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의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이전에도 시대극을 연출한 적 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알다시피 그는 서극, 정소동의 도움으로 무협영화의 검을 누아르 장르의 ‘건’으로 바꿔놓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영웅본색>(1986) 이전 그는 몇편의 무협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전작괴>(1977), <발전한>(1977) 등 코미디에 더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그의 무협영화는 쌍거풀 수술을 감행하기 전 담백한 마스크의 성룡이 출연한(조연) <소림문>(1976)과 그 스스로 ‘<영웅본색>의 전편’이라 불렀던 우정의 드라마 <호협>(1979)이다. <호협>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남의 나라 문화재 덕수궁에서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고문하는 장면까지 있었던 <소림문>을 먼저 살펴보자. ‘아마존’이나 홍콩DVD 구매 사이트에서 <The Hand of Death>라는 제목으로 구입 가능하다.
과거 <용호문>이란 이름으로 국내 개봉했던 <소림문>은 소림사 출신으로 청나라에 투신해 관직을 얻은 변절자 석소봉(전준)을 제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시 현란한 발차기로 이름이 높았던 담도량이 주인공이고, 성룡은 소봉에게 형을 잃고 복수를 꿈꿔온 동생으로 출연했다. 당시 황정리, 류충량, 왕호 등과 더불어 ‘발차기 4대천왕’쯤 되는 담도량은 부산에서 태어난 화교로 이미 10대 때 부산경찰청 태권도 사범이 됐고, 대통령배 태권도대회에서 우승한 뒤 대만으로 건너가 배우 활동을 시작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종종 영화 속에서 발등에 술잔을 올려 옆차기로 상대에게 건네거나, 떨어지는 새집을 역시 발차기를 해서 발등으로 받아 안전하게 내려놓는 등 우아한 발차기의 달인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은퇴했지만 최근 자신이 출연한 다른 DVD를 보면 자신이 현재 운영하는 도장에서 서플먼트를 촬영하기도 했다.
<소림문>은 그외 다른 인물들까지 겹쳐져 서로 다른 이유로 소봉에게 복수하려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시 성룡이 가장 비중있게 출연한 작품인 <소림문>에서 홍금보는 소봉의 졸개로 등장하고, 원표는 화살에 맞아죽는 단역으로 출연해 그들의 초창기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쌍라이트’ 조춘 아저씨도 악당의 호위무사로 등장해 영화를 빛내주신다. 여기서 오우삼 감독(사진)도 소봉이 노리는 비밀 군사지도를 지닌 인물로 우정 출연해, 아니나 다를까 유려하게 시 한수 읊어주고 들어가신다.
자, 그럼 여기서 <적벽대전>에도 흰 비둘기를 등장시킨 오우삼 대형의 호쾌함을 떠올려보며 억지로 <소림문>과 <적벽대전>과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먼저 소봉을 조조로 놓고 본다면, 소봉에 대항하려는 같은 목적을 지녔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힘을 합친 사람들의 우정의 드라마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역시 악기다. 오우삼 영화에서는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라도 주인공들이 악기 하나쯤은 다뤄줘야 내러티브가 막힘없이 진행된다. <적벽대전>에서 양조위와 금성무가 악기로 대화를 나누듯 <소림문>에서도 복수를 위해 힘을 합친 또 다른 검객 강남낭자가 음악 담당이다. 영화의 정서가 메말라갈 때쯤이면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도 없어 뵈는 옷자락을 뒤져서는 피리를 꺼내 문다. 물론 음악은 더빙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