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닥쳐라.” “성난 늙은이 같으니.” 길거리 취객들의 말다툼이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스파이크 리가 원색적인 설전을 주고받으면서 연일 미디어를 뜨겁게 장식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스파이크 리였다. 그는 최근 신작 <세인트 안나의 기적> 기자회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오지마에 대한 4시간짜리 분량의 영화 두편을 만들었지만, 그 안에는 단 한명의 흑인 배우도 보이지 않는다”며 “만약 당신 기자들이 용기가 있다면 그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리의 발언이 대대적으로 언론을 타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즉각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맹반격에 나섰다. 이스트우드는 “내 영화(<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당시 깃발을 꽂는 모습을 담은 유명한 사진에 관한 것이다. 흑인 군인들은 그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흑인을 등장시켰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저 사람이 정신 나갔나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를 평등주의자들을 위한 광고처럼 만들란 말인가? 나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90%가 흑인인 영화를 한다면 90%의 흑인을 집어넣는다. <버드>에서 그랬듯이 말이다”며 “그(스파이크 리) 같은 인간은 입 닥쳐야 한다”고 매섭게 덧붙였다.
언론은 즉각 이스트우드의 발언을 앞다투어 타전했고 이번에는 리가 반격에 나섰다. 리는 “이 남자는 내 아버지도 아니고, 우리는 지금 플랜테이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입 닥치라고 하다니 그는 성난 늙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퍼부었다. 리는 또 “깃발을 꽂은 사람 중에 흑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 없다. 두 영화를 통틀어 단 한명의 흑인도 등장하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이라며 “이스트우드가 원한다면 이오지마 전투에 참전했던 흑인들을 모아오겠다. 그들 앞에서 ‘당신들이 참전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비꼬았다. 두 감독은 각자의 차기작을 놓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당분간 이들의 설전이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을 태세다. 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흑인 부대의 이야기를 담는 <세인트 안나의 기적>이 “할리우드가 왜곡한 역사를 제대로 그리기 위한 것”이라고 꼿꼿하게 선언했고, 넬슨 만델라에 대한 영화 <휴먼팩터>를 찍는 이스트우드는 “만델라를 백인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며 의도적인 비아냥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