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아카데미 입맛에 맞는 영화란?
2008-08-19
글 : 장영엽 (편집장)
외국어영화상 한국 출품작 <크로싱> 선정, 비판의 목소리도 있어

지난 8월7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내년 2월에 열리는 제81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크로싱>을 선택했다. 영진위가 선정한 일곱명의 심사위원(한상준, 김형준, 윤용아, 이동진, 조혜정, 전찬일, 달시 파켓)은 “작품의 완성도, 배급능력, 감독 및 출품작의 인지도”를 고려해 다섯편의 지원작 중 “큰 이견없이” <크로싱>을 출품작으로 결정했다.

경쟁작 네편이 올해 상반기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추격자>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님은 먼곳에>라는 점을 생각하면 <크로싱>이 선택된 게 의아하다. 다른 네편에 비해 작품의 완성도나 인지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단은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품을 뽑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지만, 국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영화가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왜 <크로싱>일까. <크로싱>은 과연 역대 출품작들이 이루지 못했던 ‘최종 후보작 다섯편’에 선정될 수 있을까.

세부적인 심사기준은 심사위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영진위의 심사기준은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품’을 가려내는 것이다. 심사위원단은 아카데미가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보편적인 주제, 전통적인 방식의 드라마를 선호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에 따르면 <크로싱>은 휴먼드라마이자 보수주의자들이 중시하는 탈북자의 인권문제 등을 다루고 있어 아카데미 회원들의 관심을 끌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로싱>이 출품작으로 선택되기까지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고 심사를 지켜본 한 영화계 관계자는 말했다. “<크로싱>이 다른 작품들보다 뛰어났다기보다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그에 따르면 <추격자>는 스릴러에 우호적이지 않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특성상 목록에서 제외됐고, <님은 먼곳에>는 미국에 불편한 소재인 베트남전을 다룬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오락성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특수한 한국적 배경도 수상 가능성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언급됐다. 결국 아카데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크로싱>을 출품작으로 결정한 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역대 한국영화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

하지만 심사위원단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크로싱>의 선정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크로싱>은 그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출품작으로 선정된 역대 한국영화들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전쟁휴먼드라마라는 점에서 <크로싱>과 가장 흡사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포함해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는 국내에서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고, <춘향뎐> <오아시스> <밀양>은 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한 영화계 인사는 “<크로싱>이 현재 미주에서는 밴쿠버영화제에 유일하게 초청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흥행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미주의 다양한 영화제에서도 외면받는다는 건 영화로서의 매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이 기준이라면 기본적으로 충족돼야 할 요소가 있는데 <크로싱>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아카데미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아카데미 선정과정을 잘 아는 한 미국 배급사 관계자는 “사실 아카데미의 수상 가능성은 재력에 달려 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회원에게 영화를 보여줄 기회를 제공하느냐, 어느 쪽이 더 강력한 미국 배급사를 같은 편으로 두느냐에 따라 수상 가능성은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회원들이 아카데미에 전달되는 40여편의 추천작을 모두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대한 그들에게 영화를 자주 노출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강력한 미국 배급사의 원조가 필수다. 앞서 언급한 영화계 인사는 “현재 <크로싱>은 미국의 한 중소 배급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다. 지난해에 CJ가 <밀양>의 수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이창동 감독 회고전에 특별 시사회까지 열면서 백방으로 뛰었는데도 안 된 이유가 큰 배급사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다. 아카데미 수상 실적이 없는 회사가 효과적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인다. 심사위원단의 설명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쪽의 의견이나 일리는 있는 셈이다.

북미 마케팅 효과 무시할 수 없어

이 같은 출품작 선정은 <크로싱>의 경우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다.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의 출품작 선정에 <빈 집>과 <올드보이>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거의 매해 논란이 계속된 건 심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아카데미의 취향을 명확히 규정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의 영화상인 아카데미에 매달리지 말라는 원칙적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계 관계자들이 출품작 선정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북미시장을 개척하는 마케팅 효과 면에서 아카데미의 비중이 크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외국어영화상 후보 5편(빅5)에 드는 것만으로 인지도가 올라가는 만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영진위의 출품작 선정 논란을 넘어 이제는 ‘빅5’ 안에 포함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아시아 부국장 노혜진 통신원은 “좀더 효과적인 마케팅 방식을 고민할 때”라고 조언한다. 지난해 <밀양>을 미국시장에 소개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CJ 미주팀 김성은 과장은 전문적인 홍보 담당을 고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카데미가 생각보다 접근이 어렵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 영화 홍보를 맡기는 것이 중요하고, 소니 클래식이나 미라맥스 같은 거대 할리우드 배급사의 지원이 필수다.” 아마 <크로싱>이 빅5에 들어간다면 왜 <크로싱>이냐는 지적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어쩌면 해마다 같은 논란이 거듭되는 이유도 한국영화가 한번도 빅5에 들지 못해서가 아닐까? 아카데미 출품작 논란의 종지부는 영진위가 아니라 아카데미쪽이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다.

인도에선 법정에 가기도 했답니다

2002~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출품작을 둘러싼 국내외의 논란

2002년 한국 <오아시스> vs <집으로…>
영진위의 <오아시스> 선정을 두고 튜브픽쳐스의 황우현 대표와 이정향 감독, <집으로…>가 아카데미에 출품돼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냄. 당시 황 대표는 “<오아시스>는 미국에 팔리지 않았지만 <집으로…>의 수입사인 미국 파라마운트사의 회장이 직접 서한을 보내 영화를 전략적으로 밀겠다고 했다”며 영진위의 심사과정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2004년 한국 <태극기 휘날리며> vs <빈 집> vs <올드보이>
영진위의 <태극기 휘날리며> 선정에 <빈 집>과 <올드보이>쪽 반발. <빈 집>의 경우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개봉’이라는 아카데미의 출품자격 요건이 문제가 됨. 당시 <빈 집>은 1주일간 단관 개봉 중이었는데, 영진위는 이를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개봉’으로 볼 수 없다며 <빈 집>을 출품대상에서 제외함. 한편 <올드보이>는 영진위의 모집 공고를 보지 못했다며 뒤늦게 접수를 시도했지만, 영진위가 이를 거절.

2007년 인도 <에클라비아-더 로열 가드> vs <다름>
인도의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출품작으로 <에클라비아…>가 선정됐으나, 또 다른 후보작이었던 <다름>의 감독 바브나 탈와르가 작품을 선정하는 인도필름연합이 편향적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뭄바이 고등법원에 기소, 법정논쟁이 벌어짐.

프랑스 <잠수종과 나비> vs <페르세폴리스>
2007년 프랑스 평론가들이 뽑은 톱10에 가장 많이 링크된 작품 중 하나였던 <잠수종과 나비>를 제치고 <페르세폴리스>가 출품작에 선정됨. <페르세폴리스>가 이란사회를 다룬 영화고, <잠수종과 나비>가 이미 그해의 골든글로브가 수여한 최고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터라 프랑스 사회 안에서 <페르세폴리스>의 선정과정을 둘러싸고 논란 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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