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탐미적 동성애 영화의 중심, 데릭 저먼 특별전
2008-06-25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6월27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데릭 저먼 특별전 열려

데릭 저먼의 영화를 보면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겹쳐 떠오른다. 저먼의 장편 데뷔작 <세바스찬>(1976)과 만테냐의 초상화 <성인 세바스찬>(1459)의 친밀성 때문만은 아니다. 두 작가 모두 남성 육체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미술사에 따르면 만테냐가 동성애자였다는 믿을 만한 사료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남성의 몸을 탐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만테냐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은밀하게 드러냈다면 저먼은 전면적으로 표현했다.

데릭 저먼은 평생 동성애자의 조건을 영화의 전면에 내세웠다. 비스콘티, 파스빈더, 파졸리니 등 대표적인 동성애 감독들이 있었지만, 저먼처럼 극단적이고 일방적이지는 않았다. 저먼은 데뷔작 <세바스찬>을 발표하며 한순간에 동성애 영화의 중심에 섰다. 그는 동성애를 아름답게 혹은 동정심이 일어나게 그리지 않았다. 철저하게 소통이 안 되는 외로운 고립자로서의 동성애자들이 저먼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세바스찬>

데뷔작 <세바스찬>으로 저먼은 자신의 색깔을 단박에 드러낸다. 영화는 성인이 어떤 이유로 순교했는지 보다는 그의 아름다운 육체를 재현하는 데 더욱 집중돼 있다. 동료 군인들로부터 채찍을 맞는 순간조차 오로지 그의 아름다운 육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용됐다. 특히 온몸에 화살을 맞는 성인의 모습은 마조히스트의 쾌락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수십발의 화살이, 다시 말해 남근의 상징이 성인의 몸에 꽂히고, 그는 몸을 비틀고 서 있다. 성인이 동성애자였는지 알 수 없지만, 만테냐처럼 저먼도 세바스찬을 에로스의 지고의 대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성인에게 화살을 쏘는 추방지의 로마의 병사들은 모두 동성애자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소통하기 어려운 라틴어로 말한다. 동성애자들이 소통에서 격리돼 있듯 말이다. 영화의 대사는 전부 라틴어다.

특별한 섹슈얼리티와 내러티브 관습을 깨는 형식적 전복은 저먼에게 더 높은 악명을 가져왔다. 그나마 좀 관습적인 형식을 빌려 만든 <카라바조>(1986)로 그는 일반 대중과도 만나게 된다. 저먼은 원래 미술학교를 나온 화가이고,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발레, 오페라의 무대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카라바조>는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안 바로 그해에 발표됐는데, 그래서 그런지 화가 카라바조는 저먼의 강렬한 동일시의 대상으로 보인다. 예술가로서의 투지, 사회의 관습에 분노하는 반항의식, 동성애, 질병, 육체의 부패, 그리고 죽음까지 감독 자신의 삶을 투사할 수 있는 인물에 대한 연민으로 읽히는 것이다.

저먼의 유언처럼 보이는 작품이 죽기 3년 전에 만든 <에드워드 2세>(1991)다. 많은 영화인들이 저먼의 최고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왕은 감독처럼 동성애자로 묘사되고, 개인의 삶과 국가의 이성이 충돌할 때, 개인은 어떻게 고통받는지를 혹은 국가의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외압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동성애자들과 경찰들이 광장에서 충돌하는 현재의 런던의 모습을 삽입하는 등 수백년이 지났지만 전혀 변하지 않은 소수자의 삶의 조건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콜 포터가 작곡한 재즈 스탠더드 <Every Time We Say Goodbye>를 애니 레녹스가 부르는 부분은 저먼의 자기 연민이 강렬하게 표현된 것이다. 레녹스는 노래한다. “우리가 안녕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요.”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인 테리 이글턴이 공동으로 각본을 쓴 사실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1992)은 비엔나 출신의 철학자의 고립된 삶을 다룬 전기영화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 케임브리지에서의 수학 시절, 그리고 철학적 활동을 다루는데, 영화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강의가 아니라,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된 채 살 수밖에 없는 한 외로운 남자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듯 저먼의 작품은 늘 소수자의 고통을 주목한다. 그 소수자의 상징은 남성동성애자인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6월27일부터 7월10일까지 데릭 저먼 특별전이 열린다. <세바스찬>부터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의 <블루 모노크롬>(1961)에서 영감을 얻은 유작 <블루>(1993)까지 장편 11편이 상영된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