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부두의 서늘한 풍경 <오직 사랑으로>
2008-07-22
글 : 정재혁

<오직 사랑으로> ただ、愛のために
히로키 류이치 | 2008 | 90분 | 일본 | 스트레인지 오마쥬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소녀가 있다. 후회할 것 같은 일이 있을 때 그 사건의 원인으로 돌아가 상황을 다시 쓸 수 있는 능력이다. 여객 터미널의 승차권 판매원으로 일하는 소녀 유리는 남자친구의 죽음을 목도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건 무엇보다 싫다고 생각한 그년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남자친구를 살리고 대신 한쪽 눈의 시력을 잃는다. 시간을 돌리는 대신 빛을 잃게되는 운명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잃는 건 시력 이상이다. 남자친구의 기억, 추억으로 새겨넣은 시간들은 모두 없던 것이 되고, 소녀는 외롭게 새로 씌어진 시간 안에서 모든 짐을 다 짊어진 채 살아간다. <바이브레이터>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바이브레이터>의 황량한 고속도로 대신 이번엔 부두의 서늘한 풍경을 가져왔다. 시간을 돌린다는 다소 SF적인 설정이 있지만 영화는 그보다 소녀의 감성, 그녀가 지워 보내는 남자와 새로 만나게 되는 남자 권 사이에서 겪는 감정 변화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섬세한 권은 <바이브레이터>의 트럭 운전사처럼 유리의 정서를 공유하는 남자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꿈까지 버리고 남자친구를 구한 소녀의 마음은 일면 따뜻해보이지만 그만큼 외롭기도 하다. 오가는 배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부두의 품처럼 소녀는 기다림의 운명을 쓸쓸히 이고있다. 그리고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다른 한쪽 눈마저 포기하면서 새로운 결심을 한다. 홀로 전혀 다른 시간에 떨궈지더라도 주저없이 사람을 품고 모든 상처를 안으로 삭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히로키 감독이 그려온 여성상의 연장선 안에서 볼때 <오직 사랑으로>의 품은 더 넓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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