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임성운] “첫사랑은 이제 독립할 수 있다는 자연의 호출 아닐까”
2008-08-1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김진희
<달려라 자전거>의 임성운 감독

<달려라 자전거>의 하정(한효주)과 수욱(이영훈)은 귀엽다. 이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서는 수줍은 활기가 배어난다. 그들이 사는 작은 시골마을, 헌책방, 시골길, 그곳을 달리는 자전거, 순정만화 같기도 하다. 수욱이라는 남자에게 첫사랑의 미열을 느끼는 대학교 새내기 하정의 러브 스토리 혹은 그녀의 성장기가 <달려라 자전거>다. 영화가 이럴 경우 그걸 만든 사람을 만나기 전에 상투적으로 두 가지 가설이 떠오른다. 눈길이 아름다운 여성감독이거나 부끄러워 말을 더듬는 젊은 남성감독일 거라고. 실은 그 예측은 자주 빗나간다. 임성운 감독은 얼굴은 동안이어도 30대 후반이며 자세히 보면 흰 머리도 듬성듬성 보이는 아저씨다. 하지만 그는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럴때 그는 꼭 젊은이 같다.

-감독이 되기까지 경력이 어떻게 되나.
=영화아카데미를 14기로 졸업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출부를 했고, <신동양 수퍼맨>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받은 뒤에 HD 제작지원에 선정되어서 이번 영화 찍게 됐다.

-구상한 지는 오래됐나.
=장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몇 가지를 준비했었다. 사실은 이게 좀 오래전에 써놨던 거다. 99년쯤이니까 20대 후반이네. 그런데 점점 더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더라.

-시간이 좀 지났는데 막상 하려고 보니 정서가 달라져서 당황하지는 않았나.
=거리감의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그것보다는 아, 상업영화는 좀 달라야 하는구나 정도? 초고는 지금보다 좀더 가벼웠다. 색감으로 치면 수정하면서 좀더 짙어졌다고 할까.

-한효주가 연기한 하정은 귀엽다. 근데 너무 착하다.
=아니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게 보더라. 남자들은 착하다고 하지만 여자들은 이 애의 생존방식을 본다. 하정은 일단 겉과 속이 다른 아이는 아니지만 아픔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계속할 뿐이다. 다른 것보다도 하정은 자기가 예쁜데 그걸 잘 모른다. 성장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을 때 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성장과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긍정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런 면이 나로서는 재미있었다.

-그 짝 수욱은 이영훈이다.
=하정이라는 인물을 먼저 잡는 게 원칙이었고 그 다음에 수욱이었다. 뭐 우리 예산에 장동건이랑 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웃음), 그건 농담이고 이영훈이 눈빛이 깊다. 그게 좋았다.

-밀양에서 찍었다. <밀양>과는 다르게 동네가 무척 예쁘다.
=<밀양>이 개봉하기 전의 일이었으니까 잘 몰랐는데 어쨌든 동네가 좀 낮은데다가 옛날에는 흥했으나 지금은 약간 몰락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창동 감독님이 어떤 면에서 밀양을 선택했는지도 알 것 같다. 내 영화에서도 하정은 사실 아무 희망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온 거다. 하지만 부드럽고 정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우리는 10월쯤 촬영했는데, 밀양이 정말 볕이 좋긴 하다.

-영화의 빛 사용이 말한 것처럼 대체로 부드럽다.
=HD 데이터가 별로 없어서 난감했다. 두 번째는 영화의 정체성 문제인데, 무리를 하면 화려하게 갈 수도 있었겠지만 소형차에 튜닝 많이 한다고 세단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최대한 이 영화의 분위기와 정서를 살리는 쪽으로 갔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첫사랑이라는 것이 어쩌면 상징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첫사랑에 어떤 본질적인 측면이 있다면 그건 인생에서 처음으로 독립이라는 의미,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산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기 때문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첫사랑이란 너도 이제 독립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자연의 호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픔을 겪고 또 책임을 지게 되면서 겪는 성인식이니까.

-본인의 첫사랑은.
=아 글쎄… 고2 때였는데… 그게 사랑이었을까?

-이 영화가 어떤 느낌이 되길 바랐나.
=처음부터 전체 컨셉을 어떤 리얼한 것과는 거리를 두었다. 왜냐하면 첫사랑 이야기이고 그 낱말 속에 있는 느낌이란 게 있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 전체가 하정이가 꾸는 꿈과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리얼함보다는 시대도, 시간도 애매한 그리고 공간도 그러한 느낌이 필요했다.

-그래서 헌책방, 자전거 등이 많이 나오나보다.
=헌책방은 수욱이 캐릭터 때문이었고, 사실 자전거는 처음부터 중요했다. 운동을 못하는 여자애가 자전거를 배우면서 사랑을 꽃피운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있었다. 좀 상투적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지방 가면 정말 많이 타기도 한다. (웃음)

-성장, 청춘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영화를 좋아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성장, 청춘영화가 많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남자가 대개 주인공이고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넘어가기 전인 경우가 많다. 나는 그걸 좀 바꿔보고 싶었다. 어쨌든 젊은이들이 나오는 걸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 말이다.

-개봉이 가까워진 요즘 어떤 생각을 하나.
=개봉을 해야 진짜 영화가 끝난다는 말이 실감난다. 신경을 안 써야지 하면서도 쓰인다. 한편으론 그래서 기분 좋은 시간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좀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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