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정재승은 맹렬한 독서가다. 서평을 통해 정재승 교수가 권한 책의 목록을 더듬어 가다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라는 책 제목에 혹했다. 의사로서 40년 동안 지켜본 임종의 풍경을 기록한 이 책의 첫장에서 저자 셔윈 B. 뉴랜드는 다음과 같이 썼다.“시인, 수필가, 역사가, 소설가, 현인들은 죽음에 대해 글을 자주 쓰지만 그들이 죽음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죽음을 수없이 보며 사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죽음에 관해 거의 글을 남기지 않는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consilience 지식의 통합)이 왜 필요한지 설파한 어떤 글보다 뉴랜드의 문장이 사무쳤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2001)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1999)에서 정재승은 그가 사랑하는 과학을 ‘회원제 클럽’으로부터 예술, 정치, 경제, 사회가 북적이는 광장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러자 흥미가 동한 구경꾼이 모여들었다. 두 책은 지금까지 도합 약 5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정재승이 그 뒤로도 줄곧 과학의 현황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비단 과학자들이 세금으로 연구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과학이 모든 사람의 생사와 안위, 삶의 형식에 개입하는 문제임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두권의 책을 쓸 무렵 학생이었던 그는 지금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로서 학생들과 더불어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며 미국 컬럼비아 의대 겸직교수로도 일한다.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할 때 뇌를 이루는 150억개의 신경세포가 물리적으로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는지 규명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다.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을 발행한 출판사 동아시아의 한성봉 대표는 정재승이 쓴 책의 힘을, 과학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가지고 상상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찾는다. 현재 정재승 교수가 진행 중인 MBC 라디오 <도전 무한지식>의 전희주 작가는 인문학적 상상과 발상을 과학을 통해 풀어가는 접근이 매력적이었다고 추억한다. 예술과 인간의 속내는 인문학의 소관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내게, 과학이라는 단어의 인상은 오랫동안 건넛마을 사는 ‘천재 유교수’(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 참조)에 비할 만했다. 존경스럽지만 대화할 기회는 쉽게 잡을 수 없는 상대. 하지만 정재승이 쓴 <시네마 사이언스> <과학콘서트> <물리학자는…> <도전 무한지식> 그리고 기획하고 집필에 참여한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를 펼친 나는 기사를 준비하는 목적을 연방 잊고 사로잡힌 채 책장을 넘겼다. 정재승은 능숙하게 유혹하는 필자다. 서론은 솔깃하고, 유머와 일침을 잊지 않는 결론에는 붓끝을 들어 획을 삐치는 경쾌한 맛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란 점은 내가 과학으로부터 위안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재승은 과학의 발견을 갈무리해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소음이 있어야 소리도 들린다. 세상이 시끄러운 데는 이유가 있다. 나만 불운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인간과 자연은 있는 그대로 경이롭고 존엄하다. 그제야 나는 걱정을 멈추고 그를 만나러 갔다. 예상대로 정재승 교수는 지식욕을 충족시킬 때 보상중추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진실과 선, 아름다움이 서로를 분간할 수 없는 황홀한 우주를 꿈꾸는 소년이었다.
-교수님의 책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이하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를 펴낸 출판사 동아시아의 한성봉 대표에게 십수년 전 첫인상을 물었어요. 여학생 두명이 앞에 있어도 몇 시간은 거뜬히 대화를 끌어갈 젊은이처럼 보였다고 하셨습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걸 본래 즐기는 편인가요?
=꼭 말하기라기보다 이야기, 스토리에 관심이 많아요. 네살짜리 아이가 부모님 주무시는 밤에 혼자 TV 외화를 보다가 수상기를 끄고 잠들곤 했으니까. 읽은 책과 본 영화를 남들에게 더 극적으로 전해주는 일도 즐겼고요. 또 유머에 관심이 많아요. 인생 원칙 중 하나가 위기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말자는 거예요.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교실 맨 뒤에 앉아서 아이들 전체를 살피며 의자를 까닥거리다가 선생님이 실마리를 던지면 유머로 되받아 친구들을 하루에 서너번쯤 웃기지 않으면 뭔가 허전했어요. (웃음)
-그래서인지 과학에 대한 글에서도 스토리와 드라마를 살리려는 의식이 느껴집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한눈팔지 않고 물리학자를 꿈꾸고 결국 이뤘습니다. 그만한 확신에는 언제나 로맨틱한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법인데 어떤 동경이나 영웅이 마음속에 있었나요?
=특정한 인물이 닮고 싶어 과학자가 되려고 한 건 아니고 과학자라는 직업이 멋있다고 생각했죠. 인간은 내가 어떤 존재고 나를 둘러싼 우주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어하지만 보통은 먹고살기 힘들고 사회적 지위를 쫓다가 근본적인 질문을 못하고 살기 일쑤죠. 그래도 그런 질문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은 옛날 같으면 철학자가 됐을 거고 현대사회에서는 그 대답을 과학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5학년 때 깨달았어요. 답을 못 내도 우주의 기원과 변화, 생명의 잉태를 평생 탐구하며 살 수 있다면 굉장히 근사한 인생이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사회학이나 인문학조차 과학을 자임하잖아요. 과학 중에서도 물리학을 택한 것은 기왕이면 우주의 원리를 직접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에 거는 편이 낫겠다는 계산을 한 건가요?
=계산이라기보다 무모한 도전이라 해야죠. 저 역시 학창 시절 과학이 재밌거나 쉽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지금도 과학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진 않아요. 추상적 개념을 알아야 하고 명징한 논리가 필요하고 선행 개념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개념을 이해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면 도전하지 않았을 거예요. 작은 수식의 의미를 어렵게 알았을 때 과정은 힘들지만 이로써 내가 자연에 대해 엄청난 걸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경이로움은 돈 많이 버냐 지위가 높으냐를 떠나 과학이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요. 결정적 계기는 어머니가 사주신 수학사전이었어요. 수학 공식이나 이론, 수학자에 대한 해설을 묶어놓은 사전인데 일요일에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를 하고 있으면 저는 뒹굴거리며 그 책을 봤죠. 그러다 어느 순간 일상과 수학이 맞물리는 경험을 하는 거에요. 예컨대 피보나치 수열(앞선 두항의 값이 다음 항의 값과 일치하는 수열)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생물시간에 꽃잎의 개수가 그 수열에 맞게 난다는 걸 배우고 자연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구나라고 경탄하는 거죠.
-“내가 다 자라기 전에 우주와 자연의 신비가 다 밝혀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면서요?
=초등학교 1, 2학년 때 제가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로봇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어요.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산 그런 시절이죠. (웃음) 왜, 수퍼맨을 TV에서 본 아이들이 옥상에서 보자기 쓰고 뛰어내렸다는 뉴스가 있었잖아요? 저한테는 그 소식이 남의 일이 아니었어요. 진짜 제가 특별한 사람이고, 어느 순간 초능력이 나올 것이고 뭔가 큰 사건이 곧 벌어진다, 지금은 그날을 기다리며 나무칼을 깎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애는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자라서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흔한 일은 아니더라고요. (웃음)
-글을 보면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영화, 방송 등 취미가 다양한데요. 연구실에 격리된 과학자의 생활이 많은 낙을 포기하게 만들 거라는 우려는 전혀 없었나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모든 영화를 봤어요. 저는 남들 좋다고 하면 왜 좋은지 싫다고 하면 어디가 나쁜지 눈으로 봐야 하거든요. (웃음) 대학원에서는 예술영화의 준말인 ‘예영’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어 <씨네21>의 취재를 받은 적도 있어요. 실험을 디자인하고 학생들과 실험 결과를 분석해 해석하고 논문을 쓰는 연구 과정이 무척 재미있어서 이런 작업과의 끈을 결코 놓기 싫어요. 영화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줄었지만 반면 저의 연구가 조금씩 예술을 포함하는 연구로 진화해가고 있어요. 신경미학이라고, 사람이 예술작품을 보고 미적 체험을 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연구하는 분야가 있거든요.
-스티브 잡스처럼 과학기술과 예술을 결합하되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생활양식을 유행시키는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신지요?
=관심있는 영역이죠. 시대정신을 바꾸고 삶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 과학기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1901년의 어느 날 곧장 인류가 과학적 진보를 이룬 건 아니거든요. 상대성이론이 모든 것의 저변에 스며들고 누구나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라고 상식처럼 말할 때, 그리고 그 이론을 예술이나 자기 삶의 형태로 즐길 때 비로소 과학적 진보가 일어나는 거죠. 제가 하는 연구가 반드시 상업적 방식은 아니더라도 문화의 변화를 자극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데에 관심있습니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와 <과학콘서트>의 성공을 두고 기존 출판계에 없던 대중과학서 시장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후 전문가이면서 대중적 저술가인 필자들이 쓴 책이 출판시장에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고요.
=과학자들이 대부분 취미생활도 쉬엄쉬엄 하는 법이 없어요. 그들에게 글 쓰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매우 다양한 글들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운이 좋았고 기회가 빨리 온 거죠. 만약 교수가 된 다음 잡지에 글 쓸 기회가 왔다면 여느 교수들이 그러듯 기자가 원고를 고쳐달랄 때마다 “내 글은 토씨 하나 바꾸면 안 된다”고 얘기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과학동아>와 <동아일보>에 기고할 무렵 학생이었던 제 글은 기자들이 마음대로 고쳤어요. 그래서 직접 고치지 말고 코멘트를 달아주면 원하는 대로 제가 다 고쳐주겠다고 했어요. 결국 기자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은 셈이죠. 5년5개월 동안 <과학동아> 연재를 하면서 담당기자가 계속 바뀌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글쓰기 수업이 시작된 거죠.
-<과학동아>가 최초로 글을 기고한 지면이었죠?
=1995년 12월 <과학동아>가 창간 10주년을 맞았어요. 10년간 늘 어슷비슷하게 1월에는 상대성이론, 2월에는 블랙홀 8월에는 공룡, 11월에는 DNA식으로 특집이 돌아갔어요. 이맘때쯤 공룡 한번 해야지?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당시 10주년 특집으로 결정한 아이템이 ‘예술, 영화 속 과학’이었는데 교수들에게 원고 청탁이 잘되지 않았고 카이스트 신문에 영화평을 쓰던 제게 연락이 온 거죠.
-대중매체 활동에는 이면이 있을 거 같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스물일곱에 교수가 되고 베스트셀러를 쓰고 카이스트와 컬럼비아대학에 동시에 임용된 청년 학자가 저술, 방송까지 활발히 하니 어쩌면 배부른 행동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대중 입장에서도 미디어 노출을 좋아하는 교수라는 인상을 가질 수도 있고요.
=제 생각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기 분야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 일반인과 계속 소통하는 사람들이 꼭 필요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는다는 걸 보여주거나 사람들 생각대로 되거나 둘 중 하나니까 실제로 보여주는 길뿐이죠 뭐.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복잡해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서문에서 1988년 6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날, 자신은 기말고사를 위해 물리 문제를 풀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애감을 느꼈다고 썼습니다. 사회와의 접점을 놓지 말고 과학을 해야겠다는 소신의 시초는 그때였나요?
=과학고 진학은 제게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과학고에서는 제가 국어를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된 거예요. 포지셔닝이 달라진 거죠. 그럴수록 더 많은 책을 읽었어요. 한편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봤을지 짐작하게 됐죠. 과학고는 한반에 서른명이었는데 제가 한번 우쭐하면 스물아홉번은 좌절해야 했고, 시험 몇 문제 실수하면 등수가 중간 이하로 내려가는 경험을 난생처음 했죠. 그제야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많은 친구들이 이런 경험을 했겠구나 싶으면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한번도 헤아릴 생각조차 안 했다는 걸 안 거죠. 그 순간, 아 내가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한다고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좋은 과학자가 되는 방법을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된 건가요?
=대학(카이스트)에 가서도 그래서 전공에 몰두하기보다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고 방학이면 다음 학기 전공을 미리 하는 대신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고 졸업한다”는 목표를 좇으며 삐딱하게 나갔어요. 공부에 제대로 뜻을 세운 건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예요. 학부 졸업할 때까지는 책에 질문과 답이 다 나와 있잖아요. 과거 과학자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답은 이랬다. 그것을 잘 습득해서 문제를 잘 푸는 게 공부의 실체죠. 하지만 연구란 좋은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아무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이러저러한 답이 가능한데 실험해 보니 이것은 맞고 저건 아닌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리며 진실에 한 발짝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남들은 대학 입시 때 평생 가장 열심히 공부를 했다는데, 전 살아오면서 점점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과학고는 기숙사 생활을 하죠? 합숙 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합숙이 싫다기보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가 힘들었죠. 제겐 학교를 마치면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며 엄마, 동생과 하루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으니까요. 경기 과학고는 수원 송죽동 산 중턱을 깎아 지은 건물이라 저희끼린 기숙사를 송죽사 절이라고 했죠. 운동장이 산 중턱에 있으니 공이 떨어지지 말라고 철조망을 둘러쳤는데 불 켜진 도서관을 뒤로하고 혼자 운동장 철책을 잡고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아, 난 여기 혼자 있는데 세상은 너무 잘 돌아가는구나. 나는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느 고교생이나 느낄 법한 감정이지만 저는 그게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할까요. 적응했다기보다 무사히 탈출했죠. (웃음) 고교에서 카이스트까지 모두 11년을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그동안 저는 월요일에 시험이 있어도 단 한주도 빼놓지 않고 주말에 서울 집으로 올라왔어요.
-현재 특수목적고, 과학고를 바라보는 소회는 어떠세요?
=우울합니다. 제가 다닐 무렵에는 과학고가 모두 여섯곳뿐이었어요. 서울, 경기, 강원, 인천의 2500만명 인구 중 과학고 지망생은 모두 경기과학고에 지원했죠. 그렇게 뽑힌 한 학년 90명의 학생들은 대학입시와 무관한 교육을 받았어요. 실험도 하고 영재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죠. 중학교까지는 훈화시간에 쓰레기 버리지 말아라, 그런 소리 듣다가 고등학교에 오니 갑자기 “너희는 나중에 인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죠. (웃음) 그런데 지금은 과학고가 스무곳이 넘어요. 학교 수가 중요한 까닭이 있어요. 6개 과학고만 있다는 이야기는, 그 학생들이 입시 경쟁을 하지 않고도 교육과정과 전형의 성격상 카이스트에 족히 갈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나 스무개가 넘으면, 모두가 카이스트에 갈 수는 없으므로 나머지는 수능공부를 해야 해요. 과학고가 입시 시스템으로 바뀐 거예요. 초기의 영재교육은 포기하고 1학년에 고교과정 마치고 2학년부터 입시준비에 들어가는 속성학습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과학고가 입시명문이 됐고, 거기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입준비를 하게 됐죠.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다시 한국영재학교가 생기더니 또 영재학교도 두곳으로 늘어났어요. 다음에는 천재학교가 나와야 할지도 몰라요. (웃음) 요컨대 과학고가 평준화의 문제를 보완하는 적절한 기제로 출발했는데 이제는 학생을 계층화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된 거죠.
-학부에서는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하며 뇌를 연구하는 쪽으로 전공을 바꾼 것이 중요한 전환점 같은데요.
=천체물리학은 대단히 매력적인 분야지만, 너무나 엄청난 연구자들이 많아요. 석학들 강의를 들으며 그들이 쌓은 거대한 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탑을 한단씩 공부해 올라가 마지막에 조그만 돌멩이 하나 올리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복잡계 과학이라는 학문이 대두된 지 20년이 못 된 상황이었어요. 사그라들지 번성할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 학문의 탄생에 내가 직접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복잡성과 다양성에 관한 연구가 제 공부를 관통하고 있어요. 세상이 복잡한 데에는 이유가 있고 바로 그 복잡성 때문에 건강한 시스템이 유지가 된다, 즉 복잡함이 상호작용해 놀라운 기능을 창발한다는 이론이죠. 이는 제가 학문을 하거나 글을 쓰는 데에, 또 정치적 소신에 깊은 영향을 주었어요. 저의 주요 연구는 사람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고 그때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는 거예요. 사람은 전통적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마냥 합리적이지도 않고 행동경제학자들이 말하듯 굉장히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개인의 경험, 상황, 주어진 정보량, 불확실성 등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를 고려해야만 하죠. 다시 말해 이제는 컴퓨터와 수학이 어느 정도 발달해 과학자들이 세계의 복잡함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거죠. 천체물리학은 철학으로 치면 존재론, 형성론에 가까워요. 반면 저의 새로운 전공은 인식론이죠.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유지하는가. 그것은 어찌보면 존재론만큼이나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어려서 꿈꾸던 근본적 질문을 탐구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위할 수 있어요.
-‘신세대 과학자’라는 호칭으로 자주 불렸습니다. 과학계 내부에 실제로 세대의식이 있나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많은 과학도들이 유학을 떠나서 몸으로 서양학문을 받아들인 다음 귀국해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분들게 배운 첫 세대인 것 같아요. 앞 세대 학자들에 비해 연구도 열심히 하고 논문도 쓰고 한국 과학의 학문적 토대를 만들려고 노력한 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죠. 또 저는 90학번으로서 X세대라 불렸는데, 활자세대한테는 책 안 읽는다고 욕먹고 영상세대한테는 구식이라고 욕먹은 어중간한 세대예요. 하지만 반대로 두 가지 문화적 자양분을 다 섭취한 집단이기도 했어요. ‘영화 속의 과학’이라는 주제에 대해 쓰게 된 것도 그 시기에 존재한 세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저는 번역체가 아닌 우리말로 과학책을 쓰는 첫 세대라고도 생각해요. 저의 책이 국내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보다 많이 팔린 건 더 훌륭해서가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필자가 우리말로 과학을 풀어쓰는 책을 처음 경험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읽고 나서 “오, 그렇구나!” 탄성을 내는 글을 쓰고 싶어요
-<물리학자는 영화 속에서 과학을 본다>의 속편을 쓴다면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최근 영화가 있나요?
= 요즘은 연구의 관심사가 바뀌다보니, 누가 봐도 과학영화라고 보는 SF보다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에 눈길이 가요. 실연의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뇌 안에 코딩되는가, 기억을 지우는 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재미있게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아직은 특정 기억을 지우는 일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러나 전쟁이나 교통사고 피해자의 외상후 증후군의 치료는 가능하죠. 인간의 뇌에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최근에 있었던 공포 기억을 지우는 뇌의 능력을 북돋워주는 원리죠. 개인적으로 실연의 아픔은 삶에 유익하기 때문에 지우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해요.
-현재 1년 중 일정 기간은 컬럼비아 의대에도 재직 중인데 거기서 실제 환자의 치료를 하십니까?
=환자의 뇌를 찍은 데이터를 분석해 모델링하고 진단합니다. 주요 관심사는 소아정신질환인데 우울증이나 투렛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의 뇌가 보통의 뇌와는 정보를 주고받는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지 연구합니다. 저는 물리학자기 때문에 다른 의사들처럼 정사진을 보는 게 아니라, 뇌의 동영상을 보는 거죠.
-영화를 보다가 웃곤 하는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상투적 표현이 있을 텐데요. 과대망상에 걸린 과학자라든가, 배틀을 하듯 만나자마자 천재성을 겨루는 장면이라든가.
=실험실 묘사에 저항감이 많죠. 이를테면 전공에 안 맞는 도구가 있다거나, 무진장 긴 시간이 걸리는 계산이 버튼 하나 누르면 모니터에 딱 뜬다거나, 칠판에 연관없는 두 수식을 등호로 연결해 쓴다거나. (웃음) <M*A*S*H>라는 영화를 보면 한반도를 배경으로 하는데 베트남 삿갓 쓰고 인력거를 끌잖아요. 그런 부주의가 눈에 띄면 영화가 아무리 미국인의 삶과 페이소스를 담았다고 해도 기본적 신뢰가 깨지죠. 마찬가지예요.
-영화 속 사이버펑크를 히피의 계승자로 보려는 관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SF영화는 역대 박스오피스를 봐도 예산 때문에 주로 주류영화에 속하죠. 제작과정의 물질적 한계 때문에 사회 비판의 에너지와 패기를 보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 9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사이버펑크가 SF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였는데 지금은 마이너예요. 게다가 사이버펑크 정신은 거의 계승되지 않았죠. 지금 SF에 대한 관심은 볼거리, SFX(특수효과)를 잘 담아낼 수 있는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 한정되고 있어요. 과학을 그린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 과학기술이 환경을 파괴하고 자본과 결탁하는 이야기가 대종을 이루죠. 따라서 과학기술이 기존체제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SF 장르물은 만들어지기 쉽지 않아 보여요.
-출판사에 의하면 예일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과학콘서트>의 초고를 건네셨다고요. 공부하는 와중에 책을 쓴 경위도 궁금하고, 책의 목차를 ‘빠르고 경쾌하게’ 같은 지시가 붙은 4악장으로 정한 구체적 이유도 듣고 싶습니다.
=박사후 과정의 생활은 극히 단순했어요. 주말이면 지난 일주일치 <순풍산부인과> 비디오를 빌려보고 미술관, 박물관을 갔죠. 그리고 틈틈이 쓴 책이 <과학콘서트>예요. 정치, 사회, 경제를 복잡계 과학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의 성과를 보니, 과학이란 것이 삶과 동떨어진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재해석하는 시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아빠, 세상이 복잡해?”라고 묻는다쳐요. 복잡하다고 대답할 때 “얼마나 복잡해?”라고 되묻는다면 대답이 궁하잖아요. 이 책은 세상이 매우 복잡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그렇고 또 그 복잡함에는 이유가 있음을 설명하는 책이에요.
-“세상은 불확실하지만 얼마나 불확실한지 아는 일은 유용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그것이 <과학콘서트>의 주제예요. 원래 제가 붙인 제목은 <세상은 얼마나 복잡한가>였죠. 그런데 출판사 사장님께서 “책 내용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을 테니 제목만 바꾸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제목에 ‘복잡한’이 들어가면 3천부 이상 안 팔리다고요. (좌중 폭소) 그렇게 사장님이 고친 제목이 <과학콘서트>였어요. 처음에는 “그런 제목으로 나가면 학계에서 매장당한다”고 저항하다가 결국 따랐죠. (웃음) 그리고는 바뀐 제목에 맞추어 다시 썼어요. 목차는 글의 무게감에 따라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곡목을 밝힐 수 없는 교향곡의 형식을 따른 거예요. 1악장과 4악장이 쉽고 3악장이 어렵죠.
-솔직히 <과학콘서트>가 쉽게 읽히진 않았어요. 전개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결론만 익힌 장도 있었고요.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의기소침해졌답니다.
=<과학콘서트>는 과학을 전공할 학생들이 곱씹으면서 읽으면 좋을 책이에요. 그러나 그 안에 ‘스토리’가 있어서 여러 사람이 읽었던 것 같고요. 다행히도 선정 담당 교수님들이 충분히 읽지 않고 추천하는 바람에 중·고등학교 추천도서가 되어 널리 읽혔죠. (좌중 웃음) 예를 들어 ‘작은 세상 이론’에 관한 장은 ‘케빈 베이컨의 여섯 단계 게임’ 이야기로 시작하잖아요. 독자들은 다 읽고나서 케빈 베이컨 이야기만 기억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서우리만치 작고, 굉장히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내 행동의 결과가 도달할 수 있다는 거죠.
-편집자적 감각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한 주제에 관해 길이가 다른 글을 썼는데, 각각 구조가 완결된 글이었다는 평도 들었고요. 1.5매를 줄여달라고 부탁하면 정확히 줄이면서 어디를 삭제했는지 짚어내기 어렵다는 편집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글을 쓰고 싶은 게 핵심이에요. 읽고 난 사람들이 “어, 그렇구나” 하는 게 아니라 “오, 그렇구나!”라고 탄성을 내는 글을 쓰고 싶어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적절한 인용과 비유, 예제예요. 가령 뇌에 관한 글을 쓰고 싶으면 저는 서가에서 영문학에 관한 책을 꺼내 제가 밑줄 그은 구절이 무엇인지 뒤적거려보는 일로 시작을 해요. 과학에 대한 글은 대부분 가슴에 와닿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인용과 비유, 예제 없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거든요. 숫자는 몇 킬로미터라고 쓰기보다 이것이 지구를 몇번 감을 수 있는 길이라고 쓰죠.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스무번쯤 소리내어 읽으면서 다듬어요. 산문도 운율이 있거든요. 다시 읽는다 해도 읽다가 멈추고 되돌아가서 곱씹는 게 아니라 한번 죽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죽 읽는 방식으로 곱씹는 글이 되도록 신경을 씁니다.
-문장에 부사가 많지 않더군요.
=1990년대 초에는 화려한 수사가 많이 들어간 글을 썼어요. 아마도 당시 읽던 <씨네21>이나 <키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가 아닐까 싶은데. 하하. 요즘은 부사와 피동은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는 스티븐 킹의 말을 염두에 두고 있죠.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 단어가 아니면 안 되는, 이걸 쓰면 다른 말이 필요없는 적확한 단어를 찾는 일이에요. 뭐, 조금씩 늘겠죠.
읽고나서 “오, 그렇구나!” 탄성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아인슈타인은 미적 간결함이 진리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말했잖아요. 교수님도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물리학자와 예술가는 크게 다르지 않게 대한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히셨고요. 그런데 카오스 이론, 복잡성의 과학을 적용해 뇌의 물리적 작동방식을 연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서는 단순미를 얻기 어렵지 않나요?
=사람들은 아주 복잡한 현상에 휘둘리기 쉬운데 물리학자들은 복잡한 현상을 관통하는 근본원리에 더 관심이 있거든요. 현상이 복잡하다고 그 원리가 복잡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단순한 원리가 복잡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껴요.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과학이 발견하는 원리를 두고 그 자체로 희망적이거나 절망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동물의 생태 연구는 성역할의 고정관념이나 인간의 종 우월주의를 깬다는 점에서 희망적이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설명한 파레토의 법칙은 불평등이 자연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과학이 드러내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 관한 사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냐 그렇지 않느냐, 혹은 희망을 주느냐 절망을 주느냐는 그 자체의 속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저 그것을 희망적으로 또는 절망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우리 안에 있겠죠. 오늘은 굉장히 희망적인 자연의 메시지가 30년 뒤에는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에 나오는 적자생존도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죠. 하지만 그 현상이 드러났다고 해서 다윈을 지지하는 사람이 좌파냐 우파냐, 그것이 암시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가 적절하냐 그렇지 않으냐는 문제는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자연은, 사사로운 인간의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굉장히 냉정한 방식으로 자기 고집대로 운영돼요. 또 그런 냉정함 때문에 오래 버틸 수 있고, 알고 싶은 욕망이 더욱 꿈틀거리는 거죠. 해석은 자기 가치관과 시대에 맞게 하면 돼요. 자연이 이러니까 우리도 그러자고 할 수도 있고, 자연은 이렇지만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두 논리가 모두 가능해요. 그래서 과학이 과학만으로 홀로 설 수 없고 다른 사회적 실체와 결합할 수밖에 없어요.
-영화나 예술에 관한 글을 쓰다보면 사람들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앞서 신경미학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뇌의 작용에 어떤 공식이 있을까요? 아니면 뇌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사물의 객관적 신호가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건 아름다움의 체험이 지금까지 생각한 것처럼 수동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아름다운 작품을 딱 갖다놓으면 사람들이 “와!” 하는 게 아니라, 뇌가 앞에 놓인 작품이 무엇인지,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예측한다는 거죠. 그것이 음악이라면 뇌는 쉴새없이 다음 음의 전개를 예측하면서 짐작이 너무 잘 맞아도 너무 안 맞아도 아름답지 않다고 느껴요.
-그렇다면 질서와 의외성의 황금비율이 있을까요?
=황금비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적절한 비율이 다를 수 있겠죠. 아무튼 절대적 미가 있어서 갖다대기만 하면 미가 뇌에서 표상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그게 제 연구의 주된 가설이죠. 파울 클레의 같은 그림을 미술관에서 본다고 할 때 어떤 작품 사이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그림이 공포스러울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앞 작품을 보면서 관람자가 생각하는 작품간 주제와 예측이 다음 미적 체험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MBC 표준FM의 <도전 무한지식>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기획 단계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셨다고 들었고요.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전희주 작가는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과학자의 특성상 원래 라디오에 애정이 있다고 전해주시더군요.
=라디오를 사랑해요.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을 하긴 했지만, 그건 프로그램이 좋아서였지 TV가 좋아서는 아니었거든요. 라디오에서 과학을 통해 일반인과 소통하는 게 너무나 재밌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사실 <도전 무한지식>처럼 혼자 말하는 포맷보다 대화를 원해요. “이런 게 뭔지 아세요?” 물어봐서 진행자가 모르겠다고 하면, “아, 그게 말이죠”라고 말하는 쪽이 훨씬 재밌잖아요? (웃음)
과학을 해석하는 방법은 인간에게 달려 있어요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연구 파동과 광우병 의심 쇠고기 사태로 국민들이 뜻하지 않게 유식해졌습니다. (웃음) 한국 과학자들의 대응에 관해 의견이 있을 것 같습니다.
=논란이 발생했을 때 그 분야의 권위자가 복잡한 문제 중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연구가 도달한 범위 내의 답은 무엇이라고 말해준다면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갖고 생산적 토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어요. 과학적 주제와 정치적 문제가 뒤엉키다보니 정치 성향에 따라 과학적 내용이 이리저리 해석되는 상황이 연출된 것 같아요. 과학자들이 자기 견해를 말하라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 사실을 말해야 할 때는 용기있게 발언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순간 머뭇거리기 때문에 과학자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 같고요.
-2004년 기사를 보니 당시 반세계화 운동에 첨단 통신기술로 무장한 대중이 보여준 새로운 행동양식에 대해 코멘트를 하신 적이 있더군요. 이번 촛불집회 기간 중에 해외 출장이 잦으셨던 걸로 압니다만, 동향은 파악하고 계실 텐데요. 이번 집회 양상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소수가 운영하는 똑똑하고 효율적인 정부가 이슈에 큰 관심이 없는 시민을 위해 시스템을 만드는 게 통상적 국가이게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국민이 어떤 문제에 대해 매우 정확한 지식과 삶의 질, 생명권에 대해 높은 의식수준을 갖고 있고 그것에 미처 정부가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 사례 같습니다. 다만 광우병이 국민을 결집시킨 주제이긴 하지만 광우병의 심각성 때문에 촛불집회가 장기화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새 정부 집권 이후 보여준 실망스런 모습이 누적되다가 쇠고기 문제가 전형적인 사례로 터져나온 것이죠.
-가축 사육과 식문화를 우려하는 칼럼을 쓰신 적도 있습니다. 집회를 통해 식문화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기를 기대하셨을 법한데요.
=광우병 자체에만 의제가 매몰되면 여러 가지 방어 논리가 있습니다.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하기만 하다면 이 문제를 잊어버리는 상황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광우병이 발생하게 된 것은 인간이 과도한 육식을 하고 그걸 감당하기 위해 동물 사료를 썼기 때문이거든요. 지금의 문제가 매우 뒤틀린 식문화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걸 고민해야죠. 촛불집회의 의제가 이명박 정부의 다른 정책으로 넓어지는 것도 좋지만, 붙들고 깊이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문화가 잘되어야 한다고 주류 미디어가 항상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 ‘잘된다’의 기준은 대개 국가경쟁력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고 느낍니다. 과학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가 있는 것 같고요.
=지난 10년간 과학기술에 한국이 엄청난 투자를 했지만 다양한 수확을 얻기 위한 씨앗을 뿌렸다기보다 성장 동력을 키우는 의미로 지원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의 기준이 맞지 않았을 경우 세상이 바뀌면 마땅한 대안이 없어요. 이제는 과학기술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촛불집회만 봐도 사람들은 이미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가 깨끗한 환경에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철저한 검역체계가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국민은 느끼는데 시스템을 만드는 정부는 인식이 부족해요. 또 경제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알아서 자본이 붙어 시장경제 아래에서 발전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는 성장과 직결되지 않아도 투자해야 할 분야에 귀와 눈을 열어야 하는데 시장경제 중심적 투자를 하고 있어요. 기초 과학기술과 인문학 사회과학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죠.
-그 말씀을 들으니 교육에 대한 칼럼에서 “EBS가 수능강의 같은 사교육의 대체재가 아닌 대안재를 공급해야 한다”고 쓰셨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도록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셨는데요. 부모들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희한한 것이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점점 늘고 있는데 대학 신입생 수준은 떨어진다는 거죠. 사람을 키우는 데에는 천천히 창의적으로 키우는 법이 하나 있고, 속성으로 효율적으로 주입해 시험을 잘 치르게 하는 법이 있다고 봐요. 경쟁하면 당연히 후자가 유리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후자가 소수라고 하더라도 전체 집단이 그런 유형에 지배될 거고요. 그러나 독서하고 공상을 하고 글쓰는 시간을 박탈할 만큼 사교육에 매진하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 같아요. 사교육과 스스로 하는 공부 사이에 균형을 잡아줘야지,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나서 잠들기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과외와 학원, 독서실로 점철시킬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불행입니다.
-사적으로도 갈등과 선택 상황이 올 때 과학자로서 판단을 통해 행동하시는 때가 많은가요?
=그럼요. 방금 이야기도 마찬가지예요. 사춘기 전까지 인간의 뇌는 주로 언어 능력과 기억력을 많이 써요.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면 이마 뒤 전전두엽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곳은 복잡한 사고력과 창의력, 상상력을 주관하는 중요한 영역입니다. 전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에 생각과 독서를 해야 하는데 사교육은 그 모든 걸 암기문제로 바꿔서 사춘기 이전 영역만 쓰게 만드는 거죠.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30, 40대가 됐을 때가 걱정돼요. 암기, 언어에 치중된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끼리 좋은 대학 나온 엘리트가 돼서 둘러앉아 의사결정을 하는 광경을 생각하면 끔찍하죠.
-교수님의 글을 읽고 대화를 하면서, 세상의 모순과 고통에 대해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타인을 해치고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제대로 알면 바로잡을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낙관적이라고도 느껴지고요.
=안다고 해서 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진 않지만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제일 먼저 할 일이라고는 생각해요. 충분한 이해를 하면 적어도 어리석은 문제와 엉뚱한 대안은 제거한 다음 유의미한 대안들 사이에서 토론할 수 있거든요. 최종적 해결책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순 있지요. 정답도 없을 테고요. 그러나 최소한 바보 같은 일은 안 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상대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알고 하는 토론은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면 서로의 차이만 드러낼 뿐이죠. 저는 각자 존중할 만한 답을 갖고 나누는 토론을 매우 즐기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어리석은 부분을 먼저 제거하는 작업은 적어도 과학이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追伸 “쓰고 싶은 책은 아주 많은데 쓸 수 있는 책은 한정돼 있어요. 그래서 직접 쓰는 것도 좋지만 책을 기획하는 일이 더욱 재미있어요.” 그렇게 말했지만 요즘 정재승 교수는 기존 저서와는 사뭇 다른 두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추리소설에 관한 책이다. 미스 마플이 뜨개질만 하면서 이웃의 이야기만 듣고도 범인을 집어낸 사건에 만약 CSI가 투입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범인을 추적할까? 그런 상상이 포함된 책이라고 한다. 다른 한권은 ‘젊은 과학자의 초상’으로 불릴 만한 칼럼 모음집이다. 한국에서 과학자로, 나아가 과학자인 시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심사숙고가 실릴 터다. 한 영화감독에게 다음 작품에 대한 도움말을 주려고 바삐 떠나는 정재승 교수와 헤어지며 ‘케빈 베이컨의 여섯 단계 게임’을 되새겼다. 인간관계가 주변을 벗어나 ‘엉뚱한’ 데로 문득 가지를 뻗을 때 나를 둘러싼 세상은 부쩍 작아진다는 이치가 새삼 고마웠다. 정재승 교수를 만난 날, 세상은 분명 작아졌다. 그리고 도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