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팜케 얀센] “한국에도 내 영화에 투자하고 싶은 제작사가 있다면 좋겠다”
2008-07-23
글 : 장영엽 (편집장)
<100피트>의 배우 팜케 얀센

국적을 알 수 없는 이국적인 마스크와 묘한 눈빛. 팜케 얀센의 이름을 스타덤에 올린 <엑스맨> 시리즈에서 그녀는 보여지는 여성이길 거부한다. 얀센이 맡은 돌연변이 여전사 진 그레이는 늘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엑스맨> 2편의 결말은 그녀의 죽음이며, 3편의 시작은 절대 악당으로 탈바꿈한 그녀의 환생이었다. 한순간에 가공할 만한 파워를 발산하는 진 그레이처럼, 팜케 얀센은 단숨에 강인한 인상을 각인시킨 배우다. 그녀는 최근 죽은 남편의 유령과 사투를 벌이는 <100피트>의 여주인공 마니 역으로 다시 한번 강한 여성 캐릭터에 도전했다. 다음은 서면으로 진행한 얀센과의 인터뷰다.

-이번 영화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감독쪽에서 먼저 제안했다. 당시 나는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었는데, 대부분 할리우드의 전형적 캐릭터였다. 반면 <100피트>의 마니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려고 남편을 죽이며, 집을 지키기 위해 정체불명의 존재와 끝까지 싸운다. 마니가 남편에 대한 죄의식과 공포에 사로잡혀 집에서 탈출하는 인물이었다면, 난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00피트>처럼 “여주인공이 온 화면을 장악하는 영화”(감독의 표현)에 출연한 소감은.
=주연을 맡으면 언제나 기쁨보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내 모습이 안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고, 촬영장의 모든 스탭은 내 동작 하나, 표정 하나에 집중하니까. 스탭과 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이번 영화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주연작으로 한국 팬들을 가장 먼저 만나게 돼 기쁘다.

-여주인공 마니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간 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연기를 위해 억지로 캐릭터를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니다. 케빈 클라인의 연기 지도를 맡은 해럴드 구스킨에게 15년간 지도를 받아왔는데, 그는 대사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해왔다. 그의 조언대로 마니와 내가 하나가 될 때까지 나의 감정 상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결국 분노로 가득 차 “이 집은 내 집이야! 난 절대로 나가지 않아!”라고 외치는 순간이 왔고, 난 마니가 되었다.

-촬영하며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에릭 레드 감독은 CG를 쓰면 배우들이 생생한 연기를 할 수 없다며 수십여개의 모형과 세트를 직접 제작했다. 지하실 화재장면을 찍을 때도 가스 파이프를 바닥과 벽에 깔고 진짜 불을 지른 거다. 난 정말로 살기 위해 필사적인 연기를 했다. (웃음) 그뿐인가. 계단에서 구르고, 벽에 부딪치고, 소리 지르고, 울고. 지금까지 출연했던 영화 중에서 액션과 감정 표현이 가장 격하고 힘들었던 작품이다.

-<패닉룸>의 조디 포스터 등 이미 비슷한 장르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구축한 선례가 있다. 당신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마니가 지켜내야 할 것은 아이나 우주 평화가 아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목숨과 ‘집’이란 공간을 지키려고 외로운 투쟁을 벌인다. 때문에 이 역할을 통해 모성애가 강하게 드러나는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과는 다른 여성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딥 라이징>부터 <100피트>까지, 당신의 필모그래피에는 호러영화가 많다. 무서운 영화를 좋아하는가.
=솔직히 공포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한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넘나들며 연기하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정말 좋아하며,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쳐다보지 마라>에서 도날드 서덜런드가 자신의 장례식을 보는 장면은 항상 내 생애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당신을 수식하는 많은 형용사가 있다. ‘아름다운’, ‘지적인’, ‘노력하는’…. 이중에서 당신이 벗어나고 싶은 이미지가 있는가.
=자신을 규정하고 싶은 배우가 얼마나 될까. 나는 아름답다는 칭찬의 말조차 탐탁지 않다. 배우를 하게 된 이유도 나에 대한 규정을 깨고, 여러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였으니까. 그런데 유명해질수록 나를 규정하는 말들이 늘어만 가더라. 인생의 아이러니다.

-앞으로 함께 일해보고 싶은 감독이나 배우가 있는지.
=올해 내 연기지도 담당인 해럴드 구스킨이 감독을 맡은 영화 <키디 라이드>에 제임스 갠돌피니와 함께 출연한다. 구스킨이라면 내 연기를 한 단계 발전시켜줄 수 있을 거라 늘 생각해왔는데, 연기자로서 뜻 깊은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왕가위나 코언 형제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100피트>의 마니처럼 무제한 가택연금 상황에 처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개 리커리시와 함께 지내며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쓸 것 같다. 그만큼 나는 지독한 영화광이며, 감독이나 작가로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사실 얼마 전에 시나리오 한편을 탈고했다. 지금은 이 작품에 투자할 제작사를 물심양면으로 찾는 중이다. 혹시 한국에도 내 영화에 투자하고 싶은 제작사가 있다면, 정말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사진제공 영화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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