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 채리스의 부고를 막 읽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끌어갈지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제 영화 경험에 큰 즐거움을 주었던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를 예찬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시드 채리스에 대해 깊고 복잡한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할리우드 스타 시드 채리스의 역할은 단 하나였어요. 댄서요. 그건 MGM 뮤지컬 배우로 봐도 제한된 기술이죠. 진 켈리나 프레드 아스테어는 자기네들이 송앤댄스맨이라고 겸손해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보기보다는 다채로웠습니다. 그들은 연출과 안무를 책임졌고, 춤을 추는 동안 직접 노래도 불렀으며, 뮤지컬 전성기가 끝난 뒤엔 정극 배우로도 어느 정도 좋은 작품들을 남겼지요.
하지만 시드 채리스의 경우는 춤밖엔 생각이 나지 않아요. 노래 부르는 장면이 좀 있긴 했지만 다 다른 가수들의 더빙이었죠. 심지어 대표작 중 하나인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는 대사도 캐릭터 이름도 없습니다. 그냥 춤만 추고 지나가지요. <밴드 웨건>에서 시드 채리스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채리스가 <Dancing in the Dark>하고 <The Girl Hunt> 사이에 무얼 했지?”라고 묻는다면 아주 열렬한 팬들이 아니라면 당황할 겁니다. 이 두 넘버에서 채리스는 완벽했지만 정작 배우로서 무엇을 했는지는 영 기억이 안 난단 말이에요. 채리스는 뮤지컬 시대 이후에도 정극 연기를 꽤 오랫동안 했고 그중 <파티 걸> 같은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심지어 그 영화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건 가볍게 살짝 지나가는 채리스의 댄스장면입니다. 순전히 댄서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삽입된 장면이었는데 말이죠. 심지어 브로드웨이극으로 개작된 <그랜드 호텔>에 출연했을 때에도 역할은 발레리나였죠.
그러나 채리스가 보여준 건 얼마나 멋진 춤이었나요? 시드 채리스는 대사없는 춤만으로도 충분히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채리스의 대표작은 <사랑은 비를 타고>나 <밴드 웨건> <브리가둔>이 아니에요. 그 안에 삽입된 <Broadway Melody>나 <Dancing in the Dark> <The Girl Hunt>지요. 그 섹션 안에서 채리스는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이국적인 섹스어필이 넘쳐흐르는 관능적이고 유려한 어떤 존재로요. 보고 있으면 시드 채리스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 존재가 본명이 툴라 핑클리인 텍사스 아가씨라는 건 상상하기가 힘들죠. 그만큼이나 채리스는 춤추는 동안 평범한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채리스의 스타로서의 수명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뮤지컬영화 주연배우로서 경력은 한 5년 끌었죠. 뮤지컬 전성기가 끝난 50년대 이후의 채리스를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연기가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타성은 오로지 춤추는 동안에만 빛을 발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낯선 곳에서의 두주> 같은 정극영화에서 보여준 채리스의 연기보다는 몇초 깜짝 출연했던 재닛 잭슨의 <Alright> 뮤직비디오를 더 잘 기억할걸요. 하긴 기억할 만해요. 곧 70살이 될 할머니가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각선미를 가지고 있단 말입니까? 놀라워요. 하긴 90년에는 운동 비디오까지 냈던 할머니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채리스를 보았을 때, 그 사람은 케이블에서 방영된 모 볼륨댄스 프로그램의 고정 게스트였습니다. 여전히 몸매는 꼿꼿했지만 프롬프터에 적힌 대사를 읽는 얼굴은 생기가 없었고 기계적이었지요. 보면서 우울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수명과 전성기가 일치하지 않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죠. 그 불일치가 능력이나 체력의 쇠퇴가 아닌 순전한 유행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