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1억5천만달러 영화를 혼자 보다니…
2008-06-12
정윤철 감독이 <스피드 레이서>의 워쇼스키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

-Dear 래리 & 앤디

“사진은 사실에 가까운 매체이지 사실 자체는 아니다.
사실에 가깝다는 이유가 사실을 가장 완벽하게 왜곡할 수 있다.” -김아타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입니다. 아니 진짜보다 더 진짜 같죠. 각종 미디어와 영상매체, 인터넷의 사이버 세계는 이미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성형수술이 유행하고, 몸에 걸친 브랜드가 그 몸 자체보다 중요해지고, 광고를 보고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상품을 보고 광고를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세계의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진짜 돈을 쓰고, 심지어 살인까지 합니다. 하지만 진짜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일찍이 우리 한국의 선조들은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뱉어야 맛이라고 진짜 느낌의 중요성을 설파하셨습니다. 프랑스의 한 현대 철학자는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현상을 시뮬라시옹이라 이름지으며 경고했고, 우리나라의 한 가수는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고 노래하며 이에 화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당신들은 <매트릭스>라는 영화로 이를 멋지게 영상 언어로 표현해냈죠. 와우! 정말 대단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사실은 디지털 신호로 이루어진 가짜이며 우린 그것을 진짜처럼 믿고 잠들어 있는 동안 시스템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배터리에 불과하다라는 영화 내용은 장자의 <호접몽>의 비극적 버전을 연상시키며, 시뮬라시옹의 허깨비 세상에서 버둥대고 있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었습니다. 해체주의라는 어려운 철학을 몰라도 우리의 머릿속에 촘촘히 들어선 매트릭스는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물론 네오의 애크러배틱 총격 액션은 만화 같긴 했지만 어차피 매트릭스, 짝퉁 세계에선 뭘 뭣해하는 깨달음과 함께 오히려 통렬한 쾌감이 작렬하게 했죠.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음이 있다면 손가락 하나로 저 산을 옮길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 역설적으로 바로 접수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죠. 현실이 진짜 현실이 아니라는 믿음, 그것이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힘듭니다.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죠. 그래서 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 물 위를 걷다가 발을 쳐다보고 두려움을 느낀 순간 바다에 풍덩 빠져버립니다. 개인적으로 <매트릭스>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 그것은 360도 스틸컷을 이어붙인 네오의 멋진 총격신이 아니었습니다. 네오의 동료가 네오를 배신한 뒤, 다시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와 멋진 레스토랑에서 연어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입니다. 짝퉁 세상임을 알면서도 그는 그 한 조각의 분홍빛 연어 살코기 조각을 입에 넣으며 행복에 눈물겨워하죠. 비록 가짜이긴 해도 매트릭스 밖의 진짜 세상에서 먹던 꿀꿀이죽 같은 음식보단 100배 나았던 겁니다. 그만큼 매트릭스는 벗어나기 힘든 치명적 유혹입니다. 텔레비전, 인터넷을 끄고 살 수 없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평생 꿀꿀이죽을 먹을지언정 시스템의 배터리가 되어 노예처럼 사는 것을 과감히 거부하며 마침내 네오와 친구들이 멋지게 점프할 때 우리 심장은 터져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짝퉁의 매트릭스 세계를 과감히 거부하며 (해체하며) 진실을 세상에 알린 그들은 체 게바라였고, 데리다였고, 갈릴레오였고, 예수였습니다.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도요! 이렇게 심오한 얘기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당신들에게 어린아이들부터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엄지를 치켜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당신 나라의 쌍둥이빌딩이 무너졌습니다. 역시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더군요. 정말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이 혼미해졌습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서민적인 대통령을 뽑았더니 그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외치며 시스템을 강화하자고 부르짖더군요. 기타를 퉁기는 가짜 이미지를 진짜처럼 믿게 했던 매트릭스의 책략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죠.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보다 더 충격적인 대반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좌우간 당신들은 이제 모두가 기다리던 새로운 영화 <스피드 레이서>를 만들었고 드디어 난 어제 그것을 보았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할 수 있기에 마음의 평정심을 잡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놀라움이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컬러로 질주하는 그 엄청난 속도감은 제 눈을 압도해버렸습니다. ‘이것이 미래의 영화인가?’ 하는 경이로움과 형언할 수 없는 기술력에 모골이 다 송연해지더군요. 그러나 더 깜짝 놀랐던 것이 뭔 줄 아십니까? 극장에 관객이 저 혼자뿐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엔 사실 한쌍의 남녀가 제 뒤에 앉아 있었는데 보다가 중간에 나가버리더군요. 결국 그 이후 러닝타임 절반을 저 혼자서 극장을 독차지한 채 1억5천만달러짜리 영화를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가 떠오르더군요. 이게 꿈인가 생신가, 기뻐해야 할 일인지 황당해야 할 일인지 머릿속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전깃값도 안 나올 짓을 하고 있는 극장쪽에 민망하고 죄송했습니다. 늘 한국영화를 멋대로 교차 상영하고 조기 종영하는 극장들을 미워했는데 처음으로 동정심도 들더군요. 물론, 마지막 타임의 영화였지만 압구정동이라는,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거리에 있는 훌륭한 극장에서, 개봉 2주차밖에 안 된 당신들의 블록버스터영화를 왜 난 혼자서 봐야 했을까요?

듣자하니 미국에서도 흥행성적이 좋지 않더군요. 아니 1억달러 이상 쏟아부은 마케팅비와 당신들의 명성, 영화의 제작비에 비해 속된 말로 참패였습니다. 흥행이 안 되었을 때의 감독의 처참한 심정을 잘 알기에 어제 극장에서 팔자에 없는 단독 관람을 하면서 당신들 걱정에 영화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물론 <스피드 레이서>의 4분 분량에 해당되는 돈(1억5천만달러를 러닝타임 135분으로 나누니 1분당 11억원가량 되더군요.)을 평균제작비로 쓰는 나라의 영화감독으로서 주제 넘은 걱정인지도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블록버스터영화를 혼자 보는 평생에 몇번 없을 기회를 베풀어준 당신들의 호의에 이런 식으로나마 답을 하지 않으면 맘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이렇게 펜을 든 것입니다.

<스피드 레이서>는 알다시피 40년 전에 만들어진 재패니메이션을 토대로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적지 않은 영화들이 실패했고, 만화적 상상력을 현실적인 영화매체에 옮긴다는 것은 본전을 못 찾는 행위로 드러났습니다. 물론 <슈퍼맨>이나 <스파이더 맨> <배트맨> 같은 슈퍼히어로물들이 영화로 만들어져 성공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만화와는 다른 전략을 취했죠.

철저히 SF영화적인, 다시 말해 특수효과가 들어갔지만 매우 사실적인 리얼리티를 만드는 데 고심을 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이 부분에서 놀라운 배짱을 보여주더군요. 아예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 원작에 얼마나 철저히 충실했는지를 한번 보여주겠어라고 작심한 듯 화면들은 온통 물감을 발라놓은 듯한 총천연색의 컬러로 칠해졌고, 앞과 뒤에 있는 물체의 초점이 차이 나는 영화 렌즈의 특성(피사계 심도)을 무시하고 아예 평면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정말 캐릭터들을 2차원 세계 속 애니메이션 인물들처럼 만들려고 했더군요. 이 모든 게 컴퓨터그래픽으로 이루어졌을 텐데 남들은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기 위해 비싼 돈 들여 쓰는 컴퓨터그래픽을 당신들은 거꾸로 가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썼더군요. 심지어 차가 달릴 때의 배경화면과 도시의 모습은 아예 대놓고 만화영화의 화면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기술이 안 되어 그렇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분명 컨셉을 그렇게 가져간 결과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원작 애니메이션 <마하 GOGOGO>에 대한 최고의 오마주였고, 자신감이었으며,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통섭’을 시도한 혁신적 영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넘어 게임의 영역까지 들어가더군요. 레이싱 장면은 마치 카트라이더나 플레이스테이션의 카레이스 게임의 그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얼굴만이 오려붙여진 디지털 화면들이 만들어내는 무한 자유의 세계. 영화이자 애니메이션인 동시에 게임이기도 한 삼위일체의 통섭된 비주얼 스타일을 당신들이 구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자 그 천재성에 다시 한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를 했던 <씬 시티>나 <300> 같은 영화가 있었지만 당신들 영화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그 영화들은 스타일의 일관성을 지키느라 무진 애를 썼지만 당신들은 일찌감치 그딴 건 이제 중요치 않다고 집어던진 뒤 광란의 질주를 뻔뻔하게 벌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의 영화라고 주장하기도 하더군요. 이 말이 맞든 안 맞든 <스피드 레이서>가 제대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이것은 비주얼 콜라주임과 동시에 입체파 화가의 그림이며 오락실과 비디오 아트를 오가는 영상 혁명인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앞서간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었을까요? 왜 많은 관객은 당신들 영화의 멋진 그래픽과 찬란한 영상적 실험을 외면한 걸까요?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스토리가 너무 유치하다고, 아이들 영화 같다고. 하지만 이 영화가 만화영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우린 잘 알고 있으며, 또 비록 스토리가 유치하더라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 한국에서만 700만명을 동원한 <트랜스포머>야말로 그런 대표적인 예 아닐까요?

하지만 당신들의 영화 <스피드 레이서>와 <트랜스포머>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는 가짜를 진짜처럼 만드는 데 모든 총력을 기울여 정말 로봇이 진짜처럼 보였죠.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이 쇳덩이들은 진짜다’라고 최면을 걸고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들의 <스피드 레이서>는 영화가 지닌 숙명인 ‘환상성’을 깨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야말로 가짜를 진짜처럼 포장하는 대표적인 매체이자 그 자체가 시뮬라시옹이며 매트릭스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잠시나마 달콤한 꿈을 꾸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것이고, 많은 영화작가들은 그 기계장치가 만들어낸 환상을 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들 또한 이 영화를 통해 가짜 꿈을 꾸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고 주장한 것일까요? 매트릭스를 깨기 위해 떨쳐 일어섰던 원조답게 말입니까? 당신들은 나아가 새로운 개념을 보여주었습니다. 위에서도 말한 ‘실사+애니메이션+게임’이 짬뽕된 (고상한 말로 ‘통섭’된)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하며, 이제 더이상 진짜라고 뻥치는 가짜에 속지 말고 아예 오리지널 가짜를 즐기자, 그것이 더 솔직하고 순수한 영화 아닌가? 하고 놀라운 질문을 던지더군요. 그 철옹성 같은 시뮬라시옹을 타파하는 것은 아예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가짜를 만드는 것뿐!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이번에는 매트릭스를 깨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 만들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진짜 가짜들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에 우리를 과감히 초대했습니다. 빨간 약을 먹을래, 파란 약을 먹을래?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신흥 종교의 교주처럼, 당신들은 새로운 100% 짝퉁 월드를 만들어 우리를 불러모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용기와 선견지명은 정말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나를 비롯한 적지 않은 관객이 그 새로운 경험을 신나게 즐겼고,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보다 더 많은 관객이 당신들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가짜 이미지들 때문에 영화를 보며 하품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술영화나 실험영화라면 몰라도 1억5천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에선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죠. 왜 그들은 가짜를 가짜로 그냥 즐기지 못했을까요? 왜 그것을 감정의 낭비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메리카는 꿈도 아니고 실재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파생실재(hyper-real)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이미 성취된 것처럼 행세해온 유토피아이기 때문에 파생실재이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은 현실적이며 실용적이지만 그것은 모두 꿈의 재료이기도 하다.” -보드리야르

당신들은 가능한 꿈의 재료들을 총동원해 디즈니랜드를 만들듯 <스피드 레이서>의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아름답고, 컬러풀하고, 정의롭고, 스피디한 파생실재, 즉 존재하지 않는 실재이죠. 그러나 9·11 이후의 미국 사람들은 더이상 그들의 나라가 안전한 디즈니랜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서브프라임 사태로 무너지기 시작한 경제는 그 실재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도록 현실감있는 것인지 피부에 와닿게 해주었습니다. 아울러 지구 반대쪽의 한국은 인터넷의 힘으로 뽑은 대통령이 결국 미디어가 만들어낸 헛된 이미지에 불과했다는 진실을 깨닫고, 오로지 믿을 건 내 주머니의 돈뿐이라 여기는 씁쓸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10년 전 당신들의 영화가 예견했듯, 매트릭스의 실체를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죠. 사람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공간이 어딘지를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꿈이 깼고, 연어 스테이크 대신 눈앞에 꿀꿀이죽이 놓여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감이 들었고, 슬펐고,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매트릭스를 더 촘촘히 그리고 강력하게 짜나가고 있었고, 이제 그 누구도 그 안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집값이 폭락하면 한국의 주식이 떨어지고, 중국에 지진이 나면 전세계의 주식이 폭락하는 이 시스템은 모든 것이 연동되게 하였고, 더이상 꿈도 아니고 실재도 아닌 것은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타이밍에 나온 당신들의 역작 <스피드 레이서>는 갑자기 새로운 매트릭스의 환상 속으로 관객을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디서 날아온 외계인들이 만든 영화마냥, 오리지널 가짜들로 이루어진 인공 세계의 디즈니랜드로 초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꿀꿀이죽을 떠먹고 있던 사람들이 난감해한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군요. 스토리라는 ‘엔진’과 캐릭터라는 ‘연료’는 40년 전 만화와 똑같고, 겉모습은 이게 영화인지 게임인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최첨단 카본 차체로 무장한 레이싱카를 만든 겁니다. 내용은 20세기, 스타일은 21세기라는 속과 겉의 불일치는 마치 후진 기어를 넣으면서 자꾸 앞으로 나가려고 액셀을 밟아대는 듯한 혼란스러움을 일으켰죠. 결과적으로 두 시간이 넘는 레이싱쇼를 즐기려고 세월이 좋지 않아 가뜩이나 얄팍해진 지갑을 열 관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지 않으려 해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화를 둘러싼 주변의 정세가 그 영화의 존망을 좌우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고서야 재벌 2세도 아닌 내가 당신들의 영화를 극장에서 혼자 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어야 할 이 땅의 고등학생들이 엉뚱하게도 청계천 광장에 모여 당신들 나라의 소를 수입하지 말라고 함성을 지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새로움에 대한 시도, 미래의 영화에 대한 실험은 모든 감독들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스피드 레이서>처럼 배우는 스튜디오의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만 하고, 나머지 배경은 모두 컴퓨터가 합성해주는 영화가 미래의 영화가 될까요? 어쩜 앞으론 배우마저 필요없을 수도 있겠죠. <파이널 환타지> <폴라 익스프레스> <베오울프> 등은 그런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만달레이>, 피터 왓킨스의 <파리코뮌>처럼 배경을 무시하고 배우의 연기와 스토리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실험을 한 영화들도 있습니다. 똑같이 스튜디오 내에서 간단한 세트를 짓고 촬영하지만 컴퓨터로 배경을 합성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기 때문에 훨씬 적은 예산으로 완성되죠. 그러나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다보면 배경이 더이상 신경 쓰이지 않더군요. ‘스토리’와 ‘캐릭터’가 영화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환상이란 결국 머릿속에서 합성되는 것이지 결코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죠.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은 ‘보이지 않는 권력’이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를 관리하는 영역에서 주로 확대된다.” -노르베르트 보비오

10년 전, 당신들은 ‘해체’라는 포스트모던의 개념을 끌어와 <매트릭스>라는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가공할 실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스스로를 부정하듯이 <스피드 레이서>라는 가상현실을 만들어 그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현재의 화두가 무엇이든 불행히도 그것은 관객과 소통되지 못했습니다. 가짜임을 속이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내가 바로 진짜 짜가야! 라고 외친 그 용기는 대단하지만 왠지 속세를 떠나 은둔자의 길로 가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안 그런 척하는 짜가가 너무 많고 그 짜가는 스미스 요원들처럼 스스로를 복제하며 점점 교묘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실체를 철저히 숨기면서, 세계를 단일한 매트릭스로 묶기 위해 서로서로 뭉치고 있습니다. ‘통섭’ 이전에 ‘소통’이 먼저라고 누군가 말했다지요? 아무쪼록 당신들의 놀라운 능력으로 불가사리처럼 점점 커져만 가는 매트릭스와 시스템의 괴물들을 해체시키고, 그들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합쳐져 오히려 단절되어 있는 다른 문화와 다른 생각, 다른 진실, 다른 성이 서로 소통하는, 그래서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accept)하는 쾌감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의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 아닐까요? 지금까지의 레이스 결과는 모두 조작되었다! 라고 외치며 시스템에 저항하던 영화 속 주인공 스피드가 생각나는군요. 당신들이 조만간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귀환하길 진심으로 기다립니다.

그리고 흥행 실패는 넘 걱정 마세요. 투자한 스튜디오는 1억5천만달러를 날렸지만 그 결과 회사의 주식이 떨어져 싼값에 누군가가 주식을 왕창 살 것이고, 다음에 다른 영화가 대박을 내면서 그 주식이 올라 그 누군가는 떼돈을 벌 수도 있을 테니까요. 당신들이 만든 영화 속에서처럼 말입니다. 근데 그 누군가가 혹시 당신들 자신은 아니겠죠 래리 & 앤디?

with LOVE+HOPE

2007. 5. 20
서울에서, 번개호를 떠올리며, 정윤철

정윤철/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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