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쿠퍼(1901~61)의 최고작은 무엇일까? 그는 폰 슈테른버그의 <모로코>(1930)부터만 따져도 무려 30여년간 최고의 스타에 머물렀다. <존 도를 만나요>(프랭크 카프라, 194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샘 우드, 1943) 같은 작품들이 발표될 때, 그는 클라크 게이블과 더불어 누가 봐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위기는 1950년대 초에 찾아왔다. 나이도 들고, 인기도 시들해졌다. 게다가 아내와의 별거와 다른 여성들과의 숱한 염문은 그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특히 10대 소녀와의 스캔들은 치명적이었다. 점점 캐스팅에서 밀리고, 자칫 하다간 그렇게 은막에서 물러날 수도 있었다. 이때 찾아온 행운이 바로 <하이 눈>(1952)이다. 보안관 배지를 땅에 던지는 그 한 장면으로 그는 영원히 영화사에 남게 된다.
애초에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말론 브랜도가 꼽혔다. 유명 제작자였던 스탠리 크래머는 만약 브랜도가 불가능하다면, 몽고메리 클리프트,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찰턴 헤스턴을 염두에 뒀다. 게리 쿠퍼는 후보 명단에도 없었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작가는 칼 포먼으로, 매카시즘의 피해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반면, 게리 쿠퍼는 1947년 미하원에 출석하여 구체적으로 누구의 이름을 대지는 않았지만, 할리우드 안에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증언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증언을 한 몇달 뒤 ‘블랙리스트’라는 게 작성됐는데, 당연히(?) 칼 포먼은 이름을 올렸다. 스탠리 크래머도 사회 정의를 다루는 영화들을 많이 제작했고, 작가도 결국에는 영국으로 도피하게 되는 이념적인 인물인데, 게리 쿠퍼와의 조합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최고 투자자가 게리 쿠퍼를 고집했다. 상치(???) 재벌로 알려진 그는 쿠퍼의 팬으로, 캐스팅이 안 되면 돈을 빼겠다고 제작자를 위협했다.
매카시즘에 대한 알레고리 웨스턴
영화는 칼 포먼의 의도대로 매카시즘의 미국사회를 우회적으로 그리는 알레고리극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 미국에선 ‘마녀 사냥’ 같은 비이성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이에 대항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 마녀에 대항하는 ‘고독한 영웅’이 바로 윌 케인(게리 쿠퍼)이다.
보안관 케인은 일요일 오전 10시30분에 퀘이크교도 여성(그레이스 켈리)과 결혼식을 올린다. 오늘은 휴무일이고, 내일이면 새로운 보안관이 올 것이다.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지역판사와 유지들은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신혼여행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때 갑자기 전보가 도착한다. 5년 전 체포됐던 사형수가 석방되어, 12시 정각, 곧 ‘하이 눈’에 이곳에 도착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사형수의 목표가 보안관 케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영화는 10시30분의 결혼식에서 시작하여, 12시쯤의 결투로 끝날 것이다. 상영시간도 실제시간과 거의 같은 85분이다.
사형수의 부하들은 이미 역에서 두목을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 태양은 높이 떠 있고, 텅 빈 역사에서 햇볕을 받으며 부하들이 지루하게 기다리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곧 닥쳐올 잔인한 폭력을 암시하고 있다. 무료함과 폭력의 대조로 빛나는 도입부의 이 기차역 장면은 훗날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1968)에 다시 인용되기도 한다.
5년 전 케인을 도왔던 주민들은 이제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케인이 이곳을 떠나면 좋겠다고 말한다. 믿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배신하기 시작하고, 케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진다. 게리 쿠퍼가 보여준 불안과 죽음의 공포에 대한 얼굴 연기는 압도적이었다(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 ‘심리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시작됐고, 그 출발을 알리는 데 <하이 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게리 쿠퍼의 연기가 전범으로 남았다.
게리 쿠퍼의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쿠퍼는 당시 케인과 심리적으로 매우 흡사한 상태에 있었다. 흥행 실패에 따른 스타로서의 불안, 아내와의 별거, 10대 소녀와의 염문에 따른 가족관계의 긴장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병을 앓고 있었다. 위궤양 때문에 촬영 내내 쿠퍼는 고통받았고,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다. 결국 이 병이 원인이 되어 그는 60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는다. 영화 속 케인의 불안한 표정은 실제로 쿠퍼가 느끼고 있던 심리적, 육체적 고통에서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겪은 뒤, 과거의 마초 같은 사나이는 더이상 웨스턴 관객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세상이 복잡해진 탓이다. <하이 눈>에서도 주민들은 이제 겨우 이곳도 투자를 받는 지역이 됐는데, 또다시 길거리에서 총싸움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케인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철저히 고립된 케인은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기로 한다. 그는 악당을 처치한 뒤에도 결코 주민들의 환대를 받지 못한다. 인심이 바뀐 세상에 대한 경멸의 표시로 그는 보안관 배지를, 다시 말해 미국의 권위를 땅바닥에 던지는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해 이 장면은 <더티 하리>(1971)에서 다시 반복된다.
케인은 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려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데, 그런 일에 뭐하러 아마추어들을 끌어들이냐며 케인의 감상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 발표된다.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Rio Bravo, 1958)가 그것이다. 다음엔 <리오 브라보>를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