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 (The Most Beautiful Night in the World)
2007 / 일본 / 텐간 다이스케 / 160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은 일본의 거장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아들 텐간 다이스케의 작품. 다이스케는 사랑과 욕망이 도처에 표류하던 아버지의 세계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성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은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을,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원시성 강한 성행위의 모습은 자연스레 <나라야마 부시코>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아들의 세계는 아버지의 그것보다 훨씬 보드랍고 달콤하다. 아름다운 비밀 병기 여인과 미친 천재 소녀, 최음제 폭탄을 제조하는 테러리스트가 즐겁게 모여 사는 마을은 히피의 낙원 같다. 섹스 스캔들에 휘말려 한직으로 내쫓긴 어느 기자가 이 마을로 내려오면서 기괴하고 발칙하고 엉뚱한 사건들이 물흐르듯 이어지고,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날 밤’을 향해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그런데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건 사랑으로 가득찬 낭만적인 세계였던 것만은 아니다. 섹스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평화롭지 못한 현대 사회의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암시한다. 이 영화는 9·11 테러를 주제로 세계 열한 명의 감독이 제작했던 <110911>의 내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텐간 다이스케는 당시 일본 대표로 참여한 아버지의 영화에서 각본을 맡아 뱀으로 변해버린 군인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이 에피소드는 이번 작품에서도 다시 한 번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전쟁과 폭력 같은 무거운 이야기도 밝게 풀어가는 능력이 돋보인다. 한편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2시간40분이란 다소 긴 러닝타임(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다)을 참고 볼 만한 가치가 있는데, <향수>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집단 정사신에 버금가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곳곳에 삽입된 발랄한 일러스트는 로망포르노적인 설정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감독의 히피적 감수성을 판타지와 적절하게 버무린, 귀여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