 뒤 핏줄을 찾아 주삿바늘을 꽂는 장면은 지금 봐도 아찔할 정도로 생생하다. 게다가 시내트라가 어찌나 중독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하는지 그가 진짜로 헤로인 중독자가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다. 시내트라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중독자 재활원에 찾아가 환자들의 습성을 학습했으며, 그들이 추위를 느끼며 몸을 벌벌 떠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충격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보면 부분적으로 어색한 면도 없진 않지만, 시내트라의 연기는 약물중독 연기의 한 전범으로 남아 있다. 아마 지금도 많은 배우들이 시내트라의 연기에서 중독자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힌트를 찾을 것이다. 검열을 넘어서는 도전적인 주제, 그 주제를 전달하는 충격적인 표현, 바로 이것으로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는 단박에 주목을 받았다. 이후 검열에 도전하는 프레밍거의 행보가 본격화된 것은 물론이다. <살인의 해부>(1959)로 강간문제를, <워싱턴 정가>(1962)로 동성애 문제를, 그리고 <허리, 선다운>(Hurry, Sundown, 1967)으로 인종차별을 다루는 등 프레밍거의 검열과의 싸움은 쉼없이 이어졌다. 영화 표현의 한계를 더욱 넓힌 감독으로 프레밍거는 영화사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약물중독 상태를 연기하는 시내트라의 심약한 캐릭터는 이후 빈센트 미넬리의 <누군가가 달려온다>(Some Came Running, 1958), 그리고 존 프랑켄하이머의 <맨츄리안 켄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 1962)에서 더욱 빛난다. 한편 그의 연인으로 나오는 킴 노박은 불과 22살의 신예였는데,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풍만한 가슴으로 역시 스크린을 ‘위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프닝 크레딧의 유명한 그래픽디자인은 솔 바스의 작품으로, 훗날 히치콕의 <현기증>(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에서도 그 솜씨를 발휘한다.
다음번엔 클로드 샤브롤의 <도살자>(Le Boucher, 1969)를 통해 ‘범죄의 풍경화’를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