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장소연] 옌볜으로 간 그녀
2008-07-17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궤도>의 배우 장소연

장소연은 <망종> 시사회 뒤풀이 자리에서 ‘솜씨 좋은’ 한국 배우를 찾기 위해 옌볜에서 날아온 김광호 감독을 처음 만났다. “청각장애인을 언제 한번 연기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죠. 그런데 감독님이 아무 말도 안 거시는 거예요. 오죽 뻘쭘했으면 묻지도 않았는데 ‘저 중국어 할 줄 알아요’라고 했겠어요.” <궤도>의 향숙은 그러나 애초에 장소연의 몫이었다. “안질(눈동자)이 맘에 들었다”는 김광호 감독의 말처럼, 얼마 뒤 장소연은 옌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남자주인공 최금호씨의 집을 본떠 만든 세트에 도착한 뒤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청소. “의상 스탭이랑 둘이서 세트를 치웠어요. 배우고 스탭이고 따로 없어요. 촬영할 때도 미술하시던 분이 붐도 들고 그랬는걸요, 뭘.” 각오하고 덤볐다지만, 예상치 못한 난적도 많았다. “산파리가 장난 아니에요. 게다가 어에라고 부르는 독벌레가 있었거든요. 피부에 파고들면 전신이 마비된다는데, 숲속에 쓰러져 있는 장면 찍을 때 제 몸에 들러붙는 바람에 혼쭐났죠.” 그림책에 가까운 시나리오도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문에는 ‘향숙이 황황하게 걸어간다’고 되어 있어서 당황했죠.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익숙지 않은 한달간의 오지 촬영 동안 웃음을 잃지 않았던 건 파트너인 최금호씨 덕분이다. “두팔이 없지만, 실제로 굉장히 밝아요. 촬영 때 술을 안 드리면 좀 침울해지시긴 해도. 발로 장작 패는 자신보다 못한다면서 많이 구박하셨죠. (웃음)” 고3 때 우연히 노종림 감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눈물웅덩이>에 출연한 뒤 <욕망>(2004)의 관음증 소녀 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한때 연기를 그만두려 했다. “현실하고 연기를 잘 구별 못했어요. 그래서 곱절로 힘들었고.” 캐나다에서 1년 넘게 방송 리포터 일을 하며 지냈던 장소연은 문득 거리를 두고서야 연기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국에 돌아와 연우무대에서 기본을 다진 그는 이후 <슈퍼스타 감사용> <크로싱> 등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와 재회했다. “<하얀거탑>에서 간호사로 출연하기 전에는 부모님도 제가 연기하는 줄 몰랐어요. 아버지는 <욕망>을 보시다가 ‘우리 딸이랑 되게 닮았네’ 한마디 하신 게 다니까.” 안슬기 감독의 <지구에서 사는 법>에서 불륜에 빠진 외계녀로 나온다는 장소연. 이룬 것은 많지 않지만 그래서 “쟁취할 것이 더 많다”고 하니 조금 더 느긋하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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