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이스라엘의 상황을 바꾸려면 리더를 갈아치워야 한다”
2008-07-18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바시르와 왈츠를>의 아리 폴만 감독

1982년 레바논 내전에 참가했던 아리 폴만은 모슬렘 학살의 원죄가 악몽으로 급습함에도 당시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폴만은 악몽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었으나 인터뷰이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바시르와 왈츠를>(Waltz with Bashir)은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이라는 기이한 장르로 만들어졌다(애니메이션화한 캐릭터들이 의자에 앉아 인터뷰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그러나 <바시르와 왈츠를>은 마지막 장면에서 딱 한번 아이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레바논 모슬렘 어머니들의 모습을 실제 자료화면을 빌려 관객에게 보여주며 끝난다. 이 마지막 이미지는 보는 이의 심장을 으스러뜨리고 만다. 아쉽게도 아리 폴만 감독은 부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올해 칸영화제에서 한 아리 폴만 단독 인터뷰를 싣는다.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는 인터뷰이들(대부분이 아리 폴만 감독의 친구들)이 직접 화면에 나오는 걸 꺼렸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나.
=물론 인터뷰이들이 카메라 앞에 서기를 거부한 것은 내게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내가 받은 선물은 완벽한 영화적 자유다. 악몽, 대마초, 전쟁, 죽음, 죽음에 대한 공포들을 실사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고 말한 탓에 자본을 끌어오기가 몹시 힘들었다. 픽션이라고 했다면 바로 자본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스라엘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정치적으로 큰 뉴스가 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당신들 생각과 달리 극도로 개방된 나라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인터넷 댓글들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멍청하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영화 뉴스란에 들어가서 댓글들을 봤더니 ‘아리 폴만이 이스라엘에 오지 못하도록 칸에서 목을 매달아라’라는 등 바보 같은 댓글들이 잔뜩 있더라. 그런 코멘트들은 사실 우리 스탭들이 술에 절어서 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웃음)

-레바논전쟁에 대한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견해는 뭔가.
=나는 리버럴한 좌파다. 영화감독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우리 같은 사람은 극단적인 마이너리티다. 일반적인 견해를 대변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상황을 바꾸려면 리더를 갈아치워야만 한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리더들은 모두 정신나간 놈들이고 결정이라는 것을 내릴 줄 모른다. 불행한 것은 팔레스타인 리더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거다. 양쪽 리더들 모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통제 아래있다. 어떤 종류의 근본주의자건 간에 근본주의자와 문제를 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1982년에 이스라엘을 레바논 내전에 개입시켰던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이 끝난 뒤 우울증에 걸려 이후 단 한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 인간도 인간이라는 거다. 그들도 상처를 받는다는 게 희망일지도 모르지.

-당신 영화가 지금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뭐 아주 아주 극소수의 아이들이 아주 조금 머리를 열 수도 있을 거다. 나이 든 사람들은… 불행히도 많이 늦었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예술적인 교배란 정말 독특한 영화적 방법이다. 다큐멘터리 윤리적인 면에서 앞으로 이런 방식의 영화를 계속해나갈 생각이 있는가.
=그래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나의 다음 프로젝트는 스타니슬라프 렘의 원작 소설 <미래학적 사회>(The Futurological Congress)를 영화로 만드는 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소설이다. 사실은 스티븐 소더버그가 이걸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는 몇년 전에 스타니슬라프 렘의 <솔라리스>를 영화화하면서 스타니슬라프 렘의 모든 원작을 다 사버렸다. 미국인들. 다른 사람들이 영화화하지 못하도록 세상의 모든 걸 모조리 사버리는 인간들. 근데 소더버그의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면서 원작도 몇 달 전에 판권 계약에서 풀려났다. 그래서 판권을 바로 구입해버렸다. 약으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유토피아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주 와일드한 영화가 될 거다. 원작이 표현한 세계야 이미 현재 서구사회에서 벌어지는 일 아닌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야 할 프로젝트 아닌가.
=그 동네에서 전화를 꽤 많이 받고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나의 영화세계는 지금 할리우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물론 짐 자무시 같은 인디 감독들은 무척 훌륭하지만 그들은 할리우드가 아니잖나.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