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수학천재여, 카지노를 공략하라
2008-06-19
글 : 문석
MIT 학생들의 라스베이거스 정복담을 그린 <21>과 그 모델이 된 실존인물

명문인 MIT 대학생들이 카드게임 블랙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고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21>은 실제 사건에 기반한 영화다. 물론 이 영화는 실화를 취재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한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를 또다시 가공한 것이니 실제 일어난 일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듯, 영화보다 소설이, 소설보다는 실화가 더 흥미롭다. 대체 이 천재들은 왜 카지노를 습격했을까.

1. 블랙잭

<21>

블랙잭은 쉬운 원리 덕분에 카지노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블랙잭’이라는 이름은 이 게임이 처음 미국에 소개됐을 당시, 도박장에서 스페이드 에이스와 검은색 카드인 스페이드 J(잭) 또는 클로버 J가 동시에 나왔을 경우 10배의 배당을 주면서 붙여졌지만 현재는 그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잭의 게임 룰은 단순하다. 게임의 목표는 자신의 카드에 매겨진 숫자를 더해 21을 만드는 것.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딜러로부터 2장의 카드를 받는데, 1~9가 매겨진 카드는 그 숫자대로, K, Q, J 10은 10점, A는 1점 또는 11점으로 매겨 합산했을 때 21을 만들면 ‘블랙잭’이라 부르며 무조건 승리하게 된다. 만약 21을 만들지 못했다면 플레이어와 딜러 중 숫자가 높은 쪽이 승자가 된다. 플레이어는 2장을 받은 뒤 추가로 카드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2장의 합이 15일 때 한장을 더 받아 6이 나오면 블랙잭이 되는 것이다. 추가 카드는 몇장이고 받을 수 있지만 만약 카드 숫자의 합이 21이 넘으면 자동적으로 패하게 되며 이를 ‘버스트’(bust)라 부른다. 결국 갖고 있는 카드 숫자의 합이 17~20 정도일 경우에는 버스트당할 확률이 높아 더이상 카드를 받지 않고 딜러의 카드 숫자와 비교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 딜러는 일반적인 룰에 따르면 2장의 합산이 16 이하면 한장을 추가해야 하고 17을 넘어서면 카드를 추가할 수 없다. 블랙잭은 다른 게임과 달리 플레이어가 승리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 탓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지만, 생각해보라. 만약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만큼 승률이 높다면 카지노가 이 게임을 운영하겠냔 말이다.

2. MIT 블랙잭팀의 역사

대부분의 카지노에서 블랙잭 딜러는 6벌의 카드를 섞은 뒤 테이블에 앉은 플레이어들에게 2장씩 나눠주고 자신은 두장을 챙긴다. 만약 그동안 나온 카드의 내용을 다 기억한다면 카드가 소진될수록 앞으로 나올 카드가 무엇일지에 관해 예측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지는 것이다. ‘카드 카운팅’ 기법은 이러한 원리에서 고안된 것이다. 1962년 에드워드 소프라는 수학자에 의해 <딜러를 이겨라>(Beat the Dealer)라는 책이 나온 이래 수많은 블랙잭 전략서가 출간돼 있고 수많은 개인과 팀이 다양한 전략으로 카드 카운팅을 실행에 옮겼다.

수재들의 집단 MIT에서 블랙잭팀이 생긴 것은 1970년대 말이다. 이전에도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이 카지노에 도전했겠지만, 조직적으로 블랙잭을 연구하고 역할 분담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은 J. P. 마사라는 학생이었다. 그는 1979년 블랙잭에 관한 미니 강좌를 함께 들었던 동료들과 함께 나름의 계획을 짜 뉴저지주의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로 향해 대박을 노렸지만, 대실패를 하고 만다. 이후 몇 차례의 시도에서도 패배를 맛본 마사는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대학원생 빌 캐플란을 우연히 알게 된다. 캐플란은 하버드 대학생들과 함께 블랙잭팀을 만들어 77년부터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성공적으로 공략해왔던 인물이었다. 당시 기존 팀과 헤어졌던 캐플란은 마사와 함께 새로운 팀을 구성하기로 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80년 8월 좀더 전문화된 MIT 블랙잭팀이 꾸려졌고, 이들은 투자금 8만9천달러를 바탕으로 10주 만에 2배의 수익을 올렸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판돈은 갈수록 커져갔고,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수백만달러의 자본을 바탕으로 80여명의 플레이어가 라스베이거스뿐 아니라 애틀랜틱시티, 인디언 보호구역의 카지노 등지에서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카드 카운팅에 대한 카지노의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능숙한 플레이어들은 속속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카드 카운팅은 불법행위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카지노는 인정하지 않고 있어 적발했을 경우 ‘카드 카운터’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출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 수익률이 급속하게 떨어지면서 MIT팀은 93년 해산한다.

3. 소설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와 영화 <21>

이후 MIT팀은 두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메미언 듀카치와 앤디 블로흐가 이끌었던 ‘양서류’와 마이크 어폰티, 맨리오 로페즈, 웨스 아타미안이 이끌었던 ‘파충류’가 그들이다. 이들 그룹은 그동안 벌어들인 수백만달러를 바탕으로 카지노를 누비며 경쟁을 펼쳤다. 하버드대학 출신 벤 메즈리치가 2002년 출간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린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Brining Down the House)는 파충류팀의 이야기에 근거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케빈 루이스는 파충류팀의 일원이었던 MIT 기계공학 전공자 제프 마라는 중국계 미국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나머지 인물들은 빌 캐플란, J. P. 마사, 마이크 어폰티 등 MIT팀의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뒤섞어 창조됐다. 이 소설은 실화라는 사실을 강조했지만, 실제 인물들에 의해 사실이 왜곡됐다는 항의를 계속 받아야 했다. 하지만 메즈리치는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양서류팀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인 <MIT 수학천재들의 라스베이거스 무너뜨리기>를 출간해 또다시 성공을 거둔다.

MIT 블랙잭팀에 관한 이야기는 TV다큐멘터리로 많이 다뤄졌고 2004년 캐나다의 TV영화 <라스트 카지노>로 각색되기도 했다.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를 원작으로 삼은 <21> 또한 사실 왜곡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1>에 관한 또 다른 비판은 소설 속 주인공인 케빈 루이스나 실제 인물인 제프 마가 중국계 미국인인데 영화 속 주인공인 벤 캠벨은 백인인 짐 스터지스가 맡아 인종주의적이라는 것이다. <21>의 캐스팅이 백인 위주로 된 것은 흥행을 고려한 영화사의 “대다수의 영화배우는 백인이어야 하고 아시아계 여배우는 가능하다”라는 입장 때문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민족의 배신자’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던 제프 마는 <21>에서 카지노 딜러 역할을 맡아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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