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몸져눕지 않았다면, 대학 입시 전날 맹장염으로 끙끙대지 않았다면, 미용실에서 여성감독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벼락치기로 이영일의 <영화개론>을 달달 욀 만한 머리를 갖지 못했다면, 어수룩한 아이디어 때문에 개그맨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금세 대중에게 잊혀졌다면, 우리가 이경실을 머리 풀어헤치고 곗돈 찾아 삼만리 대장정에 동참한 <걸스카우트>의 오봉순으로 만날 수 있었을까. 도루묵 여사와 ‘똑 사세요∼’의 슈퍼 개그맨 이경실, TV와 라디오를 넘나드는 팔방 MC 이경실, 시트콤을 시작으로 이제는 스크린 신고식까지 제대로 치른 연기자 이경실을 만났다. 참고로 연예계에 입문한 지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여걸과의 대면은 때론 좀 불편하기도 했는데, 조금이라도 버벅거리면 가차없이 질문 패스를 요구하는 바람에 인터뷰 내내 적잖이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기자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텐데.
=제작발표회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사회를 본) 서경석씨가 박수 좀 치라는데 아무도 안 치더라. 카메라 셔터는 그렇다치고. 워드는 왜 치는 거야. 박수 짝짝 두번 치고 나서 워드 쳐도 되잖아. 배우들이 지금 입장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게 쓸 것도 아니고. ‘야∼ 이런 쓸데없는 가오들이 있구나’ 그랬다. 제작발표회라는 게 취재기자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잖나.
-많이 서운했나보다.
=서운한 게 아니라 괘씸했다. 이제까지 배우들이 이처럼 쑥스럽게 입장을 했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경석이가 뻘쭘해할 것을 생각하니까 심사가 더 뒤틀렸다. 그래서 마이크 잡고 지금 취조하는 분위기냐고 했다. 제작자인 심보경 대표는 기자들한테 굳이 안 좋은 이미지로 각인될 필요가 있냐고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 영화 안 찍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웃음) 걱정됐는지 기자시사회 때도 심 대표가 원래 기자들은 반응이 없으니까 그러려니 하라고 하더라.
-첫 영화다. 본인이 나오는 장면에 신경 쓰느라 영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 것 같은데.
=아니. 전체적으로 봤다. 내 연기를 안 본 건 아니지만. 시나리오에서 걱정했던 부분이 있었다. 내가 빠지고 난 뒤에 아이가 납치되잖나. 그 뒤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인데, 그 뒷과정이 지루하냐 아니면 스피디하게 전개되느냐 그게 궁금했다. 촬영 전에도 감독님한테 나머지 3분의 1을 어떻게 끌고가느냐가 관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고. 다행히 만족스러웠다.
-현장에서 그런 말을 꺼냈을 때 감독 반응이 궁금하다.
=촬영 전에 말한 거다. 본인도 우려했던 부분이라고 했는데 분량 자체도 많이 줄었다.
-곗돈 떼인 봉순은 가장 큰 피해자다. 하지만 배신자로 낙인찍힌 뒤 중도에 빠진다. 계속 등장하면 어떻게 진행됐을까 궁금했다.
=배우로서 욕심은 났지만 내 영역이 아니지 않나. 침범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초짜이기도 하고. 나와 달리 감독은 부분에 치우치지 않고 통으로 보는 사람이고. 그런데 VIP 시사회 때 두 번째 보니까 다른 마음도 생기더라. 지인들이 물어보잖아. “찍었는데 편집이 된 거냐, 아니면 원래부터 내쳐진 거냐.” 좀더 봉순이를 이용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나문희 선생님이나 고준희가 도중에 SOS를 치면 되는데. (웃음)
-아쉬움을 감독이나 제작자한테 전했나.
=끝나고 말하면 뭐해. 게다가 촬영 때는 다른 배우들보다 10일 먼저 끝났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촬영하면서 아, 내가 정말 초짜구나 싶었던 적은 없었나.
=연기가 처음이니까 내 입장에선 하라는 대로 철저히 따랐다. 내가 정해둔 건 리얼하게 가자 정도? 다만 영화 정말 힘들게 찍는구나 싶었다. 왜 방송사에서 가끔 오래 뜸들이는 PD들한테 우스갯소리로 ‘영화 찍냐’고 놀리는데 진짜 그렇더라. 다르구나, 예술이구나, 영화는.
-나문희, 김선아 같은 배우들은 기다림이 익숙했을 텐데.
=나는 거기에 젖지를 못하는 거지. 기다리다가 지치고, 오뉴월 엿가락처럼 축 처지면 스파크를 팍 낼수도 없고. 카페 간이 의자 좀 붙여서 누워 있거나 차에서 죽치고 있고. 그러다 모기한테 실컷 뜯기고. 촬영을 여름에 시작했는데 물파스 ‘버물리’를 끼고 살았다. 그러다 찬바람 부니까 뜨듯한 아랫목에서 대자로 누워 푹 자고 싶고.
-첫 촬영 때 NG는 별로 안 냈나.
=거기가 어디지? 아, 시흥동 미용실. 길가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장면을 찍었지. 곗돈 타는 날. 나야 처음이니 NG를 많이 낸 건지는 잘 모르겠고. 다른 배우들하고 비교하면 많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다른 세 캐릭터는 기존에 세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적절하게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봉순은 억척스런 면을 너무 강조한 것 아닌가 싶다. 이경실에게서 더 큰 웃음을 기대하는 관객도 있을 텐데.
=감독님이나 제작자나 개그맨 이경실을 가져다 쓴 게 아니잖나.
-오봉순 역할은 어떻게 제안받았나.
=심보경 대표랑은 언니 동생 하는 사이다. 10년 이상 됐다. 아는 동생의 소개로 만나서 운동도 같이 다니고. 주로 목욕탕에서 만나서 친분을 쌓았지. 드라마하면서부터는 술자리에서 몇번 농담으로 떠봤다. “보경아, 나도 한번 써. 쌀 때 한번 써.” 그러다가 <구미호 가족> 하자고 했는데, 시간이 안 돼 못했다. <극락도 살인사건> 때도 해보겠냐고 했는데 <사랑과 야망>이랑 겹쳐서 안 했다. <극락도…>는 섬에서 찍는다는데 그때가 장마였다. 들어갔다가 못 나오면 어떻게 해. 김수현 선생님에게 혼날까봐 못 갔다. 봉순이는 “나한테 딱 맞는 역할”이라고 해서 “알았다” 했지.
-출연료는 만족스러웠나.
=주는 대로 했다. 이번 영화 말고 다음 영화로 돈 벌겠다고 했지. 영화는 꼭 한번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도 맘에 들었고. 심 대표도 따지고 보면 비즈니스하는 사람인데, 언니 동생 사이라고 출연 기회를 줬겠나. 나를 선택해준 친구한테 돈 이야기하는 것도 싫고.
-엄마 혹은 주부. 사실 그 자체로는 대단히 힘을 줄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왜? 오봉순은 굉장히 강한 캐릭터다. 남편하고 사별하고 아들 둘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까마득한 여자인가.
-남자여서 내가 잘 모르나보다.
=이보다 더 센 캐릭터가 없다. 그 여자가 얼마나 악바리로 살았겠나. 먹고살기 빠듯한데다가 아들 하나는 큰병에 걸려 큰 수술 앞두고 있고. 한달에 벌어봤자 몇 십만원일 텐데, 몇 백만원짜리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얼마나 악착같이 돈을 모았겠어. 그런데 그 돈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으니 복장이 뒤집어지지.
-과거에는 연예인들끼리도 계모임을 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사적으로 하면 모를까. 연예인들끼리는 안 한다. 곗돈 떼인 적은 없는데 사채 쓰지 말고(말라고?????) 내 돈 내줬다가 많이 떼였다. 2년 전에도 아주 큰돈을 잃은 적이 있는데,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더 큰돈을 빌려줬다가 낭패를 당했다. 그 돈 때문에 이자 붓고 있을 때면 속이 좀 쓰리긴 하다. 애당초 내 돈이 아니었구나 하면서도.
-전라북도 군산 출신이다. 사투리를 쓸 생각은 안 해봤나. 전라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몇 안되는 개그맨이라 좋아했다.
=전라북도는 원래 사투리 많이 안 쓴다. (웃음) 무심코 말하면 사투리가 나오긴 하지만. 사투리 쓰면 개그맨 이경실 냄새가 나니까 배제해야 한다고 봤다. 애드리브를 하더라도 미리 상의해서 했고. <걸스카우트>는 상황으로 웃기는 영화다. 말로 웃기는 게 아니라.
-수위 조절을 어떻게 했나. 세게 지른다고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건 아닌데.
=봉순이라고 잠도 안 자고 돈 벌었겠나. 적은 돈이라도 조금씩 모이면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된다. 지르는 것과 풀어져 보일 때를 감안해서 연기를 하긴 했는데.
-아들과 통화하는 장면에선 잘 드러난다. 빽빽 지르다가도 사랑해라고 말하는 장면.
=실컷 혼내고 나서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내 아이디어다. 그리고 또 한번 소리를 꽥 지르면서 전화를 끊는 거지. (웃음) 이런 게 엄마들의 일반적인 통화법이라고 감독님한테 아이디어를 냈는데 결국 그렇게 찍었다.
-거부당한 아이디어도 있나.
=아니. 사실 난 영역 침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요’는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합시다’는 정말 아니다. 내 의견을 고집해서 혼란이 발생하고 촬영이 지연되면 누가 책임지나.
-기가 세니까… 아무래도….
=기 안 세다. 고집 센 사람이 기가 센 거지. 난 빨리 타협한다. 화내고 오래 가는 거 싫다.
-여배우 넷과 함께 작업해야 하는 김상만 감독은 기를 못 폈을 것 같은데.
=고단수다. 성을 잘 안 낸다. 뭘 해도 웃는 얼굴이다. 한번 다시 가자고 하는데 웃는다. 안 할 수가 있나. 연구대상이야. 도인이지. 그런 사람 지금까지 한번도 못 봤다. 다들 한번씩은 소리 지르는데. 빨리빨리 준비 못하냐고.
-기가 안 세다고 하지만 못 참고 폭발할 때는 언제인가.
=일하면서 프로정신이 없는 거. 대충 일하려고 하는 거. 후배들도 그렇고 코디들도 그렇고 그런 거 보면 못 참는다. 사람이 서로 친해지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사적인 친밀함이 공적인 일에도 연장되고 그래서 피해가 된다면 화를 낼 수밖에 없다. 나도, 당신도, 부끄럽지 않게 돈을 벌자 뭐 이런 주의다. 이를테면 오늘 인터뷰가 두개 있는데 옷을 달랑 두벌 가져오면 나한테 선택권이 없잖아. 이럴 때는 화를 낼 수밖에 없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내가 까탈스런 사람이 되더라도 할 수 없다. 대신 사적인 자리에선 한없이 풀어준다.
-그 프로의식은 저절로 체득한 건가. 선배들을 보고 맘먹은 건가.
=선배들은 아니고. 1996년부터 방송사 분장실이 아닌 미용실을 이용했다. 개그맨 중엔 내가 원조다. 케이블까지 포함해서 13개 프로그램을 할 때였는데, 바쁘게 일하면서 탤런트들이 미용실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됐다. 방송사에서 분장사가 해주는 메이크업하곤 다르다는 게 눈에 보이더라. 월급받는 분장스탭에 비해 미용실 주인은 저 손님이 또 오게 만들어야 하니까 정성을 더 쏟을 것 아닌가. 그때부터 아는 연예인들 만나면 어느 미용실 다니냐고 물어봤다. 이성미씨나 후배들은 그 뒤에 내가 권유해서 미용실에 다니게 만들었다. 연기자들하고 개그맨하고는 외적 조건은 다르지만 대중 앞에 설 때 정성은 똑같이 들여야 한다. 동네 엄마들 중에 “우리 딸 결혼식 때도 집에서 드라이하고 갔다”는 분이 있는데 그때마다 그거 자랑 아니라고 말한다. 자식들 얼굴 세워주는 날인데 최대한 멋있는 엄마가 돼야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84학번이다.
=개인사가 복잡하다. 말해줘도 안 쓰던데. 다른 이야기 하자.
-쓰겠다.
=(웃음) 고등학생 때 아버지 똥오줌 받으면서 학교 다녔다. 고혈압에 중풍으로 쓰러지신 아버지 곁에서 오랫동안 수발들다 보니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로 대학 가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원래는 신문방송학과가 목표였다. 그런데 하필 시험 전날 맹장에 염증이 생겼다. 배를 움켜쥐고 시험을 봤는데 제 정신이 아닌 거지. 점수가 거지같이 나오니 갈 데가 없더라. 그러다 하루는 미용실에 갔는데 <레이디 경향>에서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의 이미례 감독 기사가 나왔더라. 어, 여자가 영화감독을 하네. 근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나왔더라. 여기구나 했다. 근데 담임이 안 써주지. 이전까지 그 과에 원서 쓴 사람도 없었고. 선생은 반대하는데 “떨어져도 내가 떨어진다”며 써달라고 했다.
-집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다 콧방귀지. 엄마하고는 약속했다. 떨어지면 집에서 운영하던 학교 매점 일을 돕기로. 연기를 안 해 봤으니 연출쪽을 지원해야겠다 싶어 무작정 학과에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하느냐. 그랬더니 종로서적에 가면 이영일 선생의 <영화개론>이 있다더라. 사서 3박4일 동안 독파했다. 선생님들은 내가 아마 영화 미치광이인 줄 알았을 거다. 유현목 교수님이 거의 독대로 면접을 봤는데, 난 그때 전위영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멋있게 느껴졌다. 왜 영화를 하고 싶냐고 해서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예술정신 운운하면서 전위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세계적인 영화를 다섯편만 대보라고 해서 그것도 막 읊었다.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 본 적도 없어. 히치콕의 <새>. 본 적도 없어. 내가 여자니까 아무래도 여성감독들에 대해서 물어볼 것 같았는데 역시나. 아까 <레이디 경향>의 이미례 감독 인터뷰를 미용실에서 쫙 찢어갖고 왔는데 거기에 그 내용이 있었거든. 최은희 감독을 시작으로 이미례씨가 네 번째다 뭐 이렇게 마무리. 교수님 눈에는 한국영화를 일으킬 재목이 하나 나타난 거지. 마지막으로 <오발탄> 이야기도 해드렸다. 어디서 영화를 봤느냐고 해서 영화진흥공사에 가서 보여달라고 해서 봤다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영진공에서 내는 <영화>라는 잡지도 탐독했다고 구라치고. 그렇게 16.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는데, 어찌나 예쁘고 잘난 애들이 수두룩하던지. 나야 군산 촌년인데.
-입학 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다 놀랐겠다.
=집에 들어갈 때 연기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들 떨어진 줄 알더라. 그래서 한참 있다가 그랬다. “등록금이 걱정이네. (웃음)” 유현목 교수님은 들어가자마자 속았다는 사실을 아셨다. 내가 곧바로 연기에 빠져들었으니까.
-연기에 빠지게 된 계기가 뭔가.
=연출에 관심이 없었다니까. 서울 와서 최종원 선생의 <리어왕>도 봤는데 충격이었다. 그때 내 옆의 옆자리에 나문희 선생님도 계셨다. 탤런트도 가까이서 볼 수 있구나. 좋았지, 뭐. 연극에 빠져들면서 4년 내내 학교 생활 정말 열심히 했다. 안민수 교수님도 연기에 감이 있다면서 예뻐하셨고. 나중에 개그맨이 돼서 마음 상하셨겠지만.
-입학은 영화연출, 대학생활은 연극연기, 정작 졸업반 때는 MBC 개그맨 공채 1기 시험을 봤는데.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자.’ 개그맨을 아주 우습게 본 거다. 시험 때도 아무 준비 안 하고 갔다. 다들 너무 열심히 준비해왔는데 나는 맨손으로 들어가 눈꼬리 올리면서 “엄마 오줌 마려워” 눈꼬리 내리면서 “가서 싸!” 그랬다. 심사위원들의 비웃음을 엄청 샀다. 연극영화과 학생이 지원했다는 게 특이해 보였는지 1차는 통과시켜주더라. 그 일 때문에 2차 때는 열심히 준비해 갔다.
-처음 맡았던 역할이 뭐였나.
=최병서의 <잡학사전>이라고. 봤나?
-봤을 텐데 기억이 안 난다.
=세대 차이 나네. 아줌마 부대로 나와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웃고 박수치고 뭐 그런 역할이었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무명 시절은 짧았던 것 아닌가.
=아니다. 4년 만에 신인상을 받았으니까. 괜찮은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가을 개편이 되면 만날 잘렸다. PD들한테 연기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다들 신인 맛이 안 난다고 하더라. 어설픈 모습이 있어야 먹히는데 나는 연기를 많이 해본 애 같다나. 그 옛날 (박)미선이 같은 풋풋함이 없었던 거지.
-특별히 선망했던 마음속 라이벌이 있었나.
=부러워하고 그런 거 전혀 없었다. 지금도 나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다. 주목받지 못했을 때도 난 내 잠재력을 믿었다. 몇 개월짜리 개그맨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길게 보자는 생각도 했고.
-개그맨들이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기 시작한 건 콩트가 많이 사라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동시에 콩트 경험이 많은 개그맨들은 드라마, 영화쪽에서도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어떤 역할을 줄 때 단지 개그맨적인 순발력만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뿌리는 개그맨이다. 드라마에 나오고, 영화에 출연하고, MC를 맡는다고 해도 난 내가 개그맨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개그 프로그램 중에 가장 애착이 남는 작품은 역시 <도루묵 여사>인가.
=<도루묵 여사>는 봤나?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초대하는 코너였는데, 이경실이라는 개그맨을 확실히 대중에게 각인시킨 프로그램이다.
-가장 잘 맞는 파트너를 꼽는다면.
=이성미 언니와 이홍렬 오빠. 같이 있으면 일단 편하다. 내가 어떻게 뭘 하려는지 미리 잘 알았으니까. 개그는 주고받는 게 중요하다.
-(마침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개인적으로 힘든(이혼 등) 시기도 있었다. 아이들이 힘이 됐나.
=아이들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중 하나지만, 그전에 여기서 포기한다는 게 용납할 수가 없었다. 더 열심히 살아서 뒤집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고. 자주 하는 말 중에 ‘그러나’ 정신이 있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러나’! 오기를 좀 발휘해보자는 거지. 요즘 인터뷰를 하면서 오랫동안 하고 싶은 게 뭔가 따져보게 되는데 연기더라. 아직 사람들은 연기자 이경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가 있다. 아직 도전할 게 남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