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신명철] 탈북소년이 됐던 아이
2008-06-26
글 : 박혜명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크로싱>의 신명철

“진짜 죽은 담에 아부지랑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니?” “응. 거긴 배도 아이 고프구 아픈 데도 없는 그런 데란다.” “그래두 비는 왔음 좋겠다.” 소년은 나지막이 읊조린다. 빗속에서 아빠와 축구했던 기억과 엄마의 결혼반지를 손 안에 품고, 사막을 가로지른다. 아빠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 마른 지평선을 말없이 응시하는 준이는 탈북자 가족을 다룬 영화 <크로싱>의 응어리진 슬픔이다. “네”, “아니요” 또는 숙고의 시간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충북 영동 출신의 열세살 소년 신명철은 스스로 선택한 극한 다이어트와 함께 몽골 사막에서의 촬영기간을 보냈다. “얼굴이 너무 뚱뚱하게 나와서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이미 소설책 크기의 반밖에 되지 않는데도, 더 곤하고 마르지 않은 제 얼굴에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울었다고, 그의 모친이 옆에서 전한다. 아들은 고프다 못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사막을 걸었고, 어머니는 밤마다 아들과 함께 울었다.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먹기를 거부해서” 어머니는 촬영 뒤 귀국하면 아들에게 정신감정을 받게 할 생각까지 갖고 있었다. 돌아와서 멀쩡해진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제가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명철군은 요즘 곤충이 좋다. 집 근처 소똥이나 썩은 나무 밑에서 찾아낸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을 집에 가져와 기른 게 수십 마리다. 이날도, 오랜만에 만나는 영화사 직원 누나에게 선물 줄 요량으로 풍뎅이를 한 마리 챙겨오려 했다. 엄마와 형과 읍내 시장을 다녀오던 길, 문화원에 사람들이 몰려든 걸 보고 “함 구경가자”고 엄마 손을 이끌었던 명철군은 그곳에서 영화 오디션을 보았고, 조연 역으로 캐스팅되었다가 이내 주연으로 옮겨갔다. 노근리 사건을 영화화한 연극연출가 이상우의 감독작 <작은 연못>의 주인공이 그다. “친구들과 많이 놀았던” 그때 기억이 선하다. “초등학교 때 말실수를 하고 후회한 일이 많아서” 중학생이 되면서는 말하기에 앞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는 명철군은, 아주 무뚝뚝한 표정으로 “(저는 평소에) 잘 웃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절제된 대화 속에서 인터뷰가 끝났다. 속을 잴 수 없는 눈빛을 한 채 명철군은 양손을 배꼽에 얹어 공손히 인사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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