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이란 두 글자가 그녀의 맨 얼굴에 쓰여 있었다. 드라마 촬영과 영화 홍보를 병행하는 탓일까 했더니, 전날 팬 카페에 글을 쓰느라 잠을 못 잤단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온갖 추측성 기사가 나오는데 화가 나더라. 그래서 적어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거였다.” 그럴 만도 하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지난 3년 동안 김선아에게는 많은 소문과 그로 인한 부침이 있었다. 다시 나타난 그녀에게 수많은 질문공세가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없는 걸 있다고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없다고 하지 못하는” 김선아는 그 모든 질문에 꼬박꼬박 답하고 있다. 문제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루머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터뷰에서 같은 걸 물어보는 데 정말 지겹다. 살 이야기, 루머 이야기, 소송 이야기…. 이제는 누가 물어보면 한대 때리고 싶다니까. (웃음)” 그 순간, 차라리 한대 맞고서 인터뷰를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긴장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웃으며 안심을 시킨다. “에이, 안 때려요. 걱정하지 마요. (웃음)”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냥 맞을 각오를 하고 물어봤다.
-지금은 드라마 촬영보다는 홍보가 주된 일과일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무가지에서 인터뷰를 봤다.
=별로 기분이 안 좋다. 나름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인터뷰를 한 건데, 내가 이야기한 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전에도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이번에는 특히 기분 좋은 인터뷰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제만 해도 다시는 인터뷰 안 한다고 그랬었다.
-어떤 경우에 화가 난 건가.
=나는 그냥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한 건데, 기사에는 루머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나오더라. 나 정말 그런 적 없었거든. 일단 나는 내가 이야기를 안 하면 그런 식으로 추측성 기사가 나올까봐 다 이야기를 했다. 물론 영화 홍보 때문에 하는 인터뷰라고 해서 영화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터뷰가 초점을 벗어난 것 같다.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했다던데, 녹록지 않은 분위기였겠다.
=사실은 안 나가려고 했다. 질문을 받는 게 싫다기보다 너무 파고드니까. 내가 답한 대로만 나오면 되는데,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기 때문에 한번은 분명히 짚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나갔다. 그런데 사전 인터뷰에서 없었던 말들이 질문으로 나오더라. 편집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기분 좋게 일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인터뷰를 하는 입장에서는 강호동이 가진 능력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런 프로그램 진행한다면 나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다르게 비출 때는 문제가 있다. 또 하나 화가 나는 건 내가 안 한 영화들이 대박난다는 기사다. 어제도 나왔더라. 난 생각도 안 한 징크스를 기자들이 만드는 거 아닌가. 내가 그 영화들을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 못한 것도 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다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다 한다면 실제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내가 안 해서 대박난 영화를 이야기한다면 왜 내가 안 해서 흥행하지 못한 영화들은 이야기 안 하는가. <걸스카우트>에도 영향을 끼칠까 걱정스럽다. 어제 스포츠00의 000 기자가 쓴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이제 <걸스카우트>는 어떻게 될지 보자는 거였다.
-어제 뜬 기사에는 “지금 최대 고민이 결혼”이라는 이야기도 있더라.
=그것도 이상하게 나온 거다. 원래 기사에는 마지막 질문에 “결혼은 생각 안 하냐”가 있어서 “이제는 고민이 된다. 뭐 백마 탄 왕자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온라인 뉴스에서 이상하게 인용을 해서 “지금 최대의 고민이 결혼”이라고 나온 거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쉬는 동안에는 어떻게 지냈나.
=사실 쉴 새가 없었다. 드라마가 끝난 뒤 6개월 빼고는 전부 영화에 빠져 있었다. <목요일의 아이>(<세븐데이즈>의 원래 제목)를 2006년 1월인가, 2월인가 합류해서 프리 단계에서부터 영화사만 줄곧 다녔다. 그런데 촬영감독님과 조명감독님이 그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하고 계셔서 크랭크인이 늦어졌다. 밖에서는 나 때문에 7월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알고 있는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크랭크업한 게 8월 중순이다. <목요일의 아이>는 9월 초에 촬영에 들어갔으니까, 거의 7개월을 그 영화에 매달려 있었던 거다. 솔직히 사무실에서는 그 시간에 다른 영화를 한편 더 하는 게 어떻냐고 했는데, 내가 워낙 산만해지는 게 싫어서 안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고, 처음 도전하는 역할이다 보니 나름대로는 꼼꼼히 준비를 하고 싶었다.
-<목요일의 아이>도 말이 많았던 영화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끝나고 나서 정말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그래서 내가 했다, 안 했다를 놓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너무 거절을 많이 해서 영화계 사람들이 화를 내는 건 아닌가 싶더라. (웃음)
-한다, 안 한다를 떠나서 감독 교체 문제까지 불거졌는데.
=10월 초인가, 원래 감독님이 포기하고 나갔다. 그 뒤에 제작사쪽에서 대안으로 제안한 분이 촬영감독님이었고. 나중에는 감독이 5명까지 바뀌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더라. 중간에 제작사의 실권을 투자사에서 뺏어가는 일도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빨리 놓지 못한 게 상처를 입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뒷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 입은 간지러워도 다 털어놓지는 못하겠다.
-그 일을 계기로 변한 게 있나.
=많이 민감하고 예민해졌다. 나는 스스로 영화가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깨지니까 다 깨지더라. 사람을 대하거나 만나는 일에도 나도 모르게 경계를 하는 게 있다. 지금은 <걸스카우트> 촬영을 하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조금은 남아 있다. 특히 목요일에 누구를 만나거나 그러지 않는다. 진짜 병이 생겼다니까…. (웃음)
-그런 상황에서 <걸스카우트>를 선택했다. 아마도 선택기준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더라고. (웃음) <걸스카우트>를 선택할 때는 무척 신중해지더라. 사실 예전에는 시나리오는 잘 보지 않고 내용만 파악한 뒤 결정하던 게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작사가 어디냐, 어떤 영화를 만든 곳이냐, 감독은 누구고 뭐했던 분인지 등등 예전에는 챙기지 않은 걸 다 물어보고 다녔다. 사실 원래 그러는 게 맞는 거지. 이전에는 내가 좀 쉽게쉽게 한 게 아닐까 싶더라.
-감독이 신인인데 불안하지는 않았나.
=솔직히 불안한 게 있었다. (웃음) 하지만 현장 경험이 많은 분이라 현장을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시더라. 심보경 대표님도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여러모로 믿음을 가지고 촬영할 수 있었다.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시나리오상으로 볼 때 <걸스카우트>는 코미디가 주가 되는 영화는 아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김선아란 배우에게 원하는 모습도 많지 않은 것 같더라.
=나 되게 진지했다. 지금은 코미디처럼 홍보가 되고 있지만, 사실 처음의 초점은 범죄드라마였다. 물론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첫 작품이라 나 역시 애드리브를 쳐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감독님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 이번 기회에 때로는 자제할 줄도 알고, 상대의 리액션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들을 배운 것 같다.
-예전에는 주로 남자를 때렸는데, 이번에는 남자한테 얻어맞더라.
=그 차이도 크지만, 가장 큰 차이는 키스신이 없다는 거다. (웃음) 지금까지 웬만한 작품에서 모두 키스신이 있었는데, 없으니까 허전하더라. (웃음)
-현장 스틸과 동영상에서 마스크에 여러 문구를 적어놓은 걸 봤다. ‘감기라서 오늘은 휴무입니다’, ‘촬영부 세컨드 하고 싶어요’ 등등 왠지 매일매일 적어놓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떤 게 또 있었나.
=음… ‘피곤하니까 안마요망’, ‘CEO’ 이런 걸 적어놨다. 마지막 일정에 가서는 ‘쫑 같지 않은 쫑’이라고 적어놓기도 했고.
-평소에도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 그랬었나.
=마스크에다 그림을 그린 건 <목요일의 아이>가 처음인 것 같기는 하다. 스탭들에게 파이팅하자는 의미였다. 스탭들의 기운이 빠지면 나도 기운을 낼 수 없으니까. 연기로 보답하는 게 더 좋은 건가? (웃음) 원래 영화 현장을 너무나 좋아한다. 데뷔작인 <예스터데이>도 비록 흥행은 안 됐지만, 현장이 너무 재밌었다. 첫 영화에서 그러다보니 계속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 것 같다.
-한대 때릴지 모르겠다. (웃음) 그렇게 즐겁게 촬영하는 동안 루머를 들었을 텐데, ‘글래머 K’로 거론 됐을 때는 어땠나.
=나는 누가 이야기해줘서 알았다.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게 나라는 거다. ‘나래? 글래머 K 중에 나도 들어간 거야?’ 그러면서 지나갔다. 김원희씨는 나한테 그러더라. “야, 나도 K인데 나는 왜 안 들어가니?” 그래서 나는 또 “그럼 넣어달라고 해요. 내가 나가서 언니라고 이야기할게” 이러고. (웃음) 그런 식으로 농담이나 치고 있었다. 솔직히 나훈아 선생님과 관련된 그 루머가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나. 어느 정도 진지해 보였다면 나도 고민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인터뷰하면서 보니까 그렇게 가볍게 볼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더라.
-나훈아가 직접 기자회견을 하면서 더 이슈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하셨겠나. 선생님이 그렇게 기자회견을 열어주시니까 감사하긴 한데, 그런 기자회견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가 난센스다. 그래도 그때 말씀하신 것처럼 “기자들이 펜대로 사람을 죽였다”고 하신 말씀은 정말 속시원한 이야기였다. 연예인 입장에서 하고는 싶지만 못하는 이야기도 많으니까.
-입장문제라는 게 있겠지만, 연예인들이 평소 화를 낼 만한 일이 많은 것 같다. 스포츠 신문에서 파파라치처럼 사진을 찍어서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도 그렇고. 화를 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일 아닌가.
=그렇다고 활동하고 있지 않는 시점에 인터뷰를 자청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 지금은 기회가 됐으니까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난 변명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해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내가 느낀 대로 이야기할 뿐이다. 제작보고회에서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더 많은 질문이 있었을 테고, 역시 추측성 기사도 더 많지 않았을까.
-여러 부침을 겪었는데, 배우 생활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됐을 것 같다.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심적으로는 가장 힘든 시기였던 건 맞다. 하지만 살다보면 더 큰 일을 겪을 수도 있지 않나.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고, 좀더 기민하게 대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가져온 열정이 식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미쳐 있는 모습을 걱정하시지만, 그래도 그런 열정은 죽는 날까지 가져갔으면 좋겠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게 오히려 다행일 것 같다. 지금 드라마 <밤이면 밤마다>를 촬영 중이다. 주인공 허초희는 문화재청 소속의 단속반원인데, <잠복근무>의 천재인과 비슷한 캐릭터인가.
=삼순이보다는 재인이랑 가까운 것 같다. 사실 대본보다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게 많다. 원래 작가선생님의 의도에 비쳐볼 때 허초희는 마징가Z 같은 여자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무뚝뚝한 여자지. 어떤 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마음을 많이 열지 않고,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했다는 거다.
-섹시한 문화재 단속반원이라는 설명이 많더라. 삼순이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섹시함이 중요한 포인트인가.
=섹시하지 않다. (웃음) 원래 시놉에는 섹시한 코드가 들어 있었는데, 대본에는 없더라. 기모노를 입거나, 드레스를 입는 장면이 있긴 한데, 그게 섹시하게 비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살짝 똥배가 나온 관계로 조금 걱정이…. (웃음)
-그러고보니 한동안 사람들이 김선아의 섹시함을 잊고 산 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이미지인 줄 몰랐다. 물론 나도 그런 부분이 있으니까 어필이 됐겠지. 그래도 쌓여온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큰 벽에 부딪히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름 도시적인 것도 했고, 청순한 것도 해봤다. 물론 이제는 다 잊혀졌겠지만. (웃음) 내가 까발려진 건 쇼프로에 나가서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다. 그때도 도대체 왜 나만 솔직하다고 그러는지 잘 모르겠더라.
-같은 이야기를 해도 분위기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가? 그래서 처음에 사람들이 말만 안 하면 된다고 그랬을까? (웃음) 특히 남자 선배님들이 괜찮은 애라며 사람들에게 소개해줄 때마다 그런 게 있었다. (장난기있는 톤으로) ‘안녕하세요?’ 이러면 다들 놀라고 그랬다. 분위기는 괜찮은데 말하면 완전히 저쪽으로 간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내 성격을 어떻게 바꾸겠나.
-한편으로는 계속 삼순이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나도 그런 걸 버리고 싶지는 않다. 물론 부담은 되지. 나를 판단하는 모든 기준이 삼순이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또 언제 삼순이라는 여자를 만나겠나. 앞으로 내가 어떤 연기를 하든 삼순이랑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다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 안에 내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