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곽경택] “편집은 내가 정태원 대표에게 해달라고 했다”
2008-07-3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촬영 중간에 메가폰 넘겨받은 곽경택 감독

지금 준비 중인 드라마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장동건 역은 현빈, 유오성 역은 김민준이 맡는다. 내년쯤 MBC에서 방영할 계획이다. 대본은 반쯤 썼다. 진숙을 할 여배우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영화에서보다 그녀의 역할은 훨씬 더 중요해질 거다.” 그러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하 <눈눈 이이>)를 지나고 나면 곽경택 감독은 다시 드라마 <친구>로 향할 것이다. <친구>는 여전히 그의 영화에서 뿌리이며 영향력 높은 자기 참조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눈눈 이이>는 좀 다르다. 좋은 의미이건 나쁜 의미이건 ‘곽경택스럽다’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그조차도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종종 사용하는 걸 보면 이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중도하차할 뻔했던 프로젝트를 살려낸 노련한 구원투수 혹은 기획영화로서의 면모를 성실하게 세공해낸 세공 기술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 곽경택 감독의 필사적인 기획과 야심에 의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의 노력이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에 입혀진 셈이다. 누가 생각해도 말릴 만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는 끝을 본 것인데, 과연 그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그는 어떤 심정으로 달리는 차 안에 뛰어들어 핸들을 움켜잡은 것일까. 그 차는 그래서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걸까.

-4월 말에 개봉하려다 늦춰 7월 블록버스터 시즌으로 개봉일을 바꿨다.
=일단 그 시즌이 한국영화 개봉하기에 좋지 않았다. 잘못하면 소리소문 없이 묻힐 수도 있었다. 기왕 늦어진 거 조금 더 만져서 완성도를 높인 다음 내놓자고 했던 거다. 그 과정에 배급사도 SK텔레콤에서 롯데엔터테인먼트로 바뀌었고.

-이미 알려진 일이지만, 감독 크레딧에 두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에 관해 궁금해할 이들이 많을 것 같다(이 영화는 안권태 감독이 촬영 중 물러났고 그 자리를 곽경택 감독이 맡아 완성했다).
=<사랑> 제작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제안을 받았다. 내 나름대로 그 당시를 분석해보면, 그때 한국영화들의 프로덕션이 막 엎어지고 할 때였다. 이 작품도 초반 파이낸싱이 힘들었던 걸로 알고 있다. 도심에서의 스피드, 스케일, 스타일 등 쌈박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했던 건데, 제작비가 셌다. 내 경우에는 이 제작비로 안 되겠으면 시나리오 바꾸겠다, 이렇게 했을 텐데, 안 감독은 사실 그 안에서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거다. 그런데 예산이 깎였음에도 원래 시나리오를 고수했던 게 문제였다. 게다가 초반 촬영 때 날씨가 안 좋아서 일정 펑크가 많이 났고, 그 다음 보충 촬영으로 이어지면서 결국에는 감독을 교체하는 고민까지 가게 된 거다. 기술적으로는 안 감독이 이미 스피디하게 큰 액션신을 많이 찍어놨으니까, 이른바 그런 걸 많이 찍어본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고 내게 제안했을 거다. 나는 또 <사랑>을 태원엔터테인먼트와 같이 하지 않았나. 이런 경우 누가 하게 되더라도 후임은 전임의 작업을 탐탁지 않게 생각할 것이고,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고, 못되면 업계에 소문만 안 좋게 난다. 그래서 주변에서 말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태원 대표, 안권태 감독(안 감독은 <친구>의 조감독이었다)과의 친분관계가 크게 작동한 게 사실이다.

-완성본에 들어간 안 감독과 본인의 촬영분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사실 편집하면서는 이게 내가 찍은 건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안 감독이 60% 정도 촬영을 마쳤을 때 내가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영화에 쓰인 건 내가 찍은 것과 안 감독이 찍은 게 반반 정도다.

-안 감독이 연출한 장면을 알려줄 수 있나.
=초반부 차량 경비 분량 일부, 안토니오(이병준)가 등장하는 장면, 특히 젠더 바 이외의 안토니오 부분은 거의 안 감독이 찍었다. 그리고 호텔에 김현태(송영창) 잡으러 가는 장면, 엔딩 부분의 취조실, 자동차 액션신 등이다. 지금 기억나는 건 그 정도다

-연출자가 바뀌면서 영화는 당연히 얼마간 기조가 바뀌었을 것이다.
=버라이어티해졌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많이 넣었다. 대신 조연들 부분은 많이 줄였다. 안 감독이 하고 싶었던 건 <오션스 일레븐> 같은 거였다. 나는 백성찬(한석규), 안현민(차승원), 두 주인공이 중요하지, 다른 조연들은 장치적 인물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토니오와 김현태(송영창)는 더 강화했다. 김현태는 두 주인공의 공동의 적, 같이 극복해야 하는 인물로 매우 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현태를 잔인하게 그렸다. 그런데 김현태 자체만 강하면 흡인력이 없어서 탈북자 출신 경호원을 추가했다. 무엇보다 메인 인물들이 살아야 했다.

-촬영 도중 맡게 되면서 많은 판단을 빠른 시간 내에 해냈어야 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떤 점이 시급하다고 느꼈나.
=일단 두 주인공에게 믿음을 사는 것이었다. 어차피 스탭들은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이고, 문제는 주연 연기자들과 나와의 관계였다. 나하고 작업하는 데 거부감이 없어야 했다. 서로 인간적인 관계를 빨리 만드는 게 중요했다.

-정태원 대표는 본인이 편집에 관여한다고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다. 이전의 연출자가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정 대표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둔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본인의 입장에서는 편집에 대한 관여와 디테일한 부분들에 대한 지적, 이 두 가지에 관해 정 대표와 의견을 공유했다는 말인데.
=서로 안 해봤던 것도 아니라서 어렵지는 않았다. 정 대표도 나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서는 존중한다고 했고. 하지만 내게 이렇게 부탁했다. “곽 감독은 높이 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자체의 스타일과 미덕이 있다. 이번만큼은 본인의 작품을 꾸려가는 게 아니라 도와주는 것으로 가면 안 되겠느냐.” 거기에 맞추기로 했다. 편집은 내가 정 대표에게 해달라고 했다. 그가 편집을 리드했다. 일종의 영화의 주인인 제작자가 프로듀서로서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정 대표의 편집적인 감각, 디테일한 소통방식을 봤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같이 힘을 합쳐서 해낸 기분이다.

-그래도 본인의 영화적 기질을 숨기지는 못할 텐데.
=물론이다. (웃음) 농담 삼아 말하지만, 내가 찍어서 올려 보내면 자꾸 누아르 같다고 하더라. 안현민이 항구에서 동료들 보내고 나 같으면 하늘 한번 딱 본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 영화의 색깔을 바꾸려는 것 같아 안 했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이미 찍어놓은 촬영 분량에 맞춰 각색을 새로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그래서 초반하고 엔딩은 거의 바뀐 거다. 백성찬이나 가짜 백성찬 소개하는 장면도 새로 했고. 인물들이 처음 등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백성찬은 아예 처음부터 경찰직 그만두려고 하는 사람으로 설정했고. 안현민은 뒷모습부터 등장시킨다. 그의 경우에는 돈에 대한 철학을 먼저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김현태라는 인물도 이중적인 인물로 새로 보여주었고.

-한명의 관객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창작자 곽경택의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다르게 이번 두 주인공들은 좀더 기획화, 양식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덧붙이자면 영화가 전반적으로 철저하게 어떤 의도된 기획성 안에 머무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자. 예를 들면, (앞에 있는 커피잔을 가리키며) 이 커피를 만들 때 나는 안의 내용물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 용기를 만든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용기부터 먼저 있었다. 이 용기에 맞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던 거다.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내 전 영화들은 대체로 어느 한 사람을 따라가지 않나. 인생 역정에 대해서도 많이 다뤘고. 이번은 하나의 사건이 중요했다. 이건 장르영화다. 거기에 맞도록 충실했다. 그럼에도 안현민의 과거 같은 경우, 신부님이 나와서 미사 드리고, 아버지 수술실 보여주고, 교도소에서 동료들 한명씩 만나고 하는 건 내 식대로 백그라운드를 만들어낸 거다.

-그럼 백 반장의 백그라운드는.
=그렇게 하면 영화가 너무 다른 데로 가는 것 같으니까 애교있는 발상으로 곧 경찰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정도를 넣은 거다.

-곽경택의 영화가 ‘토종적’이거나 ‘지방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면 이번 영화는 유사 할리우드적이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준다. 물론 이건 앞서 말한 기획성이라는 측면과도 연관이 있다. 더 긴요하게는 할리우드적이라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많은 부분에서 할리우드적인 표식들도 볼 수 있다. 연출자로서 이 부분을 감지하면서 연출했을 텐데.
=완곡하게 표현해주긴 했지만, 좀 나쁘게 말하면, 다 베낀 것 같다, 뭐 이거 아닌가? (웃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달라. 영화사에도 초기에 몽타주 이론 등이 있었지만 그것도 다 상업적으로 발달을 해오지 않았나. 그러면서 많은 작품들의 공식이 된 거고. 이런 것들을 또 후배들이 쓰는 거고. 이 영화는 페스티벌에서 칭찬받는 그런 이야기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미 <눈눈, 이이>가 장르영화를 표방하고 나섰는데 그게(참조하는 게) 뭐 그리 잘못된 것인가 싶다. 물론 시나리오 고치느라 애먹을 때는 ‘나머지 예산이 얼마요. 차라리 그걸 날 주면 내가 영화 새로 하나 찍을게’ 하고 말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하지만 연기자와 스탭들이 날 도와줬고. 같이 한번 힘을 내본 거다.

-영화적으로는 어떤 부분에서 크게 성취감을 느끼나.
=페이싱(pacing). 빠른 국면의 전환. 이번에는 뭔가 이 영화로 뭉클하게 남게 하겠다는 게 아니다. 좌충우돌하는 이 이야기가 최소한 지겹지 않게 보인다면 성공이다.

-영화를 보니 주인공 안현민이 김현태에게 복수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백성찬과 안현민의 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에 복수할 대상 김현태가 필요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그렇다. 영화 완성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정리하게 된 건데, 자연스럽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만 놓고 본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복수를 위해서 범죄라는 걸 이용하는 게 안현민이고, 그 범인을 이용해서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응징을 하는 게 백성찬이다. 이렇게 두 인물의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때 두 주인공 중 누구의 비중도 해치지 않으면서 둘 사이의 긴박한 관계를 그려내는 것이 중요한 연출 포인트였을 것 같다. 어떻게 둘의 비중을 나누고 조율했나.
=기술적으로 배치하는 방법론을 썼다. 예를 들면 백성찬이라는 인물은 개가 사람을 물어 죽였다고 하니까 “저것들 다 안락사시켜”라고 말하는 캐릭터다. 그게 무엇이든 다 죽이라고 하는, 포스가 느껴지는. 안현민은 동료들에게 돈을 다 나눠주고 돈이 다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반드시 수단이고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면모를 갖고 있다. 그는 좋은 끝이 있어야 현실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그들을 비교시켰다.

-실질적으로는 백성찬과 안현민이 만나는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가 핵심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해봤다. 사우나에 앉아 있는데 총을 들이대는 것으로 해볼까, 갑자기 말을 붙여보는 걸로 할까, 아예 오마주라고 하면서 <히트>를 가져다 써볼까. 그런데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서로 차 안에서 앉아 마주보는 장면이었다. 그게 앵글이 재미있다. 그래서 백성찬과 안현민이 만나는 장면도 그렇고, 윤 상무하고 돈과 칩을 바꿀 때도 그렇게 찍었다.

-그런데 초반의 팽팽한 접전에서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며 두 사나이의 뜻 모를 우정의 코드가 강화되는데, 그게 뭔가 좀 미적지근한 화합 같다.
=그 관계에서 안 미적지근하면 또 어떻게 하겠나. 나는 이 수위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관객 중에서는 왜 풀어주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꼭 정해진 감정상태가 되어야만 풀어줄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자존심 강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지극히 고전적인 악인의 느낌을 주는, 그리고 유일하게 이번 영화에서 사투리를 구사하는(웃음) 김현태가 두 주인공을 제외하면 가장 흡인력있는 인물이다.
=그의 색깔이 분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악당으로 치면 김현태는 110% 악당이지 않나. 나의 이전 영화들이 지면에 포복을 하는 것 같은 인물들, 그만큼 리얼리티가 강한 영화였다면, 이번에는 살짝 떠 있지 않나. 이야기가 살짝 떠 있다면, 인물들도 살짝 띄워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실 백성찬 같은 형사가 어디 있으며, 안현민처럼 치밀한 범죄자가 또 어디 있겠나. 이번 영화는 조금 더 상상적인 인물들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현태도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

-곽경택 영화의 장점은 인물들에게서 돌출되는 살벌한 육체성인 것 같다. 악인을 양식화하는 데 뛰어나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악인들만 나오는 곽경택 영화도 상상해본다. 공감의 유무를 떠나서 일단 그런 악인들이 여럿 등장하는 곽경택 영화라면 정말 무시무시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를테면, <친구>의 유오성과 <사랑>의 김민준이 함께 나오는….
=내 영화에 항상 악인이 등장한 건 아니었지만, 실은 <사랑>에서 김민준 부분 연기시킬 때 내가 가장 즐거워했다고 스탭들이 그러더라. 그런 거 욕심있긴 하다. 실은 언젠가 그런 지독하게 악한 사기꾼들만을 인물로 한 이야기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이번 영화는 “남자영화가 아니라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다시 남자영화인가.
=아니. 내가 설득되는 주인공이 여자인 영화가 있으면 그것도 언제든 할 거다. 그런 아이템도 실제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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