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잉글리쉬>는 성공한 뉴욕의 여자가 프랑스 남자를 만나 사랑을 고민하는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였던 여자는 실연 앞에 눈물 흘리고 새로 만난 남자 앞에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힘들어한다. 존 카사베츠 감독과 배우 지나 롤랜즈의 딸이자 닉 카사베츠 감독의 여동생 조 카사베츠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로 생애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불안에 사로잡힌 여성의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낸 <브로큰 잉글리쉬>. 인상적인 장편 데뷔작을 마치고 차기작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간 조 카사베츠 감독에게 메일로 질문지를 보냈고, 그녀는 충실한 답변을 적어 보내주었다.
-<브로큰 잉글리쉬>는 당신이 처음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다. 이야기를 떠올린 특별한 경험이나 이유가 있나.
=노라는 어느 날 문득 30대 중반인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는 곧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리게 된다. 만약 당신이 싱글이고 앞서 말한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보여주고 싶었다.
-뉴욕의 여자가 프랑스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 때문에 이 영화가 당신의 실제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약혼자인 세바스찬 체넛도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다. 사실 참 재미있는 상황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그를 만나기 전에 썼다. 현실이 영화로 되었다기보다 오히려 영화가 현실에 영향을 끼친 셈이라고 할까. 모두가 이건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물론 삽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작가의 입장에서 꾸며낸 것이다.
-어머니인 지나 롤랜즈가 주인공 노라의 어머니로 나온다. 캐스팅한 이유는 뭔가, 그녀와 함께 작업하는 건 어땠나.
=왜 어머니를 출연시키게 되었을까. (웃음) 어머니는 너무나 뛰어나고 재능있는 배우이기에 내 영화에 출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운이라 여겼다. 매우 훌륭하신 분이고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날 감독으로 존중해주셨고 물론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연기를 보여주셨다. 감독의 입장에서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좋았을 뿐만 아니라 딸로서 어머니와 함께했던 경험들이 무척 좋았다.
-당신은 배우로 영화를 먼저 시작했다. 감독이 되니 어떤가.
=나는 엉망인 배우다(I’m a terrible actress!). 연기를 너무나 못하기 때문에 그만둔 거다. 잘할 수 있었다면 여배우를 계속했을 거다. 카메라 뒤에 처음 선 순간에 여기야말로 내가 편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은 항상 에릭 로메르와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그 둘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화장면이 <브로큰 잉글리쉬>에도 많다. 두 감독의 영화가 당신의 이번 영화에 영향을 끼쳤나.
=내 영화가 로메르나 앨런의 영화들과 공통점이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있다고 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내 영화가 다루는 문제들을 그들의 영화도 말한다는 점에서 서로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다른 영화들을 모방하기보다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대사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다면 무조건 바꾼다.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진실되게 들려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촬영을 단 20일 만에 끝냈다고 들었다. 첫 연출이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물론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이다. 날씨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저예산영화를 만들다 보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다.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20일 만에 영화를 찍어내는 건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2000년에 만든 단편 <Men Make Women Crazy Theory>도 <브로큰 잉글리쉬>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의 관계, 자아를 찾는 여자의 이야기다. 이러한 것들이 당신의 주요 관심사인가.
=그렇다. 난 항상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에 흥미가 있다. 사랑이란 소재도 그중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한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아버지가 존 카사베츠고 오빠는 닉 카사베츠다. 가족이 영화인이라는 사실이 당신이 영화계에 입문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가족이 감독이라 내가 감독이 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사실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만 했다. 영화판은 참 냉혹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배경을 가질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나의 꿈을 그려가는 데 많은 도움을 얻기도 했지만 내가 영화를 만들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부담을 느낀 적은 없나.
=예술을 사랑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두분을 부모님으로 둘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 날 보고 아버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이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얼마나 쉽게 얻는지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만큼 재능이 뛰어나야 한다거나 내가 좋은 감독이 아니라고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의 첫 작품이다. 앞으로 많은 영화를 만들고 한편씩 계속 만들어가면서 새롭게 배워나갈 거다. 아버지도 이런 날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다.
-현재 파리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지금은 파리에서 살고 있으니까 시나리오도 여기에서 쓰게 되었다. 파리가 배경은 아니지만 이곳은 시나리오를 쓰기에 참 근사한 장소다. 글이란 술술 써질 때도 있고 꽉 막힐 때도 있다. 게다가 글만 쓰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시나리오는 금방 끝내려 하지만 탈고 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나리오를 쓸 때에는 뭘 쓰는지 어떤지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다. 불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