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섹스 앤 캐리 인 뉴욕
2008-06-04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인기 TV시리즈 <섹스 & 시티>를 영화화한 <섹스 앤 더 시티>

TV시리즈 <섹스 & 시티>는 도발이었다. 진원지는 뉴욕이었지만 진폭은 인종과 주머니 사정을 넘어섰다. 남녀관계에서 느꼈을 만한 고민을 콕 집어 담론화한 것 말고도 든든한 여자친구들의 존재가 더해져, 리얼리티는 판타지가 됐고 해방감은 대리만족으로 이어졌다. 캔디스 부시넬이 <뉴욕 옵서버>에 기고한 동명 칼럼에서 태어나 7년간 사랑받은 TV시리즈 <섹스 & 시티>가 <섹스 앤 더 시티>라는 타이틀로 영화화되기까지 지탱해온 크고 작은 기둥들, 뚜껑이 열리는 6월5일 전에 몇 가지는 알고 봅시다.

1. 섹스

TV시리즈 <섹스 & 시티>

넓고 좁은 의미를 모두 포함해서 섹스는 <섹스 & 시티>의 주재료이자,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가 쓰는 칼럼의 소재다. 칼럼니스트 캐리는 자신의 연애는 물론, 사만다(킴 캐트럴), 미란다(신시아 닉슨),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 등 친구들의 사생활에서 글감을 발굴한다. 시즌6까지 총 94편의 에피소드를 방영했으니 에피소드마다 4명이 한번씩만 섹스를 (언급)해도 최소한 376회는 등장하는 셈이다. 섹스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극명히 드러나지만 인물별 선호 체위는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보수적이고 결벽증인 샬롯이 정상위를 (가끔은 여성상위도) 고집하는 반면에 자아도취적이며 독립적인 사만다는 애크러배틱과 카마수트라의 결합을 선보인다. <섹스 & 시티> 속 성 관계는 과감하거나 노골적이지 않다. 오히려 적당히 가려지고 유머러스해서 거부감이 덜한데, 소재를 다루는 방법만큼은 파격적이다. 캐리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허전해서 만나는 “Fuck Buddy”(고백하건대 “Fuck Body”인 줄 알았다), 입고 계단만 올라도 몸이 달아오르는 “진주 끈팬티”, 사만다가 리처드의 생일선물로 준비한 “스리섬”, 정치계 거물의 성적 취향이 “워터스포츠”라는 등 모르기도 몰랐거니와 알면서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레시피로 조리했다. 그것이 오늘의 성 담론에 자유를 허했는지는 몰라도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2. 시티

할리우드, 애틀랜틱 시티, 파리까지 몇번인가 뉴욕을 배신하긴 했지만, <섹스 & 시티>는 뉴욕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괜찮은 싱글 여성은 널렸는데, 괜찮은 비혼 남성은 씨가 마른 곳. 금요일 밤이면 데이트를 찾아 부나비처럼 클럽으로 향하고, 옆구리가 허전해도 한쪽 손만 번쩍 들면 옐로캡 택시가 집까지 바래다준다. 브런치를 먹기 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질하고, 때로는 산책 나온 개가 주인보다 멀끔한 이상한 도시. 그러니까 이 도시는 둘이 함께 하루짜리 위안을 얻느니 혼자 고독을 씹는 편이 훨씬 어울리는 공간이다. 이도저도 귀찮은 싱글은 중국 음식을 전화로 주문하고, 70달러짜리 초콜릿케이크와 8달러짜리 케이크믹스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이 고독한 물욕의 전당을 로맨스가 싹틀 것 같은 희망의 도시로 만든 주역은 아이러니하게도 <섹스 & 시티>다. 뉴욕 프리미어에 맞춰 TV시리즈를 답습하는 2만4천달러짜리 초호화 여행상품도 이런 이미지 마케팅의 연장에서 등장했다.

3. 캐리의 남자들

미스터 빅

시즌6까지 캐리를 거쳐간 남자의 수는 샬롯과 미란다보다 많고, 사만다보다는 적다. 굵직한 관계들만 정리하면 “차세대 도널드 트럼프” 미스터 빅, 빅과 정반대인 에이든,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통보한 (망할) 잭 버거, 그리고 러시안 “Lover” 페트로프스키까지 4명이다. 하지만 사이사이 출몰했던 단발성 관계까지 세면 손가락 발가락이 부족할 정도니, 남성 편력이라는 말이 억지는 아니다. 여기에 스탠포드라는 훌륭한 게이 친구도 포함하면 5명이다. 그래도 한 사람 꼽자면 캐리를 들었다놨다하는 남자는 빅이다. 미남인데다가 싱글이고 능력까지 겸비해 “미스터 빅”이라고 불린 이 남자의 이름은 시즌6 파이널에서 캐리의 휴대폰에 뜬 수신자 정보로 밝혀졌는데, 영화 트레일러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된 그의 풀네임은 “존 제임스 프레스턴”이다. 영화는 아마도 팬서비스 차원인 듯 빅과 캐리의 결혼을 도마 위에 올렸다.

4.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섹스 앤 더 시티>

시작부터 잡음은 많았다. 조연급 출연료를 문제 삼은 킴 캐트럴은 “영화에 절대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고, 어렵게 크랭크인한 뒤에도 중요 캐릭터 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루머 때문에 “데스 앤 더 시티”라는 음산한 별명까지 얻었다. 게다가 월드 프리미어 개최지로 뉴욕이 아닌 런던을 선택해 “섹스 앤 어나더 시티”라는 이죽거림도 견뎌야 했다. 사실 ‘어떤 뉴욕’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주간지 <타임아웃 뉴욕>이 영화 개봉에 맞춰 준비한 특집기사는 “캐리 없이(Carrie-free) 뉴욕을 즐기는 1965가지 방법”. 포장 테이프로 입을 막은 캐리와 친구들을 표지에 세워 “그만하면 충분하다”(No Sex, Enough Already)고 대서특필했다. <섹스 & 시티>가 만든 뉴욕에 대한 오해가 불쾌하다는 내용으로, 마놀로 블라닉보다는 크리스찬 르부탱이 ‘핫’하다며 레스토랑, 클럽, 액세서리까지 시리즈에 등장했던 아이템별로 5년 동안 뉴욕이 얼마나 변했는지 비교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보겠다고 했으니 욕은 할지언정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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