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되리 감독의 <체리 블로섬: 하나미>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영화로 독일에서 개봉된 뒤 흥행에도 성공했다. 특히 두 주연배우의 호연으로 호평받았다. 지난 4월 말에는 루디 역할을 맡은 엘미 베퍼가 독일 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독일에서도 시골지역인 바이에른의 알고이 지방에 사는 노부부를 중심에 둔다. 정년이 가까워오는 공무원인 남편 루디(엘마 베퍼)가 암 말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트루디(하넬로레 엘스너)는 이 사실을 혼자만 알고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그리고 둘만의 마지막 여행을 계획하고 베를린에 사는 두 자녀를 방문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자기 일에만 바쁠 뿐이다. 노부부는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발트해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아내 트루디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며 이야기가 급선회한다.
아내의 죽음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진 루디는 원래 아내가 젊은 시절 일본의 부토춤 무용가가 되고 싶어했으나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꿈을 접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메마르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했던 루디는 급기야 아들이 살고 있는 도쿄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일본을 동경하면서도 생전에 가보지 못했던 아내 트루디 대신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벚꽃 잎이 휘날리는 어느 공원에서 루디는 부토춤을 추고 있는 집 없는 떠돌이 일본 여성 유(아야 이리즈키)를 알게 된다. 유에게서 부토춤을 배우며, 루디는 아내가 어떤 꿈과 소망을 갖고 있었는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보통 이렇게 감성을 주제로 한 영화는 금세 신파조로 흐를 수 있지만 도리스 되리는 반어적 화법으로 인물에 대한 몰입과 비판적 시각 사이의 균형을 유지한다. 동시에 사랑, 세월의 덧없음, 소시민의 삶과 예술가의 삶 사이의 긴장이란 주제가 녹아들어간다. 인물들은 모순적이지만 모두 인간적으로 정이 간다. 죽음과 그에 대한 슬픔을 승화시키는 개인의 제의 과정을 잘 나타낸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삶의 모든 순간이 사실 어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되리 감독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