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제불찰씨 이야기>가 7월24일 폐막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다. <제불찰씨 이야기>는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졸업생들의 장편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2007년 처음 시작한 제작연구과정의 1기 작품. 고태정 감독의 <그녀들의 방>, 백승빈 감독의 <장례식의 멤버>, 이숙경 감독의 <어떤 개인날> 등 극영화 3편과 함께 지원작으로 선정됐고 2007년 5월 작업에 들어가 1년2개월 만에 완성됐다. 제작비는 2억5천만원. 연출 5인, 프로듀서 1인의 팀 작업 방식이 평균 2~3년, 2~30억원이 드는 다른 장편애니메이션에 비해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든 셈이다. 연평균 1~2편 나오기도 힘든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첫 장편을 완성한 감독들의 소감은 어떨까. 소통에 실패한 제불찰씨가 귀지를 파주며 세상에 나오는 이야기로 장편 신고식을 치른 곽인근, 류지나, 이은미 감독과 선경희 프로듀서를 만났다. 김일현, 이혜영 감독은 개인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이적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작업을 하면서 원작에서 바꾼 것들이 있나.
=이은미: 최종 시나리오가 9고까지 나왔다. 각본을 수정하면서도 많이 바뀌었고 편집을 하면서 또 바뀌었다. 방송에서 심판하는 장면은 너무 직접적인 것 같아 처음엔 배제했지만 작업하면서 다시 넣은 부분이다. 팽선녀처럼 추가된 캐릭터도 있고.
=류지나: 처음엔 제불찰을 좀 살려보고 싶었다. 사회 부적응자지만 마지막엔 적응하는 이야기로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원작이 가진 냉소적인 분위기를 이야기상으로 바꾸지 못하겠더라. 그래도 애초에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많이 살리려고 노력했다.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랄지, 중점적으로 노력했던 부분이 있나.
=이은미: 제불찰씨가 사람 귓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인물이 다른 사람의 귓속으로 들어갔을 때,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사연과 마주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제불찰씨는 자기의 트라우마도 보게 되지 않나.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라 생각했고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역할 분담은 어떻게 했나.
=선경희: 기본적으로 공동연출이고 팀을 나누어 각자 하나씩 역할을 맡아 진행했다. 그래도 전체적인 시나리오나 진행은 팀에 상관없이 함께 참여했다.
=이은미: 이전에 개인적으로 모두 단편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다 할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이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부분을 나누어 작업했다. 나는 캐릭터, 인근은 애니메이팅, 지나는 미술, 또 다른 친구는 합성, 뭐 그런 식으로.
-전체적인 그림의 톤이 특이하다.
=류지나: 아트워크를 정할 때 각자가 원하는 느낌의 그림을 그려왔다. 참고할 이미지 자료를 가져오기도 했고. 그중에서 다수결로 정했다. 텍스처를 다양하게 사용해서 질감을 살린달지 공간감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방식으로 한달지 자유로운 선의 느낌이나 터치를 늘리고, 컬러도 분명하게 쓰자고 했다. 또 질감이 풍성한 느낌을 주려고 컷아웃 기법을 썼다. 구체관절인형처럼 신체의 부분부분을 다 나누어 작업하는 방식이다.
-이견은 없었나.
=곽인근: 많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트 냄새가 강한 걸 안 좋아해서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주장했었다. 대중적으로 극장에서 일반 관객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결국 시간, 제작비, 인력이라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 손이 좀 덜가는 쪽으로 방식을 바꿨지만 컷아웃 기법이 이적의 소설 느낌과도 통하는 것 같아 괜찮았던 것 같다.
-독특한 이미지의 단편은 많지만 그걸 60분 이상 끌고가는 장편은 별로 없다. 부담은 없었나.
=류지나: 일단 학교에선 저질러도 괜찮다는 식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웃음) 특히 이성강 선생님은 어차피 너희들에게 기대하는 건 웰메이드가 아니라 실험적인 거라고 많이 얘기해주셨다. 또 내가 좀 잘 저지르는 성격인지라.
=선경희: 사실 지금까지 디지털 컷아웃 기법으로 만들어진 장편이 하나도 없다. 이애림 감독님이 단편 <육다골대녀>에서 한 적이 있고. 그분도 컷아웃으로 장편을 한다고 하니 반신반의하시더라. 하지만 어차피 이 프로젝트 안에선 우리만의 움직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봤고, 잘한 선택인 것 같다.
-공동연출이었는데 서로 부딪친 적은 없나.
=류지나: 상당히 많이 싸웠다. (웃음) 1년2개월 동안 계속 싸웠던 것 같은데.
=선경희: 한정된 예산과 기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사람들끼리 부딪친 부분이 좀 있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 후반부엔 좀 덜 만나게 되면서 싸움도 덜 하게 됐고. (웃음)
-1년에 1~2편 나오기도 힘든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장편을 완성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류지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꼴도 보기 싫다. 사정상 부천영화제에 못 갔지만 아마 갔더라도 영화 상영 때에는 밖에 나와 있었을 것 같다. 일단은 좀 이 작품이랑 떨어져 있고 싶다. (웃음) 첫 기수라 힘이 많이 들었다.
=선경희: 아직 크레딧은 낯선 것 같다. 장편 하나를 마쳤다기보다는 그냥 <제불찰씨 이야기>를 했구나, 라는 느낌이다. 사실 작업하면서 서로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나름 얻은 것들이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카파필름(Korea Academy of Film Arts: 한국영화아카데미)이 일년에 네편 제작했다며 메이저 제작사라고 하더라. (웃음) 나름 메이저 회사에서 일했던 자부심으로 앞으로도 애니메이션 제작, 기획에 참여하고 싶다. 국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한다는 게 힘들고 만만하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잘 버텼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젝트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