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아! 안녕하세요. 실제로 뵈니 너무 귀여워요, 도라에몽씨.
=안녕하냐옹~! 나도 데뷔 4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오게 되어서 영광이다옹~.
-그래서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여기…. 도라에몽씨가 가장 좋아하는 도라야끼 단팥빵만큼 맛난 한국 특산품 붕어빵이에요.
=캬아악! 붕어를 넣은 빵을 어떻게 먹냐옹? 그래도 한번 맛을 볼까나옹? (한입 베어물더니) 냐아아아아! 이거 진짜 맛있다옹!
-그런데 도라에몽씨 말투가 살짝 이상하신데요. 제가 알기론 어눌하긴 해도 그런 말투는 아니셨잖아요?
=사실 요즘 <포켓 몬스터>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언제나 당차고 영리한 로켓단의 냐옹이한테 푹 빠져서 그의 말투를 배웠다옹! 피카추와 지우한테 끝까지 굴복 않는 냐옹이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내 판타지다옹~.
-휴…. 사실 저도 판타지가 필요해요. 어릴 때는 커서 이런 어른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사람들을 이끄는 소신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죠.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집에서는 마눌님에게 쩔쩔 매는 남편이요, 사회에서는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쪼들려 어깨가 축 처진 샐러리맨이요, 심지어 동네 놀이터 꼬마들한테조차 무시당하는 한심한 중년남의 모습이라고요. 하루에 한 가지씩 소원을 들어주는 모래요정 바람돌이한테 당당하고 소신있는 남자가 되게 해달라고 소원이라도 빌고 싶다니깐요.
=헤헤, 왜 바람돌이를 찾냐옹? 바람돌이는 요즘 바람둥이가 되어서 ‘소원성취 클럽’에서도 쫓겨났다옹. 그런 건 나에게 부탁하면 된다옹~!
-네? 도라에몽씨가 제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고요?
=그렇다옹! 만화도 안 봤나옹? 어디 보자…. 어떤 방법으로 소원을 들어줄까나옹. (배의 4차원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마법 도구들을 하나둘 꺼낸다.) 지구를 떠나서 다른 별에 가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면 5광년 거리 안에선 어디로 갈 수 있는 ‘어디로든 문’, 수화기에다 대고 원하는 상황을 말하면 그대로 이뤄지는 ‘만약에 상자’, 아예 땅속으로 들어가 잠적하고 싶다면 굴착기와 맞먹는 속도로 땅을 파는 ‘두더지 장갑’, 뒤집어쓰고 시간을 조종하면 원하는 과거나 미래로 이동할 수 있는 ‘타임보자기’ 등등…. 어떤 마법 도구로 소원을 이뤄줄까옹? 말씀만 하시라옹~!
-음…. 모두 다 맘에 들긴 하지만 아무래도 원하는 과거로 이동할 수 있는 타임보자기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전 항상 꿈과 패기가 가득하던 사회 초년병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거든요. 대학교 졸업하고 딱 회사에 취직했을 때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당당한 남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알겠다옹! 그럼 자, 요걸 뒤집어쓰고….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자, 잠깐만요! 그건 또 웬 무슨 요상한 주문?
=<시간탐험대>의 돈데크만도 모르나옹? 타임슬립할 땐 이 주문이 가장 잘 먹힌다옹!
*어쨌거나 타임보자기를 타고 도라에몽이 주문을 외우자 순식간에 타임슬립이 이뤄진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삐삐삐빅! 하나! 삐삐삐빅! 둘! 거기 18번 올빼미! 똑바로 못하겠습니까?”
-익!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서, 설마 군대의 유격 훈련장? 도, 도라에몽. 어떻게 된 거예요?
=그, 그게 미안하다옹. 내가 시간 설정을 잘못 해서 몇년 더 과거로 가버렸다옹!
-이익! 군대 시절로 시간을 돌려버리면 어떡해요. 이익! 역시 소문대로 덜렁쟁이였어. 다시 제대로 보내줘요~!
=그, 그게 요 타임보자기는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다옹. 그냥 이 참에 군대에서 다시 정신 수련이나 해보는 건 어떠냐옹? 그러고 나면 진짜 당당한 남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옹~?
-꾸에에엑! 그런 게 어딨어~~~~~?!
*유격장에 울려퍼지는 18번 올빼미의 처절한 절규를 뒤로하고 도라에몽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