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웅본색>은 리메이크영화다. 골든하베스트에서 일련의 코미디영화들로 승승장구하던 오우삼은 드디어 자기 스타일의 액션영화를 꿈꾸게 되는데, 당시 신흥영화사 시네마시티(신예성영업유한공사)의 지원으로 ‘전영공작실’을 차린 후배 서극을 만나게 되고, 이내 용강 감독의 흑백영화 <영웅본색>(1967)을 영화화하고자 의기투합한다(원작의 영어제목은 ‘A Better Tomorrow’가 아닌 ‘Story of a Discharged Prisoner’다). 거의 10년 넘게 감옥에 있다 출소한 한 남자(<영웅본색>의 적룡)가 그를 다시 조직으로 끌어들이려는 보스, 그리고 경찰인 동생(<영웅본색>의 장국영)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원작과 비교하면 주윤발 캐릭터가 굉장히 커진 셈인데,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을 맡은 사현이 바로 최근 장백지로 인해 상처가 컸을 사정봉의 아버지이자, <소림축구>에서 선글라스를 낀 악마팀 감독을 연기한 배우였다는 사실이다. 악당 보스는 바로 <용쟁호투>(1973)에서 섬의 주인 ‘한’을 연기한 석견이었다.
두 번째로 <영웅본색>은 오우삼의 다른 누아르영화들과 비교하면 사실 액션신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뿐더러 오프닝부터 유려한 총격전이 벌어지는 이후 영화들인 <첩혈쌍웅>(1989), <첩혈속집>(1992)과 비교할 때 첫 번째 총격신은 영화가 시작하고 거의 20분이 지나서야 등장한다. 그러니까 20여분이 지나기까지는 마치 홍콩 관객에게 ‘코미디 감독’으로 각인돼 있던 오우삼의 ‘낡은 것과 새것’ 사이의 갈등을 보는 것 같다. 장국영의 여자친구 주보의가 첼로 가방으로 배우로 출연한 서극 감독의 차 유리를 박살내면서 슬랩스틱코미디를 하고, 비즈니스차 대만(타이완)으로 갈 예정인 이자웅에게 주윤발이 조심하라는 의미로 “애들 장난인 줄 알아? 차이완(홍콩 북동부 지역)이 아니라 타이완이야!”라며 말장난하는 대사들은 영락없이 이전 오우삼의 코미디영화들을 보는 것 같다. 물론 그 결정판은 <종횡사해>(1991)다.
세 번째로 지금껏 20년 가까이 잘못 알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영웅본색>을 필름으로 다시 보면서 주윤발이 피 묻은 안대를 하고 “버리기 아까운 야경이야” 운운할 때 등장하는 짧은 야경이, 흔히 홍콩 관광객들이 피크 트램을 타고 올라가서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그 화려한 홍콩의 밤거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주윤발이 얘기할 때 비행기가 오고가는 게 큰 화면으로 보여서 확실히 알게 된 셈이다. 지금의 첵랍콕 공항이 아니라 당시의 카이탁 공항은 김포공항처럼 거의 도심에 있어서 비행기가 빌딩들 사이를 오가듯 사람들과 가까이 이착륙을 했다. 홍콩 사람들의 애잔한 향수가 배어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곳은 바로 카이탁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구룡성채가 내려다보이는 외딴 산이기도 하다. <성항기병>(1984)과 <아비정전>(1990)의 무대이기도 했던 구룡성채는 영국과 중국 두 나라의 통치를 전혀 받지 않는 무법지대이자 극도의 초고층, 고밀도 슬럼지역으로 <공각기동대>(1995)의 미래도시에 시각적 영감을 줬던 곳이자 주성치가 <쿵푸허슬>(2004)의 무대 돼지촌을 구상하면서 오마주를 바쳤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웅본색>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 즈음에 주윤발이 그토록 버리기 아까워했던 그곳이 사실은 내가 알던 곳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는 걸 새로 알게 되면서 그 비애가 더 크게 다가왔다. <영웅본색>을 다시 필름으로 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