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빛 인생> <정글스토리>의 감독이자,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인 김홍준 감독이 토속에로영화를 연출했다. 제목은 <가루지기 리덕스>. 혹시 저명한 학자의 비밀스런 취미생활이 아닐까 싶은 제목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지난 7월16일부터 시작해 9월12일까지 열리는 <고우영 만화: 네버 엔딩 스토리> 전시회에서 소개될 전시물 가운데 하나다.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2층 한쪽에 마련된 소극장에서 상영될 이 작품은 고 고우영 화백이 연출한 1988년 <가루지기>를 둘러싼 영화인과 캐릭터, 그리고 비평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해놓았다. 당시 한 스포츠 신문에 실린 영화평론가 허창과 변인식의 대담을 지금 배우들의 대화로 연출하는가 하면, 2008년 <가루지기>를 연출한 신한솔 감독과 20년을 사이에 두고 두 영화에 모두 참여한 권유진 의상감독과 인터뷰를 시도한다. 영화 속 갈대밭 장면을 새롭게 구성한 것도 주요한 볼거리. 김홍준 감독은 “실험영화를 만들려던 건 아닌데, 그런 분위기가 됐다”며 “고우영 화백의 <가루지기>에서 출발해, 아날로그적인 분위기와 아우라를 연출하고 뒤집고, 비틀고, 심각한 척해보는 재미를 가미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김홍준 감독은 <나의 한국영화>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 등의 작품에서 과거 한국영화에 대한 헌사를 바쳐왔다. 미술가, 설치미술가, 만화가 등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 유일한 영화감독으로 낙점된 것도 그 때문. 또한 “실제 고우영 화백의 전성기 시절 만화를 보면서 자란 ‘노땅’ 감독이란 게 선정 이유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실 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는 고우영 화백이 <가루지기>를 연출했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만화가가 영화 현장에서 치러야 했을 통과의례가 보였고, 묘한 안타까움과 착잡함, 대견함이 느껴졌다.” 본의 아니게 “오마주 전문감독”으로 불린다는 그가 언젠가는 오마주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사람은 조감독 시절 사수로 모셨던 임권택 감독이다. “만들 수밖에 없는 의무감 혹은 운명 같은 게 느껴진다. 정작 감독님은 싫어하실지 모르겠지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