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한국은 피해자가 아니다
2008-08-14
글 : 유재현 (소설가)
베트남전쟁을 후일담 삼아 도착된 기억을 담은 <님은 먼곳에>

남한 현대사는 두번의 전쟁을 치렀는데 물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숨가쁘게 연이어 터진 두 전쟁은 사실상 한 세대가 치른 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 참전세대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태어난 세대였고 유년의 기억이나마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였다. 그런데 이 두 전쟁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전후 세대가 등장하기 전에 기묘한 세대 하나가 전쟁과 전후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 자신들이 남의 땅에서 치르고 있던 전쟁의 포연을 뉴스로 접한 세대이며 한국전쟁 세대에게는 식민지적 기억이었던 미군 C레이션박스를 참전병사들의 손에 들려 남중국해를 건너온 ‘전리품’이라는 제국주의적 기억으로 각인한 세대, 훗날 38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세대이다. 이준익의 <님은 먼곳에>는 바로 그 세대, 전쟁에 대한 도착(倒着)된 기억을 담고 있으며, 군사적 파시즘에 대항해 초급 민주주의를 쟁취한 뒤 지리멸렬해진 386세대가 연출한 최초(<알포인트>의 공수창 또한 이 세대에 속하지만 알다시피 이 영화는 공포영화이지 전쟁영화가 아니었다)의 베트남전쟁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영화가 등장하기 전 마지막 베트남전쟁 영화는 1992년에 개봉된 정지영의 <하얀전쟁>으로 한국전쟁 세대에 의한 아마도 마지막이 된 영화였다.

군인들까지 도덕적으로 만드는 순이의 순결함

<님은 먼곳에>는 경상도 어디쯤의 보수적인 중간 지주 집안에서 봉건적으로 3대 독자와 맺어진 순이가 군대에서 애인에게 차인 뒤 베트남의 전쟁터로 도망쳐버린 반봉건적 남편인 상길을 찾아가는 로드무비이다. 플롯은 전형적인 신파를 연상케 하지만 여주인공은 신파적 인물과는 동떨어져 있고 영화도 신파를 따르지는 않는다. 상길은 순이를 사랑하지 않으며, 순이가 상길을 찾아가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며 수상한 오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차라리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에 가깝다. 요컨대 인습에 얽매인 순종적 여자라면 국방부 정문 앞에서 베트남으로 보내달라는 떼를 쓰지도 않을 것이고 밴드의 여성보컬이 되려고 시도하지도 않을 것이며 심지어 남중국해를 건너 2만km 밖의 전쟁터로 달려갈 리 없다. 라스트신에서 순이가 우여곡절 끝에 상봉한 남편 상길을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가 견우를 대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 여자가 발랄하지 않을 뿐이지 ‘그녀’처럼 매우 진취적인 여자라는 걸 방증한다. <님은 먼곳에>는 이준익의 페르소나이기도 한 바로 그 진취적인(또는 진보적인?) 여자와 베트남전쟁에 관한 영화이다.

이 진취성의 정체를 밝히는 길은 그리 편안하지 않다. 전장인 베트남에까지 가서 슈킹을 일삼다 동료의 돈을 털어 본국으로 도망쳐온 색소폰 주자 정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만큼 막장의 인간이지만 순이에게는 단 한번도 흑심을 품지 않는다. 유부녀이기 때문에? 말종치고는 웃기는 놈이지만 그렇다고 치자. 사이공에 도착한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정만의 밴드 ‘와이 낫’은 급기야 남한군 부대를 상대로 한 위문공연 사업에 뛰어든다. 그곳은 전쟁터의 한가운데이고 중층적으로 억압된 수컷들이 집단적으로 발정을 참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허벅지를 드러내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위문녀 순이에 대한 병사들의 태도는 성녀를 대하는 바로 그 태도이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버전에 삽입된 위문공연신에 흐르던 병사들의 광기 따위가 끼어들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병사들의 개다리춤은 외설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고 아무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범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병사들이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처럼 떠들고 아우성치며 초딩 수준으로 즐기고 있을 때 전쟁터로서의 공간과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정체성, 긴장감은 화면에서 축출되고 위문공연은 열린 음악회가 되어버린다(말하자면 이건 전쟁터의 위문공연이 아니다). 또 영화의 포스터에 나온 바로 그 장면, 스콜이 쏟아지는 가운데 병사들이 순이를 허공으로 들어올려 대대장 앞으로 운반하는 이 문제적 장면은 기대를 무산시키고 허망하게도 순이의 성녀적 불가침을 확인하는 것으로 미봉된다. 대대장은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대신 수줍은 표정을 짓고 동성의 군인들이나 떼지어 추는 바로 그 춤을 춘다. 순이를 순결하게 만드는 것은 상길에 대한 순이의 집념이 아니라 군인들이라는 점에서 순이의 중성화는 전쟁의 도구인 군인들까지도 도덕적으로 만들며 동시에 탈전쟁화하는 힘을 갖는다.

역사 왜곡에서 생겨난 아류 제국주의적 시선

기괴할 만큼 비정상적인 순이의 순결함(또는 도덕성)의 정체는 정만의 밴드가 해방전선 게릴라에 잡혀 땅굴로 끌려들어간 뒤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낸다. 정만은 게릴라 대장 사이에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평화문답으로 이 전쟁의 도덕적 주도권이 해방전선에 있으며 남한군이 용병임을 확인한다. 이윽고 총부리를 겨눈 게릴라 앞에서 순이는 노래를 부르고 게릴라는 총구를 내린다. 마치 판타지와 같은 이 장면은 1990년대 이후 이루어진 남한과 베트남의 공모, 즉 남한은 ‘미안해요’라고 말하고 베트남은 ‘괜찮아요’라고 화답하는 것으로 전쟁의 역사를 정당한 심판없이 청산한 (자본 진출과 도입을 둘러싼) 공모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남한에 대한 해방전선의 면죄가 이루어지는 것은 전후가 아니라 전쟁 당시이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자를 동일시하고 원죄를 무효화한다(순이에게 덧씌워진 순결함은 이때 빛을 발한다). 영화는 멈추지 않고 순이의 순결함을 미군 장교에게 희생시킴으로써 미제를 볼모로 해방전선과의 반제적 일체화를 도모하고 정만 일행이 공연을 대가로 미군한테 받은 달러를 불에 태워버림으로써 이 전쟁에서 피를 대가로 원시적 자본 축적을 구했던 본국 파시즘의 불온한 경제적 욕망까지도 거부한다. 그리고 마침내 진보적 면죄부를 획득한다. 이 터무니없는 역사적 도착은 순이가 미제와 공모한 식민지 파시즘이 아니라 해방전선과 마찬가지로 억압받고 있는 식민지 인민의 순결함(무죄함)을 대리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물론 이것은 역사적 왜곡이다. 식민지 용병은 영장을 불사르거나 탈영하지 않았고 인민은 투쟁하지 않았으며 식민지 인민의 연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식민지 국가에서처럼 남한에서도 68은 완벽하게 무의미했다. 남한의 용병은 그저 세포이 항쟁을 분쇄하는 데 동원된 구르카 용병처럼 해방전선과 북베트남과 전쟁을 치르며 촌락을 불사르고 양민을 학살했을 뿐이다. 그럼으로 사하여지지 않는 죄를 면죄하는 이 영화적 행위가 사실은 휴머니즘을 내세워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역설하는 할리우드 베트남전쟁 영화와 맞닥뜨린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게 또 하나의 아류 제국주의적 시선임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이 무위한 시도가 얻을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훈계밖에는 없을 텐데도 영화는 우격다짐의 데마고그로 일관하고, 그 대가로 전쟁이 필연적으로 촉발하는 폭력과 광기, 공포에 대한 서사를 잃어버린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적군이 아군이 되었으며 아군이 적군이 되어버렸고 스스로는 무장을 해제한 이 뒤죽박죽의 전쟁터에서 전쟁서사가 살아남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건 아주 일찍, 시놉시스에서부터 결정된 운명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1년이라고 ‘홍보’된다(영화에서는 이 숫자를 자막으로 흘리거나 대사로 확인해주지 않고 영화 밖에서만 시놉시스이거나 홍보문구에 섞여 전달된다). 어떤 영화들은 숫자가 때때로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1900이라는 숫자에 러닝타임 4시간짜리 영화를 걸었다. 마찬가지로 1971은 베트남전쟁 영화라면 충분히 의욕을 불태울 만한 숫자였다. 1965년에 시작된 남한의 베트남전 참전은 1973년 2월에야 끝났다. 그러나 사실은 1971년에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베트남화’(Vietnamization)를 선언한 닉슨은 1969년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를 시작했고 1970년 4월에는 15만명의 병력 철수를 발표했다. 뒤를 이어 1971년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는 남한군의 철수를 내비쳤고 9월에는 공식적으로 철군 계획을 발표했다. 북폭을 제외하고는 확연히 소강상태로 빠져들었던 1971년은 그렇게 이 전쟁을 바라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기였다. 외국군은 철수하고 있었고 전쟁은 끝나고 있었으며 의기소침하면서도 나른한 분위기와 동시에 남베트남에는 멸망의 기운이 물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던 때였다. 이 시기는 싸우는 자들의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때문에 능동적으로 찾아간 자, 그중에서도 밴드라는 이주노동자의 싸우는 자들에 대한 위문공연이란 시놉시스는 침을 흘려도 좋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전쟁에 숨겨진 자본의 욕망, 제국주의 전쟁의 종말, 식민지 체제의 붕괴, 이 세계사적 순간을 맞는 인간…. 그 모든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라고 여겨지는 스토리의 출발점이 그곳에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준익의 시놉시스는 이중 어떤 것에도 천착하지 않는다.

베트남은 <님은 먼곳에>가 상기시키는 추억일 뿐

대신 1971년을 김추자로 떠올린다. 1971년은 1969년 김추자가 <님은 먼곳에>를 처음으로 불렀고 신중현의 앨범에 실린 1970년의 이듬해일 뿐이며 이준익의 세대가 보듬고 있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의 마지노선이다. 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자인가. <님은 먼곳에>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왜 밴드인가? <님은 먼곳에>를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베트남전쟁인가. <님은 먼곳에>가 상기시키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본말이 전도된 영화는 이준익의 십대의 추억에 헌정된 영화이면서 동시에 추억에 관한 모든 영화의 미덕인 성장영화가 되기조차 포기한 미숙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베트남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벌어졌던 일, 80년대의 추억을 인질로 베트남을 후일담의 대상으로 삼았던 소설의 퇴행을 전쟁으로 확장해 뒤늦게 답습하는 영화적 판본이기도 하다.

16년 전에 등장했던 정지영의 <하얀전쟁>은 끌려간 자의 트라우마를 통해 전쟁을 돌아보는 익숙한 할리우드 베트남전쟁영화의 문법을 구사하고 있었지만 베트남에서 손에 쥔 C레이션이 전리품이 아니라 한국전쟁에서의 C레이션과 동질의 것이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베트남전쟁을 바라보는 아시아적 관점에 대한 선취적 성과를 보여주었고 남한군의 양민학살을 통해 전쟁을 보여줄 만큼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16년 뒤, 세대는 바뀌었고 끌려간 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찾아간 자의 이념적 허위의식 속에서 이 전쟁은 반공이나 다를 바 없는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늘 그렇듯이 세대의 문제라고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음악영화라는 점에 대해 당연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미스 사이공>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순이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스크린에 따뜻한 애정과 유쾌한 생기가 봄바람처럼 흘러나와 그럭저럭 볼 만해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준익은 너무 먼 곳으로 떠난 것이 아니었을까. 정 원했다면 ‘무기의 그늘’ 아래나 ‘쏭바강’변을 서성이는 대신 ‘몰개월’로 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처럼 좋은 음악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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