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난 ‘소수집단’이나 ‘희생자’가 아니다
2008-07-19
글 : 이화정
첫 장편 <아메리칸 좀비>를 연출한 그레이스 리 감독

미국에 거주하는 무수한 ‘그레이스 리’의 인터뷰를 그린 독특한 영화 <그레이스 프로젝트>로 소수인종에 대한 유머러스한 풍자를 시도한 그레이스 리 감독. 첫 장편 <아메리칸 좀비>를 통해 그녀가 또 한번 미국 내 소수자들의 입장을 표출한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감독이 말하는 영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첫 장편의 반응이 뜨겁다. 발상의 전환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기쁘고 만족스럽다. 이 영화는 모두에게 친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이미 미국에는 수많은 좀비영화와 사회적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존재하는데, 난 이 둘을 합치면 재밌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 그레이스 리 감독조차 ‘좀비영화는 내 관심분야가 아니다’라며 동료 감독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런데도 좀비를 소재로 한 계기는 무엇인가.
=영화 속 ‘다큐감독 그레이스 리’는 어떻게 보면 나의 한 부분이다. 둘 다 소외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공통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게 아시안 여자건, 이민자건 좀비건 말이다. 전작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가 아시아인에 대한 ‘모범소수집단’ 고정관념을 다루고 있었으니, 사회에서 잘못 인식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말이 되는 설정이라고 봤다.

-모큐멘터리라는 형식적인 측면이 영화의 코믹한 부분을 십분 살려준다. 독특한 형식과 접근을 착안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난 ‘모큐멘터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의 의미가 ‘농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대신 ‘허구적 다큐멘터리’나 ‘개인 호러영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내 영화에 드러나는 유머는 농담이 아니라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래서 무심하다. 내 개인적인 유머 스타일이기도 하다.

-기존 좀비 영화들과 달리, 영화 속에는 다양한 욕망을 가진 좀비들이 등장한다.
=나에게 ‘좀비는 X다’라고 정의하는 것 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의 복합적인 면을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다양한 캐릭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제목도 ‘아메리칸’ 좀비지 않나. 이민자도 한 가지 유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좀비도 각양각색이다.

-스스로 “코믹이 어려운 이슈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유머에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인생에는 반드시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나 또한 절망적인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했다. 하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상황들이나 특히 나 자신을 보고 웃거나 조롱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선입견으로 치부하던 좀비들의 충격적인 면면이 알려진다.
=결국 영화는 호러 영화라고 볼 수 있는 좀비 영화기 때문이다. 이 장르에서 전형적인 해피 엔딩은 가능하지도 않고 사실도 아닌 게 된다.

-본인이 설립한 영화사 리리 필림스와 한국의 IHQ가 합작, IHQ가 제작비 전액을 지원했다.
=iHQ에게 감사한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미국독립영화인데다 언어도 영어이고, 스타배우도 없고, 장르도 생소하다. 미국의 동급 회사일 경우 이렇게 빠른 진행이 이루어졌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재미교포 감독들이 한국 자본의 연출을 하면서 ‘코리안 아메리칸 시네마’가 형성되고 있다. 한정적 소재나 주제에 갇힐 우려는 없나.
=사람들은 종종 내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경험에 대한 메시지만 전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은 나를 이루고 있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이민 2세인 본인의 경험이 영화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나.
=나 또한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소수집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난 내가 ‘소수집단’이나 ‘희생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난 미국에 태어났고 영어를 모국어로 하고 중상류층의 특권을 가지고 살아왔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가 아닌 여자로서 받는 차별이 더 할 것이다. 하지만 왜 아무도 이런 질문은 하지 않을까!

-당신의 작품의 원동력은 ‘선입견 제거하기’인 것 같다. 편견에 대한 독특한 접근과 풀어나가기가 흥미롭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
=아직 확실치 않다. 얼마 전엔 아기가 생겼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인생을 바꿀만한 경험이다. 지금 형성된 일종의 새로운 시야가 앞으로 만들 영화에 반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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