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뉴욕] 무려 4년간 28개국에서 촬영한 영화
2008-07-09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CG 없이 탄생한 화려한 판타지, 타셈 감독의 <더 폴>

인기 광고 연출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단다. “광고로 모은 돈, 꼭 내 장편영화 만드는 데 쓴다”고. 근데 진짜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단다. 편안한 삶에 빠진 그들은 결국 계속 광고를 찍거나, 뮤직비디오, 혹은 얼토당토않은 액션영화나 찍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타셈 싱은 특이한 케이스다. 근 20년 동안 광고와 뮤직비디오 연출가로 모은 전 재산을 털어 4년간 28국에서 촬영한 영화 <더 폴>(The Fall)을 내놨으니 말이다.

<더 폴>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의 초반기인 1915년 로스엔젤레스의 한 병원이다. 하반신이 마비된 무성영화 스턴트맨 로이는 영어가 서툰 외국인 소녀 알렉산드리아와 우연히 친해진다. 로이는 소녀에게 동화를 이야기해주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더 폴>은 전쟁 부상자들을 기다리는 듯한 텅 비고 나른해 보이던 병동에서 화려한 동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야기는 로이가 들려주지만 관객이 지켜보는 영상은 4살짜리 소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소녀는 로이가 사용한 단어의 뜻을 몰라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동화 속 캐릭터들이 소녀가 아는 사람들의 얼굴로 도중에 바뀌기도 한다. 바다를 헤엄치는 코끼리에서 집들을 온통 파란색으로 칠한 마을, 끝없이 지그재그로 펼쳐진 계단, 불타던 나무 안에서 초연히 걸어나오는 사나이까지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영상으로 가득하다.

로저 에버트가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지지하고 나섰지만 <더 폴>은 다른 평론가들까지는 사로잡지 못했다.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53%밖에 얻지 못한 이 작품은 동화 같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R등급을 받았고, 5월9일 개봉 뒤 지금까지 총수입이 176만여달러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판타지 장면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CG로 만든 영상이 하나도 없는 <더 폴>은 반드시 한번은 관람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실존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장소들을 찾아 4년간이나 한 작품에 매달려온 타셈 감독의 미친 열정은 지금까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새로운 영상을 창조해냈다. 첫 관람에서 영상에 압도당해 작품을 완전히 소화하기조차 힘들었을 정도다. 옛날 시장에서 큰 소리로 떠들던 약장사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꼭 말하고 싶다.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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